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이상의 사실들로 비추어 볼 때 아론 다우의 유죄 판결에는 의문의 여지가 많으므로 다우의 사형 집행을 연기해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 이렇게 찾아온 것입니다.” 브루노 주지사가 눈을 떴다. “여느 때처럼 탁월한 분석을 하셨습니다, 레인 씨. 보통의 경우라면 저는 아마도 레인 씨 의견을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아무런 증거가 없으니 말입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으르렁거리듯 끼어들었다. “이것 보시오, 브루노. 당신의 입장이 곤란하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소. 하지만 본래의 당신으로 돌아가서 생각해달란 말이오. 나는 오래전부터 당신을 잘 알고 있소! 지난날의 당신은 어디까지나 신념을 가지고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지 않았소! 당신은 반드시 이번의 사형 집행을 연기해야만 하오!” 브루노 주지사는 한숨을 쉬었다. “이건 제가 주지사로 취임한 이래로 가장 어려운 문제 중의 하나로군요. 섬 그리고 레인 씨, 저는 법률의 도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는 정의에 봉사할 것을 선서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사법 제도에서 정의는 증거에 입각하도록 짜여 있고 당신들은 아무런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당신들의 그 추론은 훌륭하고 설득력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추론일 뿐입니다. 배심원들의 유죄 평결에 따라 판사가 선고한 사형 집행에 관해 제가 아무런 증거도 없이 관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니 증거를 제시해주십시오. 증거를 말입니다!” 잠시 동안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나는 공허한 절망감에 사로잡혀 의자에서 몸을 뒤척였다. 그때 레인 씨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큰 키의 레인 씨는 몹시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어서 피곤한 노안에는 창백한 대리석 조각상 같은 선이 새겨져 있었다. “브루노 씨, 저는 아론 다우가 결백하다는 것에 관해 추론 이상의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두 차례의 살인 사건으로부터 범인이 누구인지 필연적이고도 절대적인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당신도 지적했듯이 그것을 뒷받침하는 물적 증거가 없는 한 저의 추론은 결국 결정적인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저는 그런 증거를 갖고 있지 못합니다.” 아버지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그렇다면 범인이 누군지 아신다는 말씀입니까?” 아버지가 소리쳤다. 레인 씨는 답답한 듯이 기묘한 몸짓을 했다. “저는 거의 모든 걸 알고 있습니다.” 레인 씨는 브루노 주지사의 책상에 몸을 기대고서 그의 두 눈을 지그시 들여다보며 말을 이었다. “지난날에는 나를 그토록 잘 믿어주시더니 어째서 이번에는 저를 믿어주시지 않으려는 겁니까, 브루노 씨?” 주지사는 눈길을 떨구었다. “죄송하지만, 레인 씨……. 현재의 저는 그럴 수 있는 입장이 못 됩니다.” “그럼, 좋습니다.” 레인 씨는 자세를 바로 하며 말을 이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기로 하죠. 저는 지금 포셋 형제의 살인범으로 딱 한 사람의 결정적인 인물을 지목할 수 있는 단계에는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브루노 씨, 저는 지금 범인이 세 사람 가운데 한 명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단언할 수 있는 단계에까지는 와 있습니다!”
두 번의 비극으로부터 10년 후. 이야기는 은퇴 이후 사설탐정으로 활약하는 섬 경감과 딸 페이션스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섬 경감과 페이션스는 한 사업가의 부정을 파헤치려다가 악명 높은 포셋 상원의원의 시체와 수수께끼의 메시지와 맞닥뜨린다. 막 출소한 전과자 아론 다우가 범인으로 지목되지만, 둘은 그의 무죄를 직감하고 드루리 레인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하지만 연이은 살인 사건으로 아론 다우에게 사형이 선고되고, 사형 집행일 이전까지 진범을 찾기 위한 드루리 레인 일행의 추적이 시작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