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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꼼배 다리
2. 금단추 3. 지붕 위의 전투 4. 도깨비 사냥 5. 친이 할머니 6. 삼봉이 아저씨 7. 내 애인 8. 낯선 사람 9. 남매 10. 잡초 |
저황석영
黃晳暎
그림김세현
지금어른이 되어 나는 알고 있다. 삶은 덧없는것같지만 매순간없어지지 않는 아름다움이며 따뜻함이 어둠속에서 빛난다. 지금도 그렇지 않은가. 아이들과 어른들, 그리고 나자신을 위하여 오늘도 여러 마을과 거리모퉁이에서 살아낸 시간들을 기억키시고싶다.
--- p.150--작가의 말 중에서 |
아침에 학교 가는 길에 보면, 상둣도가 마당 앞에 울긋불긋한 단청에다 희고 붉은 띠와 깃발과 색실이 주렁주렁 늘어진 상여가 놓여 있는 날이 많았다. 그때마다 누군가가 죽어서 알 수도 없는 먼 곳으로 떠나간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상여를 꾸미는 사람은 언제나 삼봉이 아저씨다. 그는 아이들 말대로 한쪽 눈이 없는 깨꾸였는데 손재주가 비상해서 작은 장도칼 하나면 온 세상의 물건들을 무엇이나 깎아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 p.77 |
'모랫말 아이들'은 젊었을 적에 내 아이들에게 자신의 유년 시절을 이야기해주려는 마음으로 썼던 것들이다. 사실은 더 쓰고 싶은 얘깃거리가 많건만 여러 가지 일에 쫓기다 보니 그만 중도에 그쳐버리고 말았다. 내 아이들도 이제 성인이 되어 제 식구들 거느리게 되었지마는.
--- p.149 |
마을 사람들의 질책이 이 불쌍한 부부에게 쏟아지고, 아이들이 움막 주변 갈대밭에 피운 불에 흥분한 꼼배 부인이 불길 속에 뛰어들어가 뒹굴다가 목숨을 잃는다. “야 이놈들아, 느이만 사람이냐, 느이만 사람이야?” 울부짖던 꼼배는 움막 앞 샛강에 혼자 힘으로 다리를 놓고는 자취를 감춘다. ---소외되어야하는 설움이 눈에 보이기때문에
--- 본문 중에서 |
나는 아이들과 차츰 친해져서 비행장 근처로 메를 캐러 갔고, 고사떡을 얻어 먹으러 다녔으며, 밭고랑에 뒹굴로 있는 제웅의 속을 빼먹는 짓도 알게 되었다. 태금이는 나를 데리고 신기한 곳만 찾아다녔다. 굿거리 구경을 가서 나는 태금이의 무릎에 앉아 무당이 작두 위에서 춤추는 것도 보았다. 시장에 가면 진창 위에 서서 소라나 우묵을 사먹었고 원숭이를 놀리는 약장수도 구경했다.
"너는 똑 꾀주머니여 히힛" 어머니가 돌아오면 시치미를 떼는 내 모양을 보고 태금이는 속삭이던 것이다. 그러면 나는 태금이의 펑퍼짐한 등이나 투실투실한 넓적 다리께를 쥐어질렀다. "아이구... 왜 쌔리냐, 왜 쌔려" 킥킥 웃으면서 그네가 내 코를 쥐어 비틀었고 나는 그게 더욱 재미가 나서 태금이를 때려주곤 했다. 오줌밥이 끼어서 내 고추가 퉁퉁 불었던 적이 있었는데 태금이는 나를 함지에 세워놓고 씻어 주었다. ---p. 125 |
응축된 서정, 간결한 서사가 주는 묵직한 감동!
