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팔도 어딘들 산 없는 곳이 있겠냐마는 남도 끝자락 장흥도호부에도 크고 작은 산이 많았다. 장흥 도호부가 있는 장녕성 앞쪽으로 130리 탐진강(耽津江)이 흐르고 강 양쪽에 넓게 석대들이 펼쳐져 있다. 석대들 남쪽에 웅장한 억불산이 서 있고 서쪽으로 사자가 장흥부를 노려보는 형상인 사자산과 봄이면 철쭉꽃이 만발한 제암산이 장흥도호부를 병풍처럼 둘러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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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철의 덩치만큼이나 묵직하면서도 구수한 소리가 부용산 자락을 타고 흘렀다. 산이란 저마다 다른 것 같으면서 같으니 세상사도 이와 같이 서로 다름을 인정할 줄 안다면 세상이 이리 험하지 않을 터라고 생각하던 방언은 문득 작년에 있었던 가슴 아픈 일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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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남의 발언을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누구보다 맹렬히 자신을 공격하리란 걸 이미 알고 왔다. 하지만 어린 시절 강진 동명서당에서 동문수학했던 그에게 듣는 말이기에 가슴은 더욱 쓰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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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으로 배가 뒤집어질 판인디 썩은 돛대 같은 주자 성리학만 붙잡고 있으니 한심할 뿐이네. 아니 자네들은 그 알량한 주자학으로 무식한 백성을 부리고 사는 것이 편한께 그라는 것이 아닌가? 안 그란가? 이대로 양반행세하고 아랫것들 부리면서 사는 것이 자네들한테 편한께 그런 것이 아닌가 말이여? 저 천한 백성들이 지극히 약해 보이지만 힘으로 겁줄 수 없고 어리석어 보이지만, 천하의 어떤 지혜로도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자네들은 모를 것이네. 혹 백성들을 잠시 속일지 몰라도 저 왜놈들까지 속이지는 못할 것이네. 저 왜놈들이 우리 썩은 속을 빤히 들여다보면서 스스로 무너지기만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왜 모른단 말이여? 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왜 모른단 말인가? 자네들만 모르는 것 같아, 아니 모른 척하는 것 같아 그것이 안타까울 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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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방언의 조상들은 대대로 옆 마을 묵촌동네에서 살아왔으나 방언의 나이 40이 넘어 이곳 월림동으로 이사 왔다. 사람들이 월림동과 묵촌을 구별해서 부르지만 사실 두 마을은 방짓동 뜰을 사이에 둔 이웃 동네로 묵촌은 대대로 인천이씨 집성촌이었다. 방언의 조상인 이우가 중종반정 때 이곳 장흥부 고읍에 위치한 천관산 자락으로 귀양 와 정착한 이후 근 200여 년을 살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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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작년과는 다르리라. 어제 회동에서 사발통문의 이야기가 전해졌으니 말이다. 고부에서 일이 터진 것이다. 조만간 그곳으로 가야 할지 모르니 준비를 해야 했다. 그래서 오늘 도르뫼들에서 훈련을 하기로 했는데, 훈련을 관장하는 그가 먼저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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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직한 분위기를 가른 것은 방언의 목소리였다. 모두 대접주라 위아래가 없었으나 방언이 가장 연장자이기도 하거니와 삼남도교장이라는 위치도 있고, 장흥 동학에서 차지하는 그의 영향력 또한 대단해서 장흥의 대접주라 할 만했다. 그래서 방언이 모임을 이끄는 데는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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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서 찬성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언은 좌중을 바라보며 무엇이 이들의 목숨을 초개처럼 버릴 수 있도록 만들었는지 생각했다. 무엇보다 한 가정을 이끄는 가장들이자 한창때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젊은이들이다. 세상이 이토록 엉망진창이 아니라면 평범하게 살아갈 이들이었다. 자신이 좀 더 빨리 결단을 내렸다면 달랐을까 싶은 마음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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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까지 말하자 상대는 답이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방언은 그가 그렇게 포기하기를 바랐다. 당파와 논이 여전히 관심이고 중요한 시대라는 것이 씁쓸하기만 했다. 세도정치만 남아있는 지금 사색당파가 무색해진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고루하게 입에 올리다니! 