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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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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살

[ EPUB ]
황진순 | 가하 | 2013년 11월 12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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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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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3년 11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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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기기 크레마,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아이폰,아이패드,안드로이드폰,안드로이드패드,전자책단말기(저사양 기기 사용 불가),PC(Mac)
파일/용량 EPUB(DRM) | 5.16MB ?
글자 수/ 페이지 수 약 19.3만자, 약 6.3만 단어, A4 약 121쪽?
ISBN13 9788966477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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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황진순
‘깨으른 여자들’에 머물고 있음.

▣ 출간작

로즈마리
여동관과 남수라
달콤하게 키스해줘
라면과 스테이크
반지
몸살
너에게 갇히다
갈증
그림자
사랑은 장마다
천적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탁.
타다닥.
처음엔 짧고 소심했던 소리들이 점점 커지는가 싶더니 이윽고 정적이 감돌았다. 그 정적이 잠들어 있던 주혁을 깨웠다. 게슴츠레하게 떠진 눈으로 옆을 보자 텅 비어 있었다. 잠에서 완전히 깨어나기도 전에 침대를 벗어난 주혁은 그대로 방을 나섰다. 옷을 찾아 입느라 지체할 시간 따위 없다는 듯 그의 움직임은 성급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거실로 나온 그는 채 몇 걸음 떼지 못하고 멈춰 서야만 했다.
멀쩡한 소파는 무용지물이고 연우가 거실바닥에 모로 드러누운 채로 등을 보이고 있었다. 어깨에 닿을 듯 말 듯한 머리카락은 제멋대로 뻗쳐 있었고 동그랗게 말린 몸은 한 줌도 안 될 것 같았다. 가운 아래로 드러난, 햇빛이라곤 본 적이 없는 것 같은 다리가 연우의 전신을 흩던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뼈에 살가죽을 입혀놓은 것처럼 말랐다. 그러고 보니 늘 술을 마시는 연우를 보았을 뿐이지 제대로 된 음식을 같이 먹었던 기억이 없다. 이미 술에 취해 아파트로 찾아오거나 술을 마시고 있는 그녀를 데려오곤 했던 것이 전부였다. 그녀가 그를 벗어날 때도 마찬가지였다. 볼일이 끝났다는 듯, 아파트를 빠져나갈 때의 그녀는 에누리가 없었다. 아침을 같이 먹자고 할 새도 없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의 품에서, 아파트에서 빠져나갔다.
그가 나온 기척을 알았을 텐데도 연우는 미동도 없다. 잠깐 동안 그런 연우를 내려다보고 있던 그는 방으로 들어가 이불과 베개 하나를 들고 다시 거실로 돌아왔다. 연우의 곁으로 다가가 베개를 내려놓은 그는 두 사람의 몸에 이불을 덮었다. 그리고 하나만 들고 나온 베개 대신 팔베개를 해줄 요량으로 그녀의 머리 밑으로 팔을 집어넣던 그의 온몸이 팽팽하게 긴장했다.
물기였다. 맨살에 닿는 것은 분명 축축한 물이었다.
일부러 쏟지 않았다면 거실바닥에 물이 있을 리 없다.
이건…… 눈물이다.
오래전 다른 놈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매달리던 그녀가 소리도 없이 서럽게 울던 그날 땅바닥이 흥건해지도록 쏟고 또 쏟아내던 그 눈물이다. 지금 연우가 미동도 없이 그 눈물을 또 쏟아내고 있었다.

‘아직도니? 아직도 그놈을 잊지 못하겠어?’

팽팽하게 긴장한 주혁의 혈관을 타고 싸한 냉기가 흘렀다.

‘널 어떻게 하면 좋을까.’

다른 놈 때문에 울고 있는 그녀를 보는 것이 힘들다. 다른 놈을 그리워하며 흘리는 눈물인 줄 알면서도 연우의 눈물이 아파서 미칠 것 같다. 그동안 피보다 눈물이 많을 것 같은 모습으로 용케 버티는 그녀를 보며 힘들었지만 지금처럼 무기력하진 않았다. 울지 말라고 소리칠 수도, 그렇다고 눈물을 닦아줄 수도 없다. 그놈을 잊어버리라고 윽박지를 수도 없고, 그만 과거에서 빠져나오라고 사정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곁에만 있으면 될 줄 알았다. 어리석게도 다른 놈의 기억을 품은 그녀의 곁에서 견딜 수 있을 거라고 자신했었다. 그런데 지금 심장이 쪼개지는 것 같다. 사방이 단단한 벽돌로 가로막힌 사면초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고…….
뜨뜻미지근한 물기가 계속해서 그의 팔을 타고 흐르는데 연우는 같은 자세로 꿈쩍을 하지 않았다. 눕지도, 그렇다고 앉은 것도 아닌 엉거주춤한 자세로 굳어 있던 주혁은 베개에 머리를 뉘고 다른 한 팔을 테이블을 향해 뻗었다. 그리고 손에 잡힌 티슈 통을 통째로 연우의 어깨 너머로 넘겨주었다. 팔에 스치는 연우의 어깨가 딱딱하게 굳어지는 것이 느껴진다. 마치 그가 곁에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아챘다는 듯.

