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눈사람!”
형준이 자랑스럽게 말하는 웃는 표정의 뚱뚱한 눈사람은 주황색 코를 달고 있었다.
지윤은 조금 전에 완성한 자신의 눈사람을 힐끗 쳐다보았다. 형준의 눈사람 반만 한 지윤의 눈사람은 작았지만 훨씬 예뻤고 동글동글했으며 무엇보다 깨끗했다. 어디의 눈을 어떻게 뭉치면 저렇게 거무튀튀한 눈사람이 만들어지는 걸까?
“야야, 네 눈사람은 완전 거짓말이야. 네 코가 어디가 그렇게 높냐?”
“이 정도로 무슨 거짓말?”
시비를 거는 말에 흥, 하고 콧방귀를 뀌고 캔커피를 쥔 손을 호주머니에 넣었다. 따뜻하고 따뜻하고 따뜻하다.
“그럼 거짓말이지, 별게 거짓말이야?”
형준이 맘에 안 든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정말 거짓말이 뭔지 알아요?”
지윤의 물음에 형준이 돌아보았다.
“뭔데?”
“내가, 좋아하는 거 알아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시선조차 흔들리지 않고 지윤이 말했다. 그러나 순간 눈밭의 농담(濃淡)이 달라졌다. 얼어붙은 것 같은 시선이 맞닿은 지 1초, 2초, 3초, ……공기가 위험해지려 하는 그 순간 지윤이 씩 웃었다.
“이런 게 거짓말이야.”
“알아.”
형준이 대답했다.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대답했다.
마치 꿈꾸는 것 같은 저음이었다. 가슴 언저리가 누른 듯 아파왔다. 마주치지 않은 시선에도 무게가 있다는 것을 지윤은 처음 알았다. 거짓말이기에 가능한 언어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네가 아는 것보다 더 많이, 더 선명하게, 알아.”
서로를 바라볼 때, 감정의 무게는 한층 더 깊어지는 것이었다. 커다란 손이 올라와 싸늘하게 식은 뺨을 감쌌다. 그러나 손의 체온이 너무나 뜨거워 허전한 다른 뺨은 시리도록 추웠다.
“잘 들어.”
형준이 지윤을 끌어당겨 안았다. 형준의 품에 얼굴을 묻은 채, 그 체온을 고스란히 넘겨받으면서 지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랑해.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순간도 사랑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하지만 안 돼.”
무슨 이야기인지 안다. 아니길 바라지만 이제는 무슨 이야기인지 안다. 그녀가 변할 수 없는 것처럼 그도 변할 수 없다. 흐르기 시작한 계절은 멈추었던 시간만큼 높은 파고(波高)를 일으킨다.
천천히, 죽기보다 놓아주기 싫은 것같이 형준은 지윤을 놓아주었다. 대신 형준의 이마가 지윤의 이마에 닿았다. 지윤이 쓰게 웃었다.
“정말 끝내주는 거짓말이다.”
“뭘 해도 너보다는 잘하지.”
형준의 목소리가 잠겨 있었다.
“……같이 죽을까?”
깊은 밤의 절망처럼 지윤이 속삭였다. 그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매달리듯, 꼭 그럴 수 있을 것처럼. 거짓말이니, 어떤 이야기를 해도 상관없는 순간.
“그래, 죽자…….”
다시 한 번 형준이 지윤을 품 안 깊숙이, 하나가 되고 싶은 것처럼 끌어당겼다. 가느다란 팔이 형준의 등을 감쌌다.
작은 마당에 눈사람이 두 개, 사람도 두 명, 그렇게 서 있었다. 오래, 오래.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