차라리 어느 집안 연줄이냐고 물어왔다면 나았을까. 세도가와 비교도 안 되지만 그래도 장흥부 인천이씨라고 출신 정도는 말해줄 수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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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공손했던 태도를 유지하긴 했지만, 차가워진 말투에 그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저러다 칼이라도 뽑아 드는 것은 아닌지 허리춤에 매달아 놓은 단도에 손을 뻗었다. “처사님 말씀이 일리가 있습니다. 소승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불편하셔도 괜찮으시다면 저희 암자로 함께 가시지요.” 우려와는 달리 스님은 말을 바꿔 그에게 동행할 것을 권했다. 일행 중 나이는 어려 보여도 스님의 위치가 낮지는 않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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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학은 하늘에 있는 하늘님을 믿는 것인데, 나는 모든 사람의 마음 안에 하늘님이 있다고 보오. 우리 유학에서 말하는 상제님 같은 것이지요. 사람은 저마다 마음속에 하늘을 담고 있는 거지요. 사람은 저마다 하늘의 명을 받고 태어난 소중한 존재라오. 그런 하늘의 이치를 세상 사람들이 편하자고 신분을 만들어 귀천으로 구분한 것이요. 다시 말하자면 남자와 여자는 물론이요, 양반이나 상민이나 천민이나 구별할 필요가 없다고 보오. 하늘이 본디 사람을 낼 때는 다 한 가지 사람이었소. 하늘이 사람을 낼 때는 각자 소중한 사람이었소. 사인여천(事人如天), 사람 대하기를 하늘과 같이 대해야 하오. 시천주(侍天主)는 그 소중한 사람을 하늘님 모시듯 하는 것이고. 불가에서도 즉심시불(卽心是佛), 즉 그 마음이 곧 부처라는 말이 있지요. 일체중생실유불성(一切衆生悉有佛性), 인간은 모두 다 부처의 성품을 타고났으니 그 마음이 곧 부처라는 뜻이지요. 그리고 그 부처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나의 마음을 깨우치면 부처가 되는 것처럼 말이요. 하찮은 미물이라도 깨우치면 다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하지 않았소? 유학에서도 민본(民本)이라는 말이 있지 않소. 백성이 근본이라고.” 방언은 그의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가 설법처럼 말하는 것들이 머리에 뒤죽박죽 섞였다. 단번에 너무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으니 호기롭던 방언이라도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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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새로 왔다는 주지로 보이는 이가 서 있었다. 합장을 한 후 고개를 들자 방언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그대는 그때 그 일지 스님이 아니요?” “잊지 않으셨군요, 처사님.” “내 어찌 잊을 수 있겠소. 그대만이 아니라 그날의 모든 이들을 잊지 않았소.”
--- p.105
주자학은 조선뿐만 아니라 중화 세상을 지배했던 사상이다. 그러나 세상이 변한만큼 시대를 지배하는 사상도 변해야 한다. 변하지 않으면 도태되기 마련이다. 이미 송나라 때 성립한 주자학이 명나라 양명학, 청나라 고증학으로 발전하다 그 명이 다했으나 조선은 소중화를 외치면서 지금까지 신줏단지처럼 모시고 있는 것이 애석할 따름이었다. 사상은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낼 수 있어야 한다. 한 시대가 가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선 새로운 사상이 필요했기에 그분은 목숨 걸고 역설하고 있는 것이었다. 사람은 자기가 배운 만큼 알고, 안 만큼 행동한다. 그래서 무엇을 얼마나 배우느냐가 중요하다. 더군다나 자신이 처한 환경을 뛰어넘어 다른 세상을 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방언은 지금껏 살아온 세상을 뛰어넘어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에 홍역을 치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 p.113
“다시 개벽세상은 어떤 세상입니까?” “양반과 노비의 구분이 없어지고, 남녀의 구별이 없어지고 임금이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주인이 돼서 그들 스스로 다스리는 그런 세상이지요. 이 세상에서 억압받고 굶주렸던 백성들이 이제 대접을 받는 그런 세상이지요. 공자님도 누구든 배우고 익히면 즐겁고 군자가 될 수 있다고 하였고, 부처님도 하찮은 미물이라도 불도에 정진하면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제 그런 세상이 오고 있지요. 아니 오도록 만들어야지요. 조선의 운이 다해가고 있다는 것은 생각을 가진 이들이라면 모두 느끼고 있을 겁니다.”
--- p.127
방언은 해월의 표정과는 달리 목소리가 이렇게 옹골찼나 싶었는데 대화에 불쑥 끼어든 이가 따로 있었다. 해월과의 담소에 집중하다 보니 불청객이 들어온 줄도 몰랐다.
“아, 제가 두 분을 소개하기 위해 이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두 분 다 훈장님이기도 하고, 아직은 동학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들어온 것과 진배없는 분들로 알고 있습니다. 통성명을 하시지요.”
“장흥부에서 온 이방언이라고 하오.”
“고부에서 온 전봉준이요. 사람들이 제 생김새를 보고 녹두라고 하지요.”