둑이 터져 댐이 무너지듯 눈물샘이 터져버린 그녀는 무너졌다.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막을 수도 막히지도 않았다. 코가 꽉 막혀 숨을 쉴 수 없을 지경이 되자 입술을 벌리고 폐 안에 공기를 밀어 넣으면서도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소리를 낼 수도 없었다. 아니,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숨소리라도 낸다면 대성통곡을 할 것만 같아 억누르고 억누르다 보니 울음소리가 꾸역꾸역 안으로 기어들었다. 울부짖지 못한 소리로 무겁게 짓눌린 몸이 움직여지지도 움직일 수도 없는데, 날개라도 달린 것처럼 티슈 통이 어깨를 넘어왔다. 그런데 눈을 가득 채운 눈물 너머로 티슈 통을 본 순간, 당황스럽게도 속을 꽉꽉 채우며 안으로 기어들던 울음소리가 기어이 밖으로 터져버렸다.

“으으흐흑.”

가슴 밑바닥에서 올라온 소리가 거실을 메우기 시작했다. 한번 터져버린 둑은 쉬이 메워질 생각이 없는 듯 눈물이 쉼 없이 흘렀다.

“제길.”

그녀의 울음소리에 섞여 욕설이 들려온 것도 같은데 먹먹해진 귀로는 확실치가 않다. 소리가 빠져나가 버린 탓일까, 그녀는 어깨를 떨며 본격적으로 울었다.

“흐흐흑, 흐흐흐흑.”

지난 몇 달 동안 그녀를 꽉꽉 채우고 있던 상처가 소리가 되었다. 믿고 사랑하고, 줄 것 못 줄 것 다 퍼주고 되돌려 받은 배신이 소리가 되고, 내가 아프니 너도 아파라는 심보로 진우에게 퍼부었던 이기와 독선이 눈물이 되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하나뿐인 오빠이자 아버지를 대신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진우에게 안겨주었던 독선과 냉대를 생각하자 핏줄이 끊어지는 것 같은 고통이 그녀를 헤집어놓았다. 지난 몇 달 동안 생명체라곤 없는 허허벌판에 그녀 혼자 외롭게 서 있다고 생각하는 동안, 사실은 오빠가 쭉 함께였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는 말할 수 없는 크기의 고통이 되어 가슴을 찢어놓았다. 그녀는 통증이 휘몰아치는 가슴께를 움켜쥐고 오열했다.

“빌어먹을.”

이를 악물고 욕설을 내뱉은 주혁이 그녀를 돌아눕게 하곤 가슴에 바짝 끌어당겨 커다란 손으로 뒤통수와 등을 감싸 안았다. 그의 맨가슴이 연우의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었다. 그녀가 꺼이꺼이 소리를 내며 우는 동안 주혁은 표정도 감정도 없는, 텅텅 빈 석상이 되었다. 어슴푸레하던 새벽이 아침에게 밀려 사라지고 있었다. 연우의 울음소리도 사라지는 새벽 안에 섞여 서서히 느린 속도로 잦아들었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주혁이 티슈 몇 장을 손에 쥐어주었다. 폭발한 감정들의 잔해에 둘러싸여 코를 훌쩍이던 연우는 티슈로 얼굴을 닦았다. 코도 풀었다. 그리고 흐르는 대로 내버려두었던 그녀의 눈물과 콧물로 뒤범벅인 주혁의 맨가슴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그녀가 하는 대로 그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고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녀가 울고 있는 동안에도 그런 것 같다. 왜 우는지, 무슨 일인지 묻지 않았고 그만 울라는 소리도 울지 말라는 말도 없었다. 그는 완벽한 타인이었다. 그래서 그동안 꾹꾹 눌려 있던 울음을 다 토해낼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묻지 않았기에, 그녀의 눈물을 제지하지 않았기에.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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