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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 발행일 | 2022년 09월 26일 |
|---|---|
| 쪽수, 무게, 크기 | 304쪽 | 170*230*30mm |
| ISBN13 | 9791196809157 |
| ISBN10 | 11968091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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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의 빙벽
우리 산하의 어느 봉우리 혹은 어느 계곡의 빙벽으로 돌아가면 결국 김정태와 엄흥섭에게로 귀결된다. 놀랍게도 두 사람은 빙벽등반을 먼저 시도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1924년에 개점한 일본 제일의 등산용구점인 오사카(大阪)의 호일 산장에 피켈과 아이젠을 주문한다. 호일 산장 주인 니시오까 가즈오는 일본의 이름난 등산가였다. 그는 일류 인장인 야마우치에게 니켈 크롬 합금의 피켈을 만들도록 했다. 그 피켈은 1935년도 제작 센다이(仙台) 야마우치(山內) 931호였으며 아이젠도 같은 합금으로 북해도 사포로의 가도다 8발이었다. 이 장비로 제일 먼저 북한산 도선사 아래 빙폭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스텝부터 익히기 시작했다. 1931년 독일의 슈미트 형제가 마터호른 북벽을 초등한 후 일어난 슈미티즘을 이미 인지하고 있던 터였다. 두 사람은 65도 경사의 빙벽을 스텝 커팅 없이 빠르게 오르는 연습을 반복한다. 이때 빙벽등반 교본으로 북알프스의 호다카다케를 초등한 후지끼 구조(藤木九三,1887~1970)의 『암등술』과 영국 윙스로프 영의 『마운틴 크래프트』를 사용했다.
--- p.17
북한산 구천은폭
한국 빙벽등반의 초등을 구가하던 황금기는 언제였을까. 생각해보면 그리 멀지 않은 과거였다. 먼저 한국산악회에서 프랑스 국립스키 등산학교에 8명의 대원을 파견하여 빙벽등반 기술을 전수 받아온 1971년 전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1969년 설악산 죽음의 계곡에서 일어난 눈사태로 10명의 산악인이 사망한 안타까운 사고에 대한 자성의 행보였다. 구곡폭포와 토왕성폭포는 그때까지 초등이 이루어지지 않아 상징적 대상으로 존재하던 때였다. 암벽에서는 훨씬 더 이전부터 초등반이 이루어지고 있었으나 빙벽은 아직 미명의 시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누구나 먼저 오르면 초등을 이룰수 있는 때. 바로 1970년대의 빙벽이 그러했다.
--- p.22
설악산 토왕성폭
토왕성폭은 최대 혹은 최고라는 말로 표현된다. 국내에서는 비교할 수 없는 수직고 300m 규모에 붙는 수식어다. 그런데 높이보다 하늘에 걸린 환상적인 모습이 시선을 압도한다. 산악인들은 토왕성폭을 바라보며 설악산에 입성하고 돌아올 때도 그 신비의 성채에 눈을 떼지 못한다. 폭포가 얼어 빙벽이 되면 존재감은 사뭇 달라진다. 이땐 진정한 산악인이 되려는 사람들의 통과의례 장소가 된다. 70년대 산악인들은 마치 퇴로가 끊긴 듯한 이 은밀한 장소를 발판으로 알프스를 꿈꾸고 히말라야를 동경할 수 있었다. 알프스의 6대 북벽을 오르며 자연과 교감했던 가스통 레뷔파1921~1985의 심미안에 편승한다면 산은 지구의 일부라기보다 독립된 신비의 왕국이며 그곳에 들어서기 위한 유일한 무기는 의지와 애정뿐이라 했다. 그리하여 산의 아름다움과 공간의 자유와 등반의 즐거움과 자연과의 친밀한 관계 역시도 산친구의 우정이 없다면 무미건조하다는 글줄을 흰머리 날릴 때까지도 마음에 간직하게 된다. 토왕성폭은 당시의 산악인들을 개척시대 주인공이 되도록 이끌던 곳이었으며 열정을 간직하게해준 빛나는 벽이었다.
--- p. 38~40
장수대 은수폭
20대의 풋풋했던 시절 이들은 설악산 동계등반을 마친 후 서울로 돌아가지 않고 자기들만의 등반을 꾸미게 된다. 바로 대승폭 암벽 등반이었다. 당시 설악산의 주요 암봉들이 주로 동계에 등반이 행해진 상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75년 12월에 어센트가 공룡능선의 1275봉을 오르고 1976년 1월에는 잦은바위골과 용아장성 피너클 등반이 이루어진다. 2월에는 서강대산악부가 범봉과 선녀봉에 루트
를 개척하는가 하면 달마봉 서벽과 울산암 문리대 코스 등반도 같은 달에 이루어졌다. 1977년 1월 크로니산악회가 토왕성폭포를 초등할 때 마운틴빌라는 울산 암 리지를 올랐다. 성균관대산악부가 공룡능선 동계 종주를 할 때 요델산악회 이영식은 칠형제봉을 동계 단독등반했다. 마치 우정과 신의를 건 무협 영화처럼 설악산을 무대로 등반이 이루어졌고 은벽의 젊은이들도 그 같은 흐름을 타고 있었다.
