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미국 문명에 관해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다. 미국 문명에 관해서는 이미 다양한 해석이 있다. 그러나 기존 해석과 달리, 이 책은 미국 문명이 본질적으로 자본주의라고 규정하고 거기에 역사학적 방법으로 접근한다. 바꿔 말해, 미국에서 자본주의가 어떤 과정을 거쳐 발전했는지, 오늘날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지, 또 세계를 어떤 방향으로 끌고 나가는지, 살펴본다.
---「서문」중에서
잘 알려져 있듯이, 이제 미국 문명에서는 경제 권력이 과거 어느 때보다 확고한 자율적 위상을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온갖 생활 영역에 깊이 스며들어 있기도 하다. 심지어 대학에서도, 오래전부터 다양한 압력에서 벗어나 객관적 진실을 밝혀내려 애쓰며 사회적으로 널리 신뢰를 받던 이 지도적 공공 기관에서도,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자세가 새로운 행동 윤리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바로 거기서 자본은 종래와 다른 행태를 보여 주기도 한다.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줄 것으로 보이는 지식을 뒤쫓으며 거기에 편승해서 더 나은 증식의 기회를 잡으려 한다. 나아가 새로운 권력으로 성장하는 지식과 공생하는 관계를 맺으려 한다. 따라서 필자는 이처럼 변모하는 지식과 자본의 관계, 또는 지적 권위와 경제 권력 사이의 관계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물음에 부딪힌다. 그것이 자본주의가 새로운 단계로 발전한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아니 한 걸음 더 나아가 자본주의를 대체하는 새로운 문명으로 진입한다는 것을 시사하는가 하는 물음에 부딪힌다. 이런 뜻에서, 필자는 오늘날 미국 문명이 기로에 서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서론」중에서
이주민은 널리 알려져 있듯이 아메리카를 충격에 빠뜨렸다. 15세기 말에 시작된 탐험은 한 세대가 지나기도 전에 정복과 약탈로 바뀌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정복자들이 “황금의 도시”나 “황금의 제왕”을 찾아 맹렬한 기세로 진격하며 원주민을 학살했다는 것은 전설처럼 들리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예를 들어 에르난 코르테스Hernan Cortes는 500명이 조금 넘는 원정대를 이끌고 아즈텍제국 공략에 나섰고, 프란치스코 피사로Francisco Pizzaro는 200명에도 못 미치는 원정대로 잉카제국의 8만 대군을 대적했다. 원정대는 무엇보다 오랜 훈련과 많은 경험을 쌓은 직업군인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총포를 포함해 원주민이 본 적도 없는 철제 무기가 있었고, 말처럼 크기와 힘으로 원주민을 압도할 수 있는 수송 수단도 있었다. 더욱이, 오랜 세월에 걸쳐 유라시아 인구 사이에서 발달한 면역력이 있었다. 천연두, 홍역, 수두, 인플루엔자 같은 전염병이 아메리카에서 90 % 정도의 놀라운 치사율을 보이자, 정복자들은 전염병을 일부러 퍼뜨리며 원주민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그 외에 정복자들의 기이한 광기와 원주민의 헤아리기 어려운 공포도 있었다. 결국, 어림잡아 5,000만 명을 넘나들던 원주민 인구는 1600년에 이르면 대략 500만 내지 1,000만 명으로 격감했다. 거기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해안과 평야를 내놓고 오지로 몸을 숨겼다. 이렇게 해서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아메리카를 석권하는 데는 백 년도 걸리지 않았다.
---「제2장 원주민과 이주민」중에서
북미대륙의 영국 식민지는 일찍이 문명의 초석을 마련한 데 이어 18세기에는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시기를 맞이했다. 그에 따라 본국과의 관계도 적잖은 변화를 겪었다. 식민지는 여러 측면에서 본국과 비슷하면서도 매우 다른 사회로 발전했고, 영국은 거대한 제국으로 팽창함에 따라 여러 대륙에 건설된 다양한 식민지에 어떤 위상을 부여하고 그와 어떤 관계를 수립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일관성 없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영국과 식민지 사이에는 긴장 관계가 조성되었고, 그것은 특히 북미대륙에서 심화되었다. 거기서는 이주민이 스스로 영국인이라 생각하면서 영국과 유사한 정치체제를 세우고 영국인으로서 온갖 권리를 누리려 했던 반면에, 영국은 그들을 어디까지나 식민지인으로 취급하면서 어떻게든 통제하고 복속시키려 애썼기 때문이다.
---「제4장 제국과 식민지」중에서
돈이 독립된 힘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어떤 길을 열어 주는가는 돈에 대한 사랑을 얼마나 풀어 주는가 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이다. 그것은 경제 권력이 해방을 넘어 여러 권력 사이에서 어떤 위상과 역할을 차지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권력구조의 개편 문제가 떠오른다고 할 수 있다. 권력구조는 보통 정치권력을 기능에 따라 구분하고 그 사이에 수립하는 체계를 가리킨다. 그렇지만 여기서 그것은 매우 넓은 뜻으로 쓰인다. 필자가 문명 개념을 제안하며 언급한 것처럼, 힘. 흔히 정치권력을 가리키는 권력을 넘어, 사람을 움직이는 모든 종류의 힘. 은 완력이나 매력 같은 개인적인 힘에서 제도화된 무력이나 문화적 영향력 같은 사회적인 힘까지 매우 다양한 현상이다. 재산에 토대를 두고 성립하는 경제 권력은 린드블럼이 지적한 것처럼 자원의 생산과 분배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따라서 그것은 해방되는 순간부터 다른 권력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 하는 문제를 일으킨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이 마련되고 실천에 옮겨지면, 공식적 권력구조를 비롯하여 넓은 뜻의 권력구조에 중요한 변화가 일어난다. 이 변화는 본질적으로 정치과정이며, 그 결과도 정치체제의 변화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자본주의 문명은 정치적 토대 위에서 성립한다고 말할 수 있다.
