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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들의 곁에서

질문들의 곁에서

[ 양장 ] ARCADE-0015이동
남승원 | 파란 | 2022년 09월 2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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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9월 20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402쪽 | 692g | 138*210*30mm
ISBN13 9791191897265
ISBN10 1191897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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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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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 try.”
찰스 부카우스키가 스스로 만들어 둔 묘비명이다. 그런데 생전의 그는 어떤 작가보다 치열하게 글을 썼다. 스물네 살에 첫 작품을 발표한 뒤 마흔아홉 살에 전업 작가가 되기까지 육체노동을 마다하지 않고 여러 직업을 전전했으며, 작가가 된 이후에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생각하며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는 시와 소설을 그야말로 끊임없이, 꾸준하게 썼다. 죽기 직전까지 2년여 간 쓴 일기에서 새로 배운 컴퓨터로 글을 쓰게 된 작가가 프린터 용지를 잔뜩 산 뒤 얼마든지 글을 쓸 수 있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창작 활동에 대한 그의 순수한 열정이 그대로 느껴진다. 그는 부모의 유산이나 부동산 등의 수익으로 생계를 꾸리는 노력 없이 시만 쓰는 시인들을 지독하게 경멸했는데, 그에게 글쓰기는 일상과 노동의 시간에 언제나 겹쳐져 있었다.

나는 그의 묘비명이 실제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라 문학이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는 착각에 대한 경계라고 생각한다. 고통스러운 노동, 반전 없이 지속되는 삶, 지루하고 의미 없이 흘러가는 시간들……. 사실 우리의 삶은 부카우스키 소설 속의 모습들처럼 쓸모없고 사소한 것들로 가득하며, 문학은 그런 우리 삶의 모습 그대로에 온 마음을 두고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문학은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삶의 모습에 주목하고, 우리 개개인의 삶은 다시 문학을 완성하는 유일한 조건이다. 그리고 명쾌한 정의를 내리지 않아도 삶이 지속되는 것처럼, 나 역시 읽고 쓰는 행위를 반복해 왔다. 혁명의 일상성을 이야기하던 사사키 아타루는 이 같은 행위의 반복으로 문학을 정의한다. 읽고 쓰기 위해서라면 기존의 정보들을 재확인할 수밖에 없고, 그 과정 속에서의 읽기와 쓰기는 언제나 인식의 한계를 돌파하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등단 이후 써 온 글들을 대부분 버릴 수밖에 없을 정도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문학에 대한 믿음 하나로 첫 평론집을 펴낸다.

제1부에는 2000년대 이후 우리 현대시의 변화와 그 특징적 의미에 대해 주목하는 글들을 묶었다. 최근의 우리는 인터넷 환경과 SNS를 중심으로 하는 의사소통, 그리고 감염병 사태에서 재확인한 것처럼 국경조차 무의미해진 전 지구적 동시성을 경험하고 있다. 이 같은 환경 속에서 시인들은 불특정 다수와 그 어떤 경계도 없이 순간적으로 공명하면서도, 전체적인 하나의 목소리에 자신을 내맡기는 것에는 철저하게 경계한다. 특정한 힘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힘으로부터도 탈주하는 것만이 유일한 목표처럼 보이는 최근 우리 시인들의 특성을 읽어 내고자 했다. 제2부는 시론사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주제에 주목해서 최근의 시 작품을 분석한 글들이다. 오랜 역사를 가진 만큼 시문학은 더 이상 발전을 멈춘 것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최근의 작품이나 구체적인 현실과 길항하고 있는 우리 시의 변화 양상을 살펴보았다. 제3부와 제4부는 개별 시인의 작품 세계를 보다 상세하게 들여다본 글들이다. 좋아하는 시인들의 작품을 읽을 수 있어서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 글쓰기의 과정을 그나마 견디고 지속하게 만들어 준 순간들이 포함되어 있는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인들에게 평론가로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책머리에」중에서