--- p.84
명의 설악산 둔전골 3단폭
빙폭은 우리의 마음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게다가 햇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좁고 어두운 계곡의 추위와 바람을 이겨내야 했다. 불안의 연속에서 탈출한 것은 베이스캠프를 출발한 지 약 4시간 후. 계곡이 끝나고 경사가 급한 잡목 숲으로 들어서자 멀리 바다가 조망되었다. 정상은 바로 눈앞에 보였다. 직선으로 300m가 채 안 되는 거리지만 70도의 가파른 벽이 아찔한 느낌이 들었다. 우선 커다란 고목 아래 양지바른 곳을 찾아 중식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나무 사이로 쌓인 눈은 스펀지처럼 푹푹 빠졌고 나뭇가지는 얼굴을 때리며 눈을 찔렀다. 아픔을 참고 오르니 또 하나의 암벽이 앞을 가로막았다. 오버 슈즈를 벗고 바위에 매달리자 언 손이 바위와 얼음에 찢겨 피가 흘렀다. 가까스로 바위에 올라섰으나 아직도 정상은 거리가
있었다. 그러나 별다른 위험이 없어서 뛰다시피 숲을 통과했다. 베이스캠프를 떠난 지 7시간. 마침내 관목 숲을 지나 정상의 광활한 고지가 펼쳐졌다. 정상에는 능선 파티가 꽂아 놓은 우정산악회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우리는 그간의 고통과 어려움을 잊고 서로의 손을 움켜잡았다. 정상의 케른 밑에 우정 계곡의 초등반 일시와 대원 명단 그리고 간단하게 코스를 그려서 준비해간 병 속에 넣어 보관하였다. 가슴 속에 끓어오르는 감격이 서로의 눈짓과 손가락으로도 전달되었다.’
--- p.102
판대 아이스파크
2002년 판대의 인공 빙벽이 세워진 후 초등반이 이루어진 그해 우리는 월드컵 축구에서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4강 고지에 올랐다. 어쩌면 그런 기회는 자연 빙벽에서 인공 빙벽으로 패러다임이 바뀐 만큼 시간이 흐른 뒤에나 올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과연 과거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리고 자연으로 돌아갈 날이 올 수 있을까. 우리의마음은 더 모를 일이다.
우리 산하의 어느 봉우리 혹은 어느 계곡의 빙벽으로 돌아가면 결국 김정태와 엄흥섭에게로 귀결된다. 놀랍게도 두 사람은 빙벽등반을 먼저 시도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1924년에 개점한 일본 제일의 등산용구점인 오사카(大阪)의 호일 산장에 피켈과 아이젠을 주문한다. 호일 산장 주인 니시오까 가즈오는 일본의 이름난 등산가였다. 그는 일류 인장인 야마우치에게 니켈 크롬 합금의 피켈을 만들도록 했다. 그 피켈은 1935년도 제작 센다이(仙台) 야마우치(山內) 931호였으며 아이젠도 같은 합금으로 북해도 사포로의 가도다 8발이었다. 이 장비로 제일 먼저 북한산 도선사 아래 빙폭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스텝부터 익히기 시작했다. 1931년 독일의 슈미트 형제가 마터호른 북벽을 초등한 후 일어난 슈미티즘을 이미 인지하고 있던 터였다. 두 사람은 65도 경사의 빙벽을 스텝 커팅 없이 빠르게 오르는 연습을 반복한다. 이때 빙벽등반 교본으로 북알프스의 호다카다케를 초등한 후지끼 구조(藤木九三,1887~1970)의 『암등술』과 영국 윙스로프 영의 『마운틴 크래프트』를 사용했다.
--- p.17
북한산 구천은폭
한국 빙벽등반의 초등을 구가하던 황금기는 언제였을까. 생각해보면 그리 멀지 않은 과거였다. 먼저 한국산악회에서 프랑스 국립스키 등산학교에 8명의 대원을 파견하여 빙벽등반 기술을 전수 받아온 1971년 전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1969년 설악산 죽음의 계곡에서 일어난 눈사태로 10명의 산악인이 사망한 안타까운 사고에 대한 자성의 행보였다. 구곡폭포와 토왕성폭포는 그때까지 초등이 이루어지지 않아 상징적 대상으로 존재하던 때였다. 암벽에서는 훨씬 더 이전부터 초등반이 이루어지고 있었으나 빙벽은 아직 미명의 시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누구나 먼저 오르면 초등을 이룰수 있는 때. 바로 1970년대의 빙벽이 그러했다.