자신의 작은 체구를 빗대어 스스로 녹두라는 별명을 전하는 그의 배포가 마음에 들었다. 녹두가 작기는 하지만 단단하기는 오죽 단단한가. 아마 그 또한 그러지 않을까 짐작해보았다.
--- p.129
세상이 리(理)가 중하냐 기(氣)가 중하냐로 한평생을 다투는 동안 누군가는 백성들의 고픈 배를 채워주고 있었구나. 나랏님만 할 수 있을 것 같은 환난상휼을 직접 실천하고 있었구나. 양반이라는, 지주라는 기득권을 버리지 못하는 동안 누군가는 신분의 벽을 무너뜨리고 모두 같은 사람이라 여기며 맞절하고 서로를 접장이라 높여 부르며 평등사회를 실현하고 있었구나. 방언은 누구보다 창휘의 말에 충격을 받았다. 제 나이 오십에 비로소 결단을 내리게 되었음을 느끼게 되었다. ‘사람은 부모를 닮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닮는 것’이라는 말처럼 방언은 혼란한 시대에 자신을 맡긴 것이다. 그리고 그는 어산접의 접주가 되었다.
--- p.133
기포 사발통문이 전해진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장흥 동학군들에게 동학군의 본영이 있는 백산으로 결집하라는 전갈이 왔다. 장흥의 접주들이 모였고, 얼마 전에 논의했던 대로 대흥접과 어산접이 선발대로 나서기로 했다. 나머지 접들은 지원 요청 시 움직이거나 장흥을 지키며 만전을 기하기로 했다.
--- p.139
며칠 후 백산에 도착하자 고부 관아를 점령한 동학농민군들이 돌아와서 진을 치고 있었다. 무장에서 기포할 때 전봉준, 손화중이 4천여 명의 동학농민군을 모아놓고 발포한 포고문의 내용을 그곳에서 들었을 땐 가슴이 벅차 올랐다.
--- p.147
동학농민군은 감영군을 계속 추격하였고, 감영관 대장 이경호를 체포하여 처단하였다. “워메, 우리가 해불었어! 우리가 이겨브렀당께!” 첫 전투에서 이긴 동학농민군들의 함성이 황토재 들을 뒤덮었고, 동학농민군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 p.156
장흥에서 올라올 때부터 그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던 생각을 정리했다.
“언젠가 마당에 있는디 장태가 굴러다니더라고. 아마도 닭장에서 떨어진 모양이여.”
“갑자기 장태라니요?”
인환은 갑자기 장태 이야기를 꺼내는 방언의 속뜻을 알 수 없었다.
“여기가 어딘가?”
인환은 장성 황룡강에서 방언이 손으로 가리키는 삼봉을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도대체 삼봉과 장태가 무슨 연관이 있나 생각하다가 곧 방언의 깊은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 p.163
하늘을 찌를 듯한 동학군의 사기 진작으로 전주성 입성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동학군이 서문, 남문, 북문을 집요하게 공략해서 성문이 뚫리기도 했지만, 성안에 동학에 동조하는 이들이 많아 문은 어렵지 않게 열렸다. 상당수 동학군이 미리 장사치로 변장하고 성내로 들어가서 성문을 열었던 것이다. 전라감영이 있는 전주성이 이리 허술하게 열리다니 조선 관군의 실상을 알 만도 했다. 성안 사람들의 환호성을 들으며 동학군은 성으로 들어갔다.
--- p.171
방언은 집강소가 설치된 이후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폐정개혁을 실천에 옮기는 일 때문이기도 했지만, 전주성 전투 이후 장흥으로 돌아온 동학농민군의 정신무장을 위해 접주들에게 단단히 이르는 일이며 언제가 될지 모르는 2차 기포를 준비해야 했다. 그리고 박헌양 부사의 행동반경을 고려하는 것은 물론 인근 강진이나 나주 등의 상황까지 점검했다.
--- p.200
오랜만에 만난 벗을 그냥 보낼 수 없어 방언은 오래전에 담가둔 솔잎주와 매실주를 꺼내 창규와 민주에게 내놓았다. 셋은 이내 동학이고 왜놈이고 다 잊고 젊은 시절 강진 동명서당에서 글공부하던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희미한 호롱불 아래서 비워지는 술잔만큼 웃음소리는 담을 넘고 있었다.