우리는 발전의 논리 위로 내던져진 고통스런 존재들 간의 소통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마냥 고통스럽거나 무기력한 일만은 아니다. 모든 것을 매몰시키는 발전의 고통을 확인하는 것이야말로 사회의 폭력을 견디는 힘이기 때문이다. 결손을 인식하고, 발전의 논리를 소모시키면서 고통스러워하는 일, 지금의 우리 시가 감당해 내고 있는 지점이다. 이처럼 현실 논리의 공유가 지워지고 남겨진 자리에서 우리는 다시 “고유한 최대치의 절대성을 지녀 살아”갈 수 있으리라고 믿어 본다.
---「현대시가 공유하는 것」중에서

특유의 냉소적이고도 장난기 어린 어조로 섬세하게 현실을 반복함으로써 현실을 강제하는 힘들을 ‘놀이’의 모습으로 재현해 내는 데 탁월함을 보여 주는 김승일, 분열적 현실의 속도를 반영하면서도 그 흐름의 뒤로 지나간 것들을 반복 가능한 현실로 다시 위치시키는 데에 공을 들이는 박준, 박소란, 민구 역시 자본주의적 현실의 스펙터클 안을 가로지르고 있다. 물론, 이들이 같은 의미의 층위로 단순히 재호출되는 것은 아니다. 대답 없이 지나간 것들에 대한 때늦은 응답은 더욱 아니다. 우리가 끝없이 이어지는 반복과 질문으로 이어지는 이들의 시를 통해 느끼게 되는 것은 이른바 시적 진실(poetic truth)이 여러 갈래로 얽혀 있는 ‘매듭’을 발견하는 즐거움이다.
---「현대시의 유동성 - 2000년대 한국시의 한 특성」중에서

21세기의 첫 십 년을 보낸 우리 앞에는 여전히 ‘시인’의 눈과 입을 빌려 존재하기를 열망하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은 영원한 아름다움과 일시적인 유행이 뒤섞인 현실 속에서 여전히 심미적이면서도 역사?정치적일 수 있는 특질들을 ‘시’ 안에 불어넣고자 노력하고 있다. 언뜻 불가능해 보이기만 하는 이들의 작업은 역사적인 변화 속에서 이전의 성과물로 남기보다 끊임없이 몸을 바꾸어 현대적인 일상들을 자신의 배경으로 선택한 결과이다. 따라서 우리가 이들의 작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전까지 행해 왔던 방식, 즉 눈을 감고 고개를 들기보다는 문을 열고 그들과 같이 골목길로 나가 기꺼이 길을 잃을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댄디들의 외출」중에서

타자는 인식의 확산에 따라 주체의 내면에 등장하는 방식이 아니라 주체가 움켜쥐고 있던 현실의 어떤 의미나 맥락과 상관없이 현현(epiphanie)한다. 레비나스가 ‘절대적으로 다른 모습의 타자성(absolument autre)’이라고 부른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타자들의 등장이 이제 다시 어떤 모습으로 주체와 관계 맺게 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타자의 힘은 주체가 내세우는 인과성의 영향력 안으로 좀체 포섭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김준현과 채길우를 통해서 타자를 포괄하며 넓어진 한국 현대시의 범주 안에서 우리는 윤리적 호소와 요청이 가능한 상황을 이제야 직면할 수 있게 되었을 뿐이다. 이것이 우리 시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탐색에서 너무 늦게 도착한 하나의 좋은 소식이다.
---「더 비극적으로, 내가 아닌 것처럼 - 한국시의 가능성을 찾아서」중에서

