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적 사건의 의의를 바르게 평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또한 이 평가가 주관적인 것에 치우칠 위험성도 크다. 그러므로 나는 이제 나의 말을 참을성 있게 듣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내게 의미 있다고 생각되는 어떤 시대적 사건에 대한 나의 의견을 피력하면서도 이것이 하나의 큰 모험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여기서 문제 삼고자 하는 것은 세계의 도처에서 우리에게 전해오고 있는 소식, 우리의 대기권 또는 성층권을 떠다니는 둥근 물체, 즉 ‘접시saucer, Teller 또는 유에프오UFO(Unidentified Flying Objects, 미확인 비행체)’라고 불리는 물체에 대한 풍문이다. 이미 말한 것처럼 내게는 이런 소문, 또는 이런 물체의 물리적 존재가 너무나 중요하게 여겨지므로 예전에 유럽의 근간을 뒤흔들 사건들이 일어나려고 했을 때1처럼 경고의 외침을 높이 울려야 할 긴박한 필요성을 느낀다. 나는 그 당시와 마찬가지로 나의 목소리가 많은 사람들의 귀에 들어가기에는 너무나 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교만이 아닌 의사로서의 양심이 나로 하여금 말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그리고 이 양심이 나에게 나의 의무를 완수하기를 권한다.--- p.7
그러나 심리학적인 투사가 문제된다면 여기에는 정신적인 원인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유에프오 이야기처럼 세계적으로 퍼져 있는 이야기가 순전히 대수롭지 않은 우연한 일이라고 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사방에서 입증된다면 우리는 이에 해당하는 동기가 존재한다라는 가정을 만들지 않을 수 없다. 환상적인 풍문은 있을 수 있는 모든 외부 상황에 의하여 일어나거나 그 상황에 수반될 수 있다. 그러나 풍문이 존재한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어디에나 있는 감동적 바탕, 이 경우에는 그러니까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심리학적 상황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풍문의 밑바닥에는 하나의 정감적情感的 긴장affektive Spannung 이 있으며, 이것은 집단적인 긴급 상황이나 위험 또는 절실한 정신적인 요구에 그 원인이 있다. 이런 조건은 오늘날 온 세계가 소련의 정치적 압력 아래에 있고, 그로 인해 아직 예측할 수 없는 결과에 고통받고 있다는 점에서 결정적인 것이다. 한 개인에게는 비정상적인 확신?환상Visionen?착각Illusionen 등과 같은 현상들이 오직 정신적으로 해리解離dissoziation되었을 때에만, 즉, 의식의 태도와 여기에 반대되는 무의식의 내용 사이의 분리가 생겼을 때 나타난다. 의식은 이와 같은 무의식의 내용을 모르기 때문에 해결할 길 없는 상황에 부딪힌 것처럼 보인다. 그리하여 이 낯선 내용이 직접 의식적으로 통합되지 못하고 간접적으로 자신을 나타내고자 한다. 그래서 뜻하지 않은, 그리고 처음에는 설명 불가능한 의견이나 확신?착각과 환상을 만들어낸다. 범상치 않은 자연현상, 즉 운석?혜성, 피의 비9, 머리 둘 달린 망아지, 그 밖에 기형아가 위협적인 사건의 뜻으로 해석되거나 또는 ‘하늘의 징표’로 관찰되기도 한다. 결국 물리적으로 실재하지 않는 사물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서로 독립적으로 그리고 심지어 동시에 관찰되기에 이른다. 또한 많은 사람의 연상 과정은 그 시간적?공간적 병행 현상을 가지고 있어서, 예컨대 동시에 독립적으로 서로 다른 머리에서 똑같은 새로운 관념이 솟아나는 것인데, 이는 정신사精神史가 충분히 증명해 보이고 있는 바이다.--- p.23
유에프오는 눈에 보일 뿐 아니라 당연히 꿈에도 나타난다. 심리학자에게는 유에프오가 무의식에 의해 어떤 의미로 파악되고 있는지 개개의 꿈이 알려주고 있기 때문에 특히 흥미롭다. 정신적인 것이 반영反映된 어떤 한 객체를 전체에 가깝게 파악하려고 한다면 지성 위주의 분석만으로는 결코 충분치 않다. 여기에는 감정(평가), 감각(현실기능, 현실성), 직관(가능성의 지각)의 세 가지 측면 이외에 무의식의 반응, 즉 무의식에서 조립된 문맥으로 이루어진 상像이 추가되어야 한다. 꿈을 이렇게 종합적으로 볼 때 비로소 그 객체에 의해 유도된 정신적 사실을 거의 전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주어진 대상을 지성으로만 파악한다면 절반이나 사분의 삼이 불충분한 것이다.--- p.45
무의식에 대하여 보다 많이 알게 된다는 것은 그만큼 생의 체험을 넓히고 보다 큰 각성을 갖게 됨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것은 우리에게 윤리적 결단을 촉진시키는, 새로운 상황들을 선사하는 것이다. 그런 상황은 예전부터 늘 있었지만 지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철저학하게 파악되지 못했다. 그래서 어정쩡한 상태에 버려두었는데 의도적인 면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태만함으로 알리바이를 만들고 이로써 윤리적 결단을 뒷전으로 돌릴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보다 깊이 자기를 인식하게 된다면 자신이 가장 어려운 문제에 직면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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