--- p.22
설악산 토왕성폭
토왕성폭은 최대 혹은 최고라는 말로 표현된다. 국내에서는 비교할 수 없는 수직고 300m 규모에 붙는 수식어다. 그런데 높이보다 하늘에 걸린 환상적인 모습이 시선을 압도한다. 산악인들은 토왕성폭을 바라보며 설악산에 입성하고 돌아올 때도 그 신비의 성채에 눈을 떼지 못한다. 폭포가 얼어 빙벽이 되면 존재감은 사뭇 달라진다. 이땐 진정한 산악인이 되려는 사람들의 통과의례 장소가 된다. 70년대 산악인들은 마치 퇴로가 끊긴 듯한 이 은밀한 장소를 발판으로 알프스를 꿈꾸고 히말라야를 동경할 수 있었다. 알프스의 6대 북벽을 오르며 자연과 교감했던 가스통 레뷔파1921~1985의 심미안에 편승한다면 산은 지구의 일부라기보다 독립된 신비의 왕국이며 그곳에 들어서기 위한 유일한 무기는 의지와 애정뿐이라 했다. 그리하여 산의 아름다움과 공간의 자유와 등반의 즐거움과 자연과의 친밀한 관계 역시도 산친구의 우정이 없다면 무미건조하다는 글줄을 흰머리 날릴 때까지도 마음에 간직하게 된다. 토왕성폭은 당시의 산악인들을 개척시대 주인공이 되도록 이끌던 곳이었으며 열정을 간직하게해준 빛나는 벽이었다.
--- p. 38~40
장수대 은수폭
20대의 풋풋했던 시절 이들은 설악산 동계등반을 마친 후 서울로 돌아가지 않고 자기들만의 등반을 꾸미게 된다. 바로 대승폭 암벽 등반이었다. 당시 설악산의 주요 암봉들이 주로 동계에 등반이 행해진 상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75년 12월에 어센트가 공룡능선의 1275봉을 오르고 1976년 1월에는 잦은바위골과 용아장성 피너클 등반이 이루어진다. 2월에는 서강대산악부가 범봉과 선녀봉에 루트
를 개척하는가 하면 달마봉 서벽과 울산암 문리대 코스 등반도 같은 달에 이루어졌다. 1977년 1월 크로니산악회가 토왕성폭포를 초등할 때 마운틴빌라는 울산 암 리지를 올랐다. 성균관대산악부가 공룡능선 동계 종주를 할 때 요델산악회 이영식은 칠형제봉을 동계 단독등반했다. 마치 우정과 신의를 건 무협 영화처럼 설악산을 무대로 등반이 이루어졌고 은벽의 젊은이들도 그 같은 흐름을 타고 있었다.
--- p.84
명의 설악산 둔전골 3단폭
빙폭은 우리의 마음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게다가 햇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좁고 어두운 계곡의 추위와 바람을 이겨내야 했다. 불안의 연속에서 탈출한 것은 베이스캠프를 출발한 지 약 4시간 후. 계곡이 끝나고 경사가 급한 잡목 숲으로 들어서자 멀리 바다가 조망되었다. 정상은 바로 눈앞에 보였다. 직선으로 300m가 채 안 되는 거리지만 70도의 가파른 벽이 아찔한 느낌이 들었다. 우선 커다란 고목 아래 양지바른 곳을 찾아 중식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나무 사이로 쌓인 눈은 스펀지처럼 푹푹 빠졌고 나뭇가지는 얼굴을 때리며 눈을 찔렀다. 아픔을 참고 오르니 또 하나의 암벽이 앞을 가로막았다. 오버 슈즈를 벗고 바위에 매달리자 언 손이 바위와 얼음에 찢겨 피가 흘렀다. 가까스로 바위에 올라섰으나 아직도 정상은 거리가
있었다. 그러나 별다른 위험이 없어서 뛰다시피 숲을 통과했다. 베이스캠프를 떠난 지 7시간. 마침내 관목 숲을 지나 정상의 광활한 고지가 펼쳐졌다. 정상에는 능선 파티가 꽂아 놓은 우정산악회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우리는 그간의 고통과 어려움을 잊고 서로의 손을 움켜잡았다. 정상의 케른 밑에 우정 계곡의 초등반 일시와 대원 명단 그리고 간단하게 코스를 그려서 준비해간 병 속에 넣어 보관하였다. 가슴 속에 끓어오르는 감격이 서로의 눈짓과 손가락으로도 전달되었다.’
--- p.102
판대 아이스파크
2002년 판대의 인공 빙벽이 세워진 후 초등반이 이루어진 그해 우리는 월드컵 축구에서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4강 고지에 올랐다. 어쩌면 그런 기회는 자연 빙벽에서 인공 빙벽으로 패러다임이 바뀐 만큼 시간이 흐른 뒤에나 올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과연 과거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리고 자연으로 돌아갈 날이 올 수 있을까. 우리의마음은 더 모를 일이다.
---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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