발신자-시인들은 연이어 발생하는 사회적 재난으로 인해 전면에 드러난 사회적 약자들 속에서 자신의 이름을 ‘전략적 포인트’로 만들어 낸다. 따라서 2010년대의 시인들은 국가가 작성한 ‘목록(블랙리스트)’ 안에서 가장 구체적인 이름으로 존재하지만,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자들과 만났을 때에는 자신의 이름과 목소리 모두를 기꺼이 그들에게 내주고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이처럼 2010년대 시인들의 목소리는 ‘시민’으로서 자신의 이름을 내세우는 자리에서부터, 시인의 이름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곳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약자와 교차되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약자는 어디에 있을까 - 2010년대 한국시와 교차되는 것」중에서

백 년의 시간이 지난 후에라도, 그곳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라도 결국 새로움의 조건은 동일하다. 그것은 가장 좋은 것 하나를 고르는 도덕적 게임이 아니라, 현실을 구성하는 위계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일상의 모습들에 가로질러 있는 모든 경계들을 요동치게 만드는 ‘식인종’의 위협을 닮아 있느냐의 문제이다. 이제 막 “여백에서 시작”하고 있는 우리의 시는 얼마나 새로워지고 있을까.
---「오지 않을 미래를 준비하면서」중에서

경제 논리 안에서 사랑은 더 이상 교환되지 않는다. 마르크스의 지적을 빌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랑은 오직 사랑하고만 교환되며 사랑을 생산함으로써만 유용하다. 즉, 사랑은 일반적인 교환의 회로가 멈추는 그 지점에서만 가능하다. 따라서 사랑은 교환의 체계를 멈추고 그 바깥에서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증여와 닮아 있으며, 일반적인 발전 논리의 결과물로서 축적과 잉여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소모(depense)의 형태인 시문학과 한 몸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균열 - 시가 사랑을 말하는 법」중에서

결국, 서정의 가장 중요한 특질은 시를 둘러싼 모든 관계들의 접점들을 의미의 결절 지점이 아니라 의미 생성에 대한 모든 의심이 끊임없이 발현되는 지점으로 만드는 데서 나온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시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힘이자 서정의 가장 중요한 특질 중 하나인 불온성을 통해 획득되는 가치라고 믿는다.
---「서정의 불온성」중에서

‘숭고’를 지금의 예술, 그리고 우리 현대시와 연관 지어 살펴본다는 것은 위대하고 압도적인 대상의 존재 여부나 시인의 특별한 재능을 판별하기 위한 것이 될 수 없다. 한 편의 시 안에 어떤 위대함이 표현될 수 있겠지만 그것이 곧 시문학 자체의 가치로 이해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나의 미학적 관점이, 숭고가 그런 것처럼, 사실과 가치가 연관되어 있는 관계라고 한다면 중요한 것은 그 균열 지점에서 발생하는 실천적 영역의 가능성이다.
---「현대시의 구조와 숭고」중에서

우리가 ‘걷는 행위’ 그 자체에 주목하는 것은 개별적 사건들의 극복과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걷는 행위’의 지속 그 자체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기 위해서이다. 그것은 우연성에 기대어 생성되는 결과물로 이루어지는 아이러니의 세계를 꿈꾸었던 로티(R. Rorty)의 말대로, 우리가 접속을 통해 만들어지는 자유로운 확장의 세계를 새롭게 만들어 가는 일이며 그 속에서 진리는 자연스럽게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기 때문이다.
---「길 위에 선 시인들」중에서

우리의 시인들이 도달한 곳이 바로 여기입니다. 파스의 말을 한 번 더 빌려 오자면, 그들은 경험을 추상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모든 순간들을 환원이 불가능한 특수성에 가득 찬 동시에 다른 어떤 순간에도 같은 크기와 의미로 반복되고 재생산이 가능하도록 만듭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순간들을 만들어 내고 있는 존재들입니다.
---「질문들의 곁에서」중에서

