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서는 『속일본기(續日本紀)』에 등장하는 귀수왕(貴須王)에 관한 기록을 단서로 하여, 『일본서기』의 신공기(神功紀)를 관통하는 두 개의 시간 축에 정합하는 삼국의 왕계를 실제 시대에서 재구성하는 과정을 공유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여기서 얻어진 삼국의 왕계는, 『삼국사기』가 기록한 2세기까지의 고구려 왕계나 4세기까지의 백제와 신라 왕계에서 발견되는 시간에 관한 의혹을 모두 해소할 뿐 아니라, 해당의 구간에서 중국과 일본의 사서가 묘사하는 삼국의 시간과도 완전한 정합성을 가진다.
즉, 복원된 신라 왕계는 『일본서기』 신공기에 등장하는 파사왕의 시대와 정합하고, 백제의 왕계는 『일본서기』 신공기에 등장하는 초고왕과 『속일본기』에 등장하는 구수왕의 시대와 정합하며, 고구려의 왕계는 『후한서』와 『삼국지』에 등장하는 궁(宮)의 시대와 정합한다. 이들 삼국의 왕계가 새롭게 가리키는 고구려의 건국 시점은 서기 32년이고, 백제의 건국 시점은 서기 51년이며, 신라의 건국 시점은 서기 76년이다. 그러나 지금의 삼국 왕계는 이로부터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조되어 있고, 본서는 이 변조의 구조가 『일본서기』의 경행기(景行紀)로부터 신공기에 이르는 시간의 변조 구조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사실을 정량적으로 밝혔다.
즉, 『일본서기』는 신공기를 실제의 시대로부터 120년 인상하면서, 그 인상을 정당화하기 위해 인상된 시점에 실제로 재위하고 있던 파사왕과 초고왕을 언급했다. 그와 동시에, 『일본서기』는 누구도 재위한 적이 없는 신공기를 정식의 기년 체계에 삽입함으로써, 원래 그 시대에 재위하고 있던 경행(景行), 성무(成務), 중애(仲哀)의 연대를 신공기 이전으로 밀어 올리는 변조를 했다. 이러한 변조의 결과, 경행의 즉위년이 신공기 시대로부터 최종적으로 120년이 인상되는 지금의 기년 체계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신라의 파사왕과 백제의 초고왕은 신공기가 기록한 각각의 시점에 실제로 재위하고 있었고, 원래의 기년 체계로 본 그 시점은 각각 경행과 성무의 시대이다. 『일본서기』에서 신공기에 대한 경행기의 인상은 파사왕과 초고왕을 중심으로 하는 삼국 왕계에 대한 상대적인 인상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를 확인한 삼국사의 편찬자들은, 이미 발생되어버린 기년상의 왜곡을 해소하기 위해 원래의 파사왕과 초고왕의 재위 시기를 앞서 변조된 『일본서기』의 시간에 부합하도록 조정을 가했다. 이것이 『일본서기』의 작성 당시 신공기에서 참조된 신라와 백제 왕계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모습으로 변조된 이유이다.
이러한 삼국 왕계에 대한 조정은, 각 해당 구간의 재위 시간을 늘리거나, 해당 구간에서 병립하고 있던 또 다른 계보를 하나의 시간 축에 재배열하는 방법으로 이루어졌고, 적어도 『삼국사기』가 참조한 『해동고기』의 단계에서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삼국사기』의 찬자가 『고기』와 『후한서』의 기록이 일치하지 않는 것에 대해 의문을 표시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이처럼, 『삼국사기』의 소위 초기 기록에서 발견되는 시간에 관한 제반 의혹이, 이미 앞서 변조된 『일본서기』 기년과의 조정 때문에 생겨난 것이었다면, 더 이상 해당 구간에 대한 『삼국사기』의 기록을 불신할 이유는 없다. 객관적으로 검증된 변조의 구조를 수용하여 당시의 역사를 다시 해석하는 과제만 남게 되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까지 『삼국사기』의 초기 기록에서 발견되는 시간에 관한 의혹에 관해서는 많은 연구가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누구도 통합적인 관점에서 그 이유를 설명하는 것에 성공하지 못했고, 그 이유는 대개 서로 연도를 대조할 수준의 제3의 사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필자는 『삼국사기』와 『일본서기』의 시간을 단순히 대조하는 평범한 방법을 통해, 지금까지 두 사서에 숨겨져 있던 실제의 시간을 동시에 복원할 수 있었다. 『삼국사기』와의 대조를 위한 제3의 사료는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의 곁에 있었던 셈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동안 한·일 양국의 대부분 사람이 상대의 사서를 불신하고 무시하거나 폄하한 나머지, 설마 자국의 정사를 구성하는 기년 체계가 상대국 사서의 기년 체계와 연결되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삼국사기』와 『일본서기』의 시간은 특정한 공통의 구간에서 서로 정교하게 정합하면서, 실제의 시간으로부터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기록의 시간으로 함께 변조되어 있다.
두 사서에 기록되어 있는 시간은, 지금까지 많은 사람이 여겨왔던 것처럼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시간이 아니었던 것이다. 본서에서처럼 『일본서기』에 의해 삼국의 시간이 복원되고, 그 삼국의 시간으로부터 다시 『일본서기』의 시간이 연도 단위로 복원될 수 있었던 것도, 이들 두 사서에서 변조되어 있는 시간의 정교함 때문이었다.
---「머리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