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업계 룰은 좀…… 복잡해. 아이돌 걸 그룹 멤버인 나는 연애 같은 데는 관심이 없는 순수한 옆집 소녀 같은 완벽한 이미지를 지켜야 해. 오직 팬들한테만 충성을 다해야 해. 아, 오해하진 마. 우리가 팬들을 아주 많이 사랑하는 건 사실이니까. 그냥, 좀 어려워. 우린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 p.79
“그와 같이 있는 모습을 한 번 더 들키면, 내 커리어는 끝장이야.” 이것은 어제 내가 앨릭스에게 이해시키려 애쓴 것과 같은 상황이다. 케이 팝 여자 아이돌에게 데이트는 그냥 데이트가 아니다. 걷잡을 수 없는 나쁜 결과가 따를지도 모르는 위험한 일이다. 물론 온당하지 않지만, 현실이 그랬고, 우리 모두 그 현실을 알고 있다.
--- p.92
노 대표가 직접 문자를 보내는 일은 거의 없었고, ‘당장’이라는 표현을 써서 호출한 적도 없었다.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서둘러 방으로 가서 젖은 머리를 말아 올리고 청바지와 헐렁한 줄무늬 티셔츠를 입었다. 작은 실마리라도 찾고 싶어, 회사로 가는 내내 노 대표의 메시지를 보고 또 보았다. 하지만 대표실로 들어가자마자 호출 이유는 분명해졌다. 은지가 이미 소파에 앉아 있었고, 얼굴은 눈물로 젖어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았다. 은지는 입 모양으로 말했다. ‘들켰어.’
--- p.271
나는 칠 년의 연습생 기간 동안 내가 참 많이 변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난 육 년, 데뷔한 이후부터의 시간도 나라는 사람을 바꿔놓은 시간이었다. 나는 온 마음으로 케이 팝을 사랑하는 동시에 다른 일도 열심히 해나갈 수 있는 다채로운 사람이 되었다. 다채롭다. 지금의 레이첼 가방을 설명하는 딱 좋은 표현이 될 것 같았다. 나는 그 표현을 홍보에 사용해야겠다고 머릿속에 메모한 다음, 이 순간에 집중하자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우리가 벌써 육 년이나 되었다니. 이곳의 우리를 다시 한번 둘러보니 눈물이 고였다. 이 여덞 아이들과 나는 얼마나 많은 일을 함께해왔는가. 나는 잔을 들어 올리고 말했다. “걸스 포레버의 육 주년을 위하여.” 우리는 건배하고 외쳤다. “그리고 더 긴 시간을 위하여!”
--- p.323
어렵고도 중요한 질문이 등장했다. 앨릭스는 내 남자 친구가 되고 싶어 한다. 아니, 이미 내 남자 친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도 그러기를 원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러니까 내가 사는 현실에서 누군가를 ‘남자 친구’로 삼는 일은 위험한 영역에 발을 디디는 일이다. 고등학생 때 주현이는 친구, 성적, 잠 중에서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케이 팝 세계에서는 그룹 활동, 개인 활동, 연애 중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것 같다. 그중에서 선택을 한다는 건 다섯 손가락 중 없어도 살 수 있는 손가락이 무엇인지를 억지로 고르는 일과 같지만, 결국에는 자신에게 무엇이 더 중요한지 파악해야 한다.
--- p.366
앨릭스는 다시 단정한 자세로 앉아 말했다. “우리를 위해서 건배하자. 우리는 무엇이든 같이 헤쳐 나갈 수 있을 테니까. 파파라치든 인터넷의 악플러든 호텔의 귀신이든, 도시 철도와 스키 연습장에서 벌어지는 생명을 위협하는 사고든, 전부 다. 당신과 나, 우리는 한 팀이야, 레이첼.”
--- p.400
걸스 포레버가 아닌 나는 누구일까? 팀에서 방출된 후에도 나는 혼자 성공할 수 있을까? 팬들이 나를 보러 와줄까? 이 질문들이 지난 몇 달 동안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솔직히 답은 알 수 없었다. 아직은 말이다. 하지만 이제 그 답을 향해 한 발을 내디디려 하고 있었다.
--- pp.452~4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