예술에서 형태의 실험이나 변화가 예술가의 자의적이고 독단적 결과물이 아니라, 인류 공통의 내면 심리와 변화하는 현실이 만나서 빚어낸 역동적 관계의 산물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앞서 우리가 우려했던 예술에서의 극단적 실험, 특히 추상충동에 의한 실험들은 오히려 우리 내면에 잠재된 고유의 감정을 보다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행위로 이해해 볼 수 있다. 어떤 이미지도 만들어 내지 않고 선과 점의 차원에서 멈추는 것, 또는 어떤 의미도 전달하지 않고 기표 그 자체로 소멸되는 것. 지금의 우리 시문학과 미술은 바로 이 지점에서 잠시 같은 길을 걷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단 하나의 점, 단 하나의 글자」중에서

시인은 이질적인 것들을 최대한 끌고 들어와 현실에 접합시킴으로써 본래의 것과 부속된 것과의 위계를 무화시키는 키치적 특징을 사용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이를 통해 사물과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 가능하며, 결국 ‘소외’로 빚어진 현실의 삶에서 ‘인간’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키치 소년 성장기-장이지의 시 세계」중에서

장석남은 ‘자수성가형 시인’이다. 앞선 시대의 시적 성과를 물려받지도 못한 채 자신만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 나갈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결국 그가 이룩한 것들이란,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생성되고 소멸하던 모든 것들에 대한 절절한 기억과 그것을 현실로 재현하고픈 시적 욕심들 그 자체이다.
---「욕심과 기억-장석남의 시 세계」중에서

김윤이 시인에 대해 말하다 보면 어떤 결과나 성과를 향하는 것이 아니라 시를 향해 손을 내밀고 있는 그 처음의 순간으로 자꾸만 되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그의 시는 시에 대한 시인의 ‘떨림’ 자체에 대한 기록이며, 따라서 그가 창작을 통해 이루어 내는 모든 의미 역시 고스란히 그 출발점으로 다시 되돌아오는 것이 가장 온당한 일이 됩니다.
---「이단자의 사랑-김윤이의 시 세계」중에서

그의 ‘나라’에서는 일상과 일탈, 현실과 비현실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맞물린 이야기 아닌 이야기 속에서 끊임없이 접촉하고 역전되면서 하나의 의미로 고정되기를 거부한다. 형태상 뫼비우스의 띠가 그런 것처럼,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하는 서사의 시작과 끝은 이 안에서 그저 임의로 지정될 수밖에 없으며, 그 둘은 서로를 증명하는 조건으로서만 존재한다. 바로 이렇게 우리는 영원히 머무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도리가 없게 될지도 모른 채 그의 세계에 발을 딛게 된 것이다.
---「의미의 성운-이장욱의 시 세계」중에서

그의 작품들은 기교와 함께 독자들에게 스며들 수 있는 길을 찾기보다, 시를 읽는 독자들 내면에 잠재된 고유의 목소리와 어떤 방식으로든 충돌의 길을 걷게 된다. 즉, 이재훈 시 세계의 의미들은 독자들의 내면과 부딪히고 얽히는 움직임의 장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이와 같은 움직임을 일관되게 만드는 운동성이 [벌레 신화]를 관통하고 있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고통의 수신기-이재훈의 시 세계」중에서

임경섭 시인은 무책임하다. 당신이 불평했던 것처럼 임경섭 시인은 통장 입출금 내역이나 카드 명세표로 설명되는 삶을 보여 주지 않는다. 그의 시는 그런 삶에서 자꾸만 도망치고, 자꾸만 우연들을 떨어뜨리고 다닌다. 행복하게 살려면, 좋은 직장을 다녀야 하고, 좋은 직장을 가려면 좋은 대학을 가야 하고, 좋은 대학을 가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 이 인과의 연쇄들이 행복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당신과 나는 잘 알고 있지만, 그런 말을 하는 누구 앞에서라도 자꾸만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다. 임경섭 시인은 당신과 내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인과의 연쇄 속으로 우연을 집어넣어 우리 삶에 자꾸만 파산선고를 내린다.
---「무책임한 무츠키-임경섭의 시 세계」중에서