『모랫말 아이들』은 전체가 10개의 짧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0년대 서울 한강변의 '모랫말'. 아직 전쟁의 상흔이 짙게 남은 그곳에서 작가의 분신으로 보이는 소년 수남이가 화자가 되어, '모랫말'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먼 데서 혼자 흘러들어와 모랫말에 꼼배 다리를 만들어놓고 홀연히 사라진 '땅그지 춘근이'. 아이들은 그를 꼼배라 불렀다. 마을사람들의 외면 속에서 아내와 핏덩이 갓난애를 잃고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진 그가 남긴 건, 원한이 아니라 근사한 돌다리, 꼼배 다리였다. 엄마의 친구가 양공주로 떠나면서 맡기고 간 혼혈아 '귀남이'. 유리 구슬 같은 초록 눈빛에 구불구불한 곱슬머리, 오똑한 코의 예쁜 소녀는 어린 수남이의 가슴에 설렘과 슬픔을 동시에 안긴다. 귀남이 마을의 신부님에게로 가게 되었을 때, 수남이의 손에 쥐어준 금색 멕기의 낡은 쇠단추는 군데군데 칠이 벗겨져 있었지만 따뜻했다. 전쟁 때 중부전선에서 파편을 맞고 바보가 된 인정 많은 상이군인, 전쟁의 화염 속에서 수많은 시체를 불태운 화장터의 화부 아저씨, 낯선 이국땅에서 늙은 고양이를 벗삼아 외로움을 달래는 화교 친이 할머니, 상둣도가 노인의 재취댁과 애틋한 연정을 나누던 삼봉이 아저씨, 기지촌에서 양공주들과 함께 생활하는 수남이의 마음속 애인 영화, 검둥이 병사를 상대로 벌거숭이가 되어 돈벌이를 하는 영화의 엄마, 늘 배고파하며 떠돌아다니는 곡마단의 수줍은 어린 남매, 그리고 수남이를 돌봐주던 태금이 누나. 전쟁통에 미친 여자가 되어 모랫말로 다시 돌아와 영혼이 없어져버린 얼굴로 동네를 쏘다니던 태금이 누나의 애절한 사연...... 들은 혹독한 현대사의 아픈 풍경이기도 하지만 무한한 삶의 비밀을 품고 있는 모든 유년에 대한 아름다운 송가이기도 하다. "지금 어른이 되어 나는 알고 있다. 삶은 덧없는 것 같지만 매순간 없어지지 않는 아름다움이며 따뜻함이 어둠 속에서 빛난다. 지금도 그렇지 않은가. 아이들과 어른들,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하여 오늘도 여러 마을과 거리 모퉁이에서 살아낸 시간들을 기억시키고 싶다." 암울한 시절, 질곡의 현대사로 남겨진 그 시절에도 사람들은 존재했고, 척박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일구는 삶은 여전히 따뜻했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오늘을 사는 우리를 진정한 우리이게 하고, 내일을 희망할 수 있게 하는 힘은 바로 그 그늘진 세월을 꾹꾹 밟고 건너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닐까. 작가 스스로 그 힘을 굳게 믿고 체현해왔기 때문에 황석영의 여러 작품들 속에 그토록 건강한 의식의 인간 원형이 창출되었던 것이 아닐까. 『객지』의 동혁이나 『삼포 가는 길』의 영달, 백화와 같이 한 시대의 전형이 되어 늘 우리 곁에 있는 인물들. 그들과 함께 살아온 우리 시대의 모든 유년이 『모랫말 아이들』의 이야기 속에 아프지만 아름답게 복원되어 있다. "우리를 키운 비밀의 거의 전부는 우리가 아이들이었던 때의 바람과 달빛 속에 감추어져 있다. 우리를 가슴 설레게 했던 모든 것들, 우리의 놀라움과 기쁨, 사랑의 경이, 그리고 무언가를 알게 된 순간의 슬픔과 은밀한 눈빛...... 이 비밀스런 것들이 아이를 키우고 어른을 지탱하고 사람을 사람이게 한다. 황석영의 『모랫말 아이들』은 그런 비밀 보따리의 하나이다. 거기서 우리는 마치 처음인 것처럼 우리 자신을 다시 만난다"는 도정일 교수의 헌사처럼 작가 황석영, 그리고 우리 시대 모든 어른들의 비밀스런 유년이 『모랫말 아이들』의 이야기 보따리 속에 담겨 있다. 『모랫말 아이들』에서 또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황석영 특유의 글맛이다. 장황한 설명이나 감상을 배제한 간결한 서술과 사건 중심의 속도 있는 이야기 전개는 행간의 뒷이야기를 독자의 가슴에 깊이 새기게 만든다. '어른을 위한 동화'이기도 하지만 빼어난 유년기 성장소설로 읽힐 만큼 꽉 짜인 이야기의 힘과 서정의 울림이 강하다. 김세현씨의 수묵 삽화도 작품의 울림을 전하는 데 큰 몫을 하고 있다. 『모랫말 아이들』은 현대문학의 대가 황석영의 거침없는 필치와 탄탄한 서사구조, 고도로 절제된 서정 미학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아이와 어른 모두를 위한 동화의 전범이라 할 수 있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