---「제4장 제국과 식민지」중에서
사실, 미국혁명은 많은 한국인들에게 친숙하지 않은 근대적 인간관을 전제로 삼는다. 독립선언문에서 드러나듯이, 미국인들은 자신들이 인간으로서 기본적 권리를 갖고 있으며 정치적 권위의 원천으로서 스스로 정부를 수립하거나 폐지하는 능력을 지닌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들이 어떻게 해서 그런 권리와 능력을 갖게 되었는지 언급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18세기 말 서양에 널리 퍼져 있던 신념이었기 때문이다. 그 신념은 필자가 다른 글에서 지적한 바 있듯이 서양에서도 근대 초기에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 중세 말부터 오랜 기간에 걸쳐 서서히 발전했다. 여기서 인간은 물론 인류에 속하는 모든 인간이 아니라 정치적 발언권을 지니는 백인 남성으로 상정된다. 그래도 그런 존재가 중세 말부터 서양에서 서서히 대두했다는 사실은 이미 백여 년 전에 독일의 역사학자 오토 기이르케Otto Gierke가 밝힌 바 있다. 그에 따르면, 중세 말에 여러 군주가 교황의 권력에 도전하며 자신들의 입지를 옹호하는 과정에서 정치 이론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무엇보다도, 지배의 정당성을 해명하는 근거가 종교적 권위 대신에 신민의 동의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변형되었다.
---「제5장 미국혁명」중에서
애덤스의 견해는 매서추세츠 헌법과 더불어 혁명기 미국에서 참고 자료로 널리 활용되었고, 또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연방헌법에도 뚜렷하게 반영되었다. 거기서 무엇보다 주목을 끄는 것은 그 속에 들어 있는 제도적 장치보다는 그 아래에 자리 잡고 있던 기초적 관념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그가 공화정을 바람직한 정부 형태로 여기며 그 본질을 “법의 지배”rule of law로 본 것은 오늘날 미국 역사학계의 연구 동향은 물론이요 한국의 문화적 맥락을 고려할 때에도 음미해 볼 만한 대목이다. 이 어구는 오늘날 한국에서 흔히 “법치”로 번역된다. 그것은 고대 중국에서 법가가 강조했을 때부터 ‘자의적 명령 대신에 일정한 법률로써 지배한다’는 뜻으로 쓰였다. 여기서 지배의 주체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 주체가 군주라는 점은 주의를 환기할 필요조차 없는 암묵적 전제였다. 사실, 법가에서 군주는 법을 제정하거나 철폐할 수 있는 주권을 지녔으며, 따라서 법을 초월하는 존재였다. 반면에 “법의 지배”에서는 그런 존재가 용납되지 않는다. 이 어구는 ‘사람을 대신해 법이 지배한다’는 뜻을 담고 있으므로, 법을 지배의 주체로 상정하며 그럼으로써 법을 초월하는 존재를 부정한다. 그렇지만 애덤스를 비롯한 혁명기 미국인들이 법률을 제정하는 사람의 존재와 역할을 부인한 것은 아니다. 그런 존재와 역할은 군주나 귀족이 아니라 시민이 차지했다. 그들이 수립하고자 하던 공화국에서, 시민은 법률을 제정하고 또 그것을 준수하는 주체였다. 공화국이란 시민이 주권의 주체로서 스스로 통치하는 체제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의 지배”는 시민의 자치를 구현하는 실천 방안이었다.
---「제6장 연방헌법」중에서
그러나 미국 헌법에는 주목할 만한 문제점도 있었다. 흑인과 여성을 비롯한 소수집단은 독립선언문과 마찬가지로 미국 헌법과 권리장전에서도 간과되었다. 새로이 수립되는 권력구조에서 주체는 공식적으로 시민이었으나, 실제로는 재산을 가진 백인 남성으로 한정되었다. 그 이외의 미국인들은 인간과 시민이 지니는 기본적 권리를 제대로 지니지 못했고, 따라서 새로운 권력구조에서 발언권을 누릴 수도 없었다. 더욱이, 미국 헌법과 권리장전에서 보장되는 기본적 권리도 국가와 공적 영역에 한정되어 있었다. 이미 독립선언문에서 “생명과 자유, 그리고 행복의 추구”로 집약되었던 기본적 권리는 가정이나 직장에서 개인 사이에 형성되는 불평등한 관계로, 그것도 흔히 억압과 착취를 수반하는 관계로 확장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래도 미국 헌법과 권리장전은 독립선언문과 마찬가지로 미국인이라면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 어휘를 사용하며 기본적 권리를 규정했다. “모든 사람은 본래 평등하다”는 문구에서 출발하는 이 보편적 선언은, 따라서 기본권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소수집단에게 영감의 원천이자 투쟁의 무기로 부각되었다. 실제로, 소수집단은 오랜 세월에 걸쳐 피나는 투쟁을 벌인 끝에 기본적 권리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미국의 자본주의 문명에, 바꿔 말하면 경제 권력에 자율적 위상을 부여하는 넓은 뜻의 권력구조에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왔다.
---「제6장 연방헌법」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