그의 시는 인과율적 논리를 따르는 ‘쓰기’와, 작품과 직접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읽기’를 충돌시킨다. 말하자면, 그의 시들은 언제나 ‘독자’를 생성한다. 작품 전체를 설명하기 위해 인과율적으로 전개되는 논리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안과 밖을 넘나드는 정서적인 흐름에 자유롭게 몸을 맡기는 독자들을.
---「상실과 목소리들-이은규의 시 세계」중에서

그는 시라는 탐침을 들고 현실을 횡단하는 모험가가 아니라, “내 아버지가 나고 자란 마을”을 벗어나지 않은 채 그 “낯모를 슬픔”까지 고스란히 계승받는 고통의 적자(嫡子)이다. 우리가 그를 따라 도달한 ‘체념’의 현장에서 절망과 동시에 그 속에서도 지속되어 온 평범한 우리 삶의 가치를 발견하게 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 순간 시인이 애써 그려 보여 주는 풍경들은, 그리고 그것과 꼭 닮아 있는 우리의 삶은 어느새 그럭저럭 살 만하지 않겠느냐는 위안으로 빛나게 된다.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 숨 쉬는 시문학이 발할 수 있는 가장 미약하지만, 가장 반짝이는 빛으로 말이다.
---「그라시아스 알 라 비다 - 박소란 시집 [심장에 가까운 말」중에서

김사람의 시집은 거대하고도 정교하게 짜여진 한 편의 악몽을 재현하고 있다. 이를 위해 그는 주체가 바라보는 대상의 이미지들을 절단하거나 훼손하기도 하고, 알아차리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삶과 죽음의 순간들을 뒤섞어 놓기도 한다. 그 위로 마치 시인의 본질에서 우러나온 것처럼 보이는 음악적 기능들과 요소들이 자유롭게 덧입혀지는 순간도 있다. 그럴 때면 우리는 이내 어떤 규칙성(이해 가능 여부와 상관없이 음악이라는 장르에서 비롯하는)에 몸을 맡기기도 하지만, 어느새 그의 시들은 다시 한번 격렬하게 몸을 뒤척여 순식간에 뒤죽박죽의 악몽으로 돌변한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되돌아간다.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악몽과 더불어 - 김사람 시집 [나는 이미 한 생을 잘못 살았다]」중에서

김제욱 시인의 [라디오 무덤]이 딛고 선 문제의식의 출발점도 바로 이곳이다. 표제가 된 시집의 첫 작품에서부터 ‘노이즈’로 대변되는 ‘소리 나는 것’에 대한 시인의 관심은 시집 전체에 걸쳐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청각적 감각을 활용하는 기법상의 문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청각의 시’라고 불러도 좋을 그의 작품들은 시각으로 치환되기 이전 감각으로서의 청각을 복원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노이즈의 창조자 - 김제욱 시집 [라디오 무덤]」중에서

어떤 시인도 자신만의 의미를 붙들기 위한 싸움을 마다하지 않겠지만, 김언의 경우 그 승패 여부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대결의 무효를 주장하고 나선다. 싸움의 속성이 그렇듯, 승부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의 일방적인 종료 선언은 싸움의 지속보다 오히려 위태로운 상황을 초래한다. 승리와 패배가 명확해야만 하는 현실에서, 승부가 유예되고 결과물에 대한 손익계산이 불가능해지는 상황은 곧 세계 전체의 실패와 동일한 의미이기 때문이다.
---「시적 언어 기원론 - 김언 시집 [한 문장]」중에서

