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역사가들은 최소한 어떤 면에서는 수정주의자들이다. 역사가들은 과거를 이해하고자 하는 단순한 욕구와 바람 때문에, 그리고 그러한 이해가 가져다줄 기쁨과 만족뿐만 아니라 그들의 비전과 희망을 위해서 늘 과거를 파악하려고 노력한다. 따라서 모든 역사 연구는 추정에 바탕을 두고 수정주의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역사를 ‘수정주의적’이라고 말하는 것, 더 최근에는 ‘신수정주의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물이 축축하다고 하는 것과 같다. 이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역사 글쓰기에 내재된 것이 무엇인지 말하는 것이지 수정주의의 어떤 사례에 대해 독특한 것이 무엇인지 말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가들은 항상 어떤 목적을 가지고 글을 쓰기 때문에 서술된 역사는 항상 의도를 지니고 있다. 역사가들은 이전 역사가들이 이해했던 것보다 더 완전하게 주제를 이해하고 제시하기 위해 노력하며, 따라서 서술된 역사는 이전에 이해했던 것과는 다르다. 즉, 모든 역사가들은 자기 나름의 정신, 성향, 관점, 그리고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존재의 그 사실만으로 자신의 고유한 표현인 어떤 주제나 쟁점에 대한 특별한 ‘해석(take)’을 제안한다.
---「서론」중에서
결국 남북전쟁의 원인을 둘러싼 전쟁터와 같은 그런 역사적 논쟁은 러시안 인형처럼 그 주제에 대한 논쟁의 발생 이후 제시되어온 모든 주장의 유산을 그 안의 어딘가에 통합하고 구체화하는 종합적인 해석적 무대로 여겨야 한다. 어떤 주제에 대한 일군의 서로 다른 해석들은 역사가와 일반 독자들이 비슷하게 서로 논쟁을 하는 분명하고, 제한이 있고, 지적인 세계를 창조한다. 그래서 우리가 진리라고 부르는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워도 소중히 여기는 지식과 이해, 접근법을 비록 점근적이나마 점차 더한다. 그것은 역사 지식이 발전하고, 논쟁이 시작되고, 결론이 나며, 학자들이 다음에 집중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결정하고, 아이디어가 다듬어지는 세계이다.
---「1장 끝없는 수정: 남북전쟁의 기원」중에서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일축하기 시작한 것은 헤로도토스보다 젊은 동시대인이었던 투키디데스였다. 투키디데스는 『역사』가 ‘잠깐 동안 들을 수 있는 훌륭한 에세이’로, 연구를 하지 않은 채 썼으며 오래 유지될 수 없는 저서라고 조롱하듯이 말했다. 투키디데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실을 찾는 데 그리 꼼꼼하지 않아서, 알게 된 첫 번째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고 썼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자신의 견해는 “확실히 믿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에게 역사는 “진실을 훼손할 만큼 매력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 자신과는 다른 초점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자신의 독자적 의도를 가진 어느 누구에게나 도전함으로써 투키디데스는 해석적 차이를 해석적 전투로 전환시키고 과거를 둘러싼 끝없는 투쟁이라고 판명될 것의 문을 열어놓았다. 그 투쟁은 무엇이 좋은 역사, 유용한 역사, 기교적인 역사인가를 둘러싼 것이고, 더구나 무엇이 과거 사건에 대한 ‘정확한’ 해석인가, 탐구의 ‘정확한’ 주제인가, 사용하기에 ‘정확한’ 증거인가를 둘러싼 것이며, 거기에 더해서 무엇이 역사 서술의 ‘정확한’ 목적인가를 둘러싼 것이었다. 선행연구자들에 대한 비판을 역사적 사고를 진전시키는 정당한 관행으로 확립시킴으로써, 투키디데스의 말은 또한 그의 뒤를 이은 연구자들에게 역사하기를 어떻게 하고 과거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둘러싼 투쟁이 언제나 온화하거나 갈등에 자유로운 것만은 아닐 수도 있음을 유념하게 했다.
---「2장 고대 수정주의 역사의 기원」중에서
21세기 초반까지, 학술적 권위와 대중적 태도 사이의 긴장은 사회 문제의 통상적인 구성요소가 됐다. 일부 시민들이 때때로 학문적인 역사 지식을 확실히 자리 잡거나 애국적인 사상에 대한 주제 넘는 방해라고 보는 것과 똑같이, 전문적 역사가들은 아마추어적 의견을 가끔 탐구의 깊이가 더 깊고 이해의 폭이 더 넓은 자신들의 더 큰 지식을 폄하하는 것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 그 내용과 주장에서 언제나 그럴 필요는 없을지라도, 역사가들은 때때로 학술 논쟁에서 자신들이 그러했듯이 과거에 대한 대중적 논쟁에서도 같은 겸손을 보여야만 한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두 가지 종류의 논쟁은 항상 잠정적이고 부분적이다. 그리고 과거에 대한 대중적 토론의 주장들은 그것이 일어나는 모든 시대 현실의 증거를 드러내고 있으며, 그 시대가 바로 역사 탐구의 주제임을 역사가들은 알아야 한다. 그들의 입장에서 볼 때 대중 구성원들은 역사가들이 하는 것만큼 학술적 지식을 따를 필요가 없고 다른 사람들과 의견의 합의를 이룰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들은 적어도 해석뿐 아니라 사실과도 씨름하는 역사가들이 증거로부터 이끌어낸 확실한 결론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무시하는 데서 비롯되는 잠재적 비용을 인지해야 한다.