--- p.209
“아마도 조만간 조선팔도가 떠들썩해블 겁니다. 그라고 그 안에는 장흥이 있을 겁니다. 그때 형님들께서 도와주셨으면 좋겄습니다. 사실은 마음만으로도 참말로 고맙게 생각헙니다.” “우리 역시 자네가 만들고자 하는 세상을 반대허지는 않네. 오랫동안 짊어진 유림이라는 짐을 벗을 용기가 없을 뿐이제. 다만 이렇게라도 참여하고 싶은 거라네.” 방언 또한 묵암공이 세상을 떠난 후에야 동학으로 본격적인 행보를 보였던 것은 유림으로서 전통을 가진 집안의 무게 때문이기도 했다. 이들도 장흥에서는 유림으로서 뿌리 깊은 집안이다 보니 마음이 있다고 해서 행동으로 나서기는 힘든 점이 있었다. 방언으로서는 그들이 다른 유림처럼 반대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었다.
“성님들의 도움은 이 조선의 장래에 덕을 쌓는 것이지라. 내 죽어도 잊지 않겄습니다.”
방언은 그들이 해줄 수 있는 도움을 요청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2차 기포의 통문을 받았다.
--- p.229
우금치 전투가 끝나고 일본군과 관군 연합군은 본격적으로 동학농민군을 소탕하기 시작했다. 퇴각하는 동학농민군을 아래로 몰아붙이면 해남이나 장흥 쪽으로 도망갈 것을 짐작하고 동쪽에서는 부산에 주둔한 일본군 토벌대가 진주, 여수, 순천을 거쳐 보성 쪽으로 들어오고 있었고 남해안 섬으로 도망갈 동학군을 토벌하기 위해 일본 순시선이 보성, 완도 쪽 남해 바다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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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부사는 목숨 줄처럼 여기던 인부를 빼앗긴 후 혀를 깨물었다. 여성의 몸으로 누구보다 앞장서서 목숨 걸고 싸웠던 여동학 이소사 접장이 박 부사의 최후를 맡았다. 그간의 관리들에게 빼앗기고 억눌렸던 동학농민군들의 분노가 고스란히 그에게 쏟아질 수밖에 없었다. 장녕성을 지키다 박 부사와 함께 목숨을 잃은 수성군은 모두 96명이었다. 장흥부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장녕성은 그렇게 무너졌다.
--- p.273
마치 천지를 흔들 듯 화약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불길이 순식간에 번졌다. 그는 물론 화약고를 향하던 동학군과 주위에 있던 수성군 수십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 화력이 얼마나 센지 성안의 집들까지 불에 탔다.
“불이다.”
“화약고에 불이 났다!”
“아! 틀렸구나!”
화약고의 폭발로 성안이 불타는 것을 알게 된 방언은 지금껏 볼 수 없는 어두운 낯빛을 하며 탄식과 함께 주저앉았다.
“법헌 어른!”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은 방언을 창휘가 부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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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토끼몰이를 제대로 즐겨볼까?” 미나미 고시로(南小四郞). 그는 일본군 제19대대를 이끄는 소좌로, 동학농민군을 토벌하기 위해 일본에서 보낸 지휘관이었다. 조일연합군은 미나미의 지휘하에 놓여 있었다.
--- p.300
“녹두대장! 좋은 소식 전하지 못해 미안하오.” “간간이 선전하시는 소식 들었습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해 제가 더 죄송할 따름입니다.” 봉준이 말하는 약속은 나주에서 만나서 같이 한양으로 올라가자는 것이었다. 방언으로서도 병영성을 함락하는 순간 그 꿈의 절반은 이루었다고 생각했다. 전봉준의 체포 소식은 들었지만, 병영성의 성과를 가지고 나주로 향했다면 그들을 구출할 계획도 있었다. “나도 곧 갈 것이오. 또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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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 성호는 그를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마지막 길에 부자 상봉을 해주어 고맙다고 해야 하나, 장흥부 옥 안에서 이루어진 부자 상봉이었다. “어찌 되었느냐?” “숨어 있다가 잽혔는디, 옥에 가두고 그냥 둬블드라고요.” 아마도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미나미 대대장의 씨를 말린다는 말이 귀에 꽂혔다. 모든 것이 계획되어 있었다. 그가 나주에서 한양으로 압송될 때부터 이렇게 되도록 계획이 있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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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을 집행하라!”
싸늘해진 분위기에 장흥부사는 지체하지 않고 보란 듯이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 명과 동시에 방언의 턱까지 씌워진 짚으로 만든 삿갓에 불이 붙었다. 초여름이 오고 있어 날도 더워지는데, 뜨거운 불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방언은 눈을 감지 않았다. 그리고 눈을 더 크게 뜨고 석대들과 억불산을 응시했다. 불길 속에서 억불산 산등성이로 붉은 동백이 보였다. 동백은 진즉 졌는데, 다시 동백이 피어나고 있었다. 동백은 깃발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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