시인은 조금 더 낮고, 조금 더 뒤로 물러나 있던 일상의 것들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삶의 공간에 대한 묘사를 뛰어넘어 우리의 삶 속으로 박진한다. 따라서 시인이 주목하고 있는 ‘교회, 슈퍼, 빌라’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비록 역사로 기록되지는 못하지만 그 공간 속에서 하루하루 빠짐없이 치열하게 살아가는 보다 소중한 우리의 일상을 환기한다. 작은 것에 이르기까지 빼놓지 않고 다양하게 이름이 붙어 있는 웅덩이들을 만났을 때도 결국 그에 얽혀 있는 “솜반천 마을 사람들”의 삶에 이르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한 명의 시인에게도 온 마을이 필요하다 - 현택훈 시집 [난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아요]」중에서

고광식 시인은 이 시대의 죽음들에 대해서 생생한 목격자가 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인다. 구체적인 경험으로서 닥쳐올 죽음에 대한 태도는 개인마다 다를 수밖에 없고, 따라서 그것을 하나의 기준 안에 두고 말할 수도 없을 것이다. 다만,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필연적 사건이라는 점에서 죽음은 때로 우리의 이성적 한계를 뛰어넘게 만들기도 하고, 보다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주체적인 결단을 내리게 만들어 주는 계기(하이데거)가 되기도 한다. 요컨대 고광식 시인의 [외계 행성 사과밭]을 읽게 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을 통해서 직면하게 될 문제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죽음을 마주하게 된다면 - 고광식 시집 [외계 행성 사과밭]」중에서

이인원 시인의 경우 말 그대로 자신의 모든 것, 그러니까 외부를 바라보는 모든 감각계 그 자체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데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고자 하기 이전에, 감각의 가시적인 영역으로 구성된 세계와 맞서고 있는 시인의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시집을 읽어 나가는 일은 곧 시인의 신체 각 부분들이 하나하나 시의 감각기관으로 분화되어 가는 과정을 목격하는 것과 동일한 의미가 된다.
---「비대칭의 지점들 - 이인원 시집 [그래도 분홍색으로 질문했다]」중에서

타인의 고통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신철규 시인이 이 장면들을 “슬픔의 바깥”이라고 명명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회화의 의미 전달 방식을 이야기하던 데리다의 말을 떠올려 보면 시인의 의도에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데, 데리다에게 ‘-의 바깥’은 안과 밖을 구별하는 고정된 경계로 생겨나지 않는다. 따라서 예술작품(가령 액자와 함께 제공될 수밖에 없는 회화)이 의미로 통용되는 기존의 순간들에 안과 밖을 나누는 이분법이 언제나 작용해 왔던 점을 비판한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경계를 넘나들면서 고정된 내부의 목적성을 파괴하고 외부의 것들과 자유롭게 소통하면서 결핍을 드러내는 움직임이라고 강조했다. 그것을 데리다는 ‘파레르곤(parergon)’으로 설명했는데, 신철규 시인이 주목하고 있는 ‘슬픔의 바깥’은 이와 닮아 있다. 시인이 목격하는 타인의 슬픔은 파레르곤처럼 슬픔 그 자체도 아니고, 그것의 극복을 희망하는 바깥도 아니다. 슬픔의 ‘바깥’에서 상황의 객관적 작동은 멈추고, 고정되어 있던 한계를 벗어난 ‘슬픔’은 다시 모든 개인에게 최대치의 고통으로 전달되는 움직임으로 가득할 뿐이다.
---「상처와 고통의 연대기 - 신철규 시집 [심장보다 높이]」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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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P상품의 재생 불량 원인이 기기의 사양 및 문제인 경우 (All-in-One 일체형 일부 보급형 오디오 모델 사용 등)
  •  시간의 경과에 의해 재판매가 곤란한 정도로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정하는 소비자 청약철회 제한 내용에 해당되는 경우
소비자 피해보상
  •  상품의 불량에 의한 반품, 교환, A/S, 환불, 품질보증 및 피해보상 등에 관한 사항은 소비자분쟁해결기준(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 준하여 처리됨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
  •  대금 환불 및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금 지급 조건, 절차 등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
  •  쿠폰은 결제 시 적용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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