---「3장 근대 수정주의의 역사」중에서
역사가들이 과거에 대한 모든 이해의 불완전성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분명하다는 것은 이제는 틀림없다. 과거의 세부 사항들은 너무 많고, 그것에 대한 증거들은 너무 단편적이며, 이에 대해 알고자 하는 생각들은 너무 다양해서 어느 누구도 최종적인 역사적 추측을 쓸 수는 없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역사가들은 그런 해석들이 포함하고 있는 것과 임계거리를 유지하려고 하는 동시에, 가장 광범하게 다양한 역사 해석으로부터 가능한 것을 흡수하려고 한다. 그들은 연마한 지식을 바탕으로, 자신이 알고 있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모든 해석과 모든 수정을 자유롭게 받아들이거나 거부한다. 이와 관련하여, 역사가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에 추가할 증거를 얻을 수 있고 언제나 얻기를 소망한다. 하지만 역사가들은 또한 과거의 어떤 주제에 대한 모든 새로운 견해는 본질적으로 가능하지 않더라도 그들 자신의 시대보다 이전에 일어난 것에 대해 언제나 바라던 완전한 지식에 가까이 다가가려는 노력을 한다는 것을 안다. 이런 의미에서 역사가들은 비록 거기에 어떻게 다가갈 수 있으며 일단 다가간 다음에는 무엇을 추가로 알아야 하는지에 대해 동의하지 않을지라도, 같은 목표를 위해 나아간다.
---「4장 다양한 형태의 수정주의 역사」중에서
결국 해석을 둘러싼 싸움은 경쟁자들이 그들의 삶을 살아가고 이해하는 다양한 맥락을 보여준다. 그러한 싸움들은 인간의 희망과 인식 속에 있는 단층선을 노출시킨다. 과거에 대한 지식을 바로 얻고, 해석적 차이를 좁히고, 심지어 이전 시대의 어떤 측면에 대해 일시적이더라도 어떤 종류의 합의에 도달하기 위한 그들의 노력을 고려할 때, 학자들은 과거에 대한 자신의 해석이 권위와 신빙성을 가지고 있다고 당연히 믿는다. 그러나 무슨 근거로 그런 주장을 이해해야 하는가? 열린사회에서는 모든 견해가 존재할 권리가 있다. 그 권리는 예외적인 상황과 예외적인 이유로 법에 의해서만 제한된다. 적어도 미국에서는 그렇다. 학자나 일반 대중이 자신들의 견해에 대한 결정적인 방어나 다른 사람의 관점에 대한 승리를 요청할 공식적 기구는 없다. 무엇이 각 주제를 바라보는 권위 있는 한 가지 방향을 이루는지 결정하는 역사 대법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의 의미를 둘러싼 갈등은 대중적으로 반복해서 따져야 한다. 그리고 서로 다른 해석의 상대적 장점에 대한 결정은 시간과 기회에 맡겨야 한다. 또한 거의 필연적으로 수정되어야 한다.
---「5장 수정주의 역사의 몇 가지 산물」중에서
역사를 이해하려면 그것을 쓴 역사가를 이해해야 한다. 역사가들이 쓰는 모든 것에 그들의 성향, 헌신, 신념이 들어가 있음을 부인하는 사람들, 즉 그것을 쓰는 개인이 들어 있지 않은 역사가 존재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역사 자체의 바깥에 자기 자신을 놓는다. 모든 역사가는 그들 자신의 역사에 연루되어 있다. 역사가들 중 어느 누구도 다른 어떤 개인들 이상으로 자신을 환경의 산물에서 벗어난 존재가 되게 할 수는 없다. 결과적으로 어떤 주제에 대한 모든 다른 이전의 역사를 수정할 잠재적 가능성은 역사적으로 사고하는 행위 바로 그 자체에 있다. 그러므로 자신이 접하는 모든 역사에 대한 주장의 경험적 기초와 강점뿐 아니라 불완전성과 편향성을 인식하는 것은 역사 독자들의 몫이다. 역사가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만큼 과거를 잘 제시할 책임을 지고 있는 반면, 이를 읽는 독자들은 자신이 읽는 것이 단지 과거를 부분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일 뿐이라는 이해를 가지고 과거에 접근해야 하는 유사한 책임을 지고 있다. 이러한 발견과 주장이 완전한 객관성이 부족하거나 불완전하기 때문에 이처럼 주의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해서 역사적 발견과 주장을 근본적으로 의심하거나 전면적으로 거부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각각의 역사 연구는 단지 과거를 잠정적으로 제시한 것으로, 그 자체의 관점으로 받아들이고 그 자체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6장 역사와 객관성」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