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후 작가는 크루즈 파티장의 여기저길 둘러보고 있었다. 1948년, 여·순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들의 자손이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조국에 돌아올 수 없는 사람들이 오랜만에 귀국을 한 것이다. 김동민 대조구릅 회장이 역사적인 거사를 도모한 것이다. 여수 해양엑스포를 계기로 지구촌에 흩어져 살고 있는 여수 사람들을 불러들였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잘한 일이었다. 1948년 여·순사건으로 고향 여수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후손들이 고향 여수에 와서 자신의 정체성을 알게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돌이켜보면 여·순사건은 선량한 민간인이 학살당한 탓에 친족과 이웃 간의 보복과 증오가 점철되어 수많은 사건을 유발하였다. 피해자의 복수, 가해자의 방어,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된 형국이었다.
반란에 가담했건 안 했건 모두가 죄인이 된 여·순 사람들, 서로가 가해자이며 피해자란 죄의식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후유증에 시달렸다. 선후의 이야길 들으며 리만 부라더스는 울분을 삭이고 있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인간 도륙이군요. 같은 남로당 프락지인 노학년의 배신으로 처형 당했어요.”
“그 사건의 중심에선 당신의 외조부는 남로당 프락치였어요.”
“저의 외조부 장인석이 노학년에게 처형당했다고요?”
비로소 리만은 여수의 비극을 알았다. 해방 직후 이념대결에서 남로당의 주역인 박헌영은 이 지방 지식인 중에 장인석, 노학년, 한재수, 그리고 김태삼, 이수임, 한채연을 이용했다. 여·순 반란 사건 때 장인석은 여수에 급파된 남로당 여수지부 위원장이었고, 노학년은 조직위원장, 한재수는 선전부장, 그리고 김태삼은 행동부장역을 맡았다. 그리고 순천에서 김현수와 안성근이 이들과 활동을 같이했다. 반란이 진압되고 그 반란의 주역 중 장인석과 김태삼, 한재수는 처형 되었으나 약삭빠른 노학년은 어느새 우익으로 변신하여 반란군 색출의 주동자로 나섰다.
박철 형사는 이 말을 남기고 떠났다. 정말 이상한 놈들이었다. 박 형사는 노학년의 저택으로 돌아와서 범인이 침입한 주변을 살폈다. 저택을 빙 둘러 물론 방안까지 고성능 CCTV가 설치되어 있어서 범인의 움직임을 자세히 촬영할 수 있는 상태였다. CCTV 영상 필름을 되돌려 봤지만 범인이 침입한 흔적은 없었다. 외곽 경비도 삼엄한 상태였다. 그렇다면 범인은 내부에 있는 것이 아닐까? 그의 가슴에 꽂힌 쌍칼에도 지문이 남지 않았다. 그런데 노학년 옹의 방에서 한 가지 단서를 잡았다. 그날 밤 노학년이 쓴 편지였다. 그 편지는 누군가에게 부칠 셈으로 쓴 글이었다. 그 편지는 유언이 되고 말았다.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다시 시작되는 전쟁을 어떻게 할 것인가?…’란 글이었다. 여기서 전쟁이란 말에 주목해 보았다. 밀수와의 전쟁 아니면 사업 전쟁 그리고 골 깊은 원한 관계로 인한 복수 등 여러 가지 방향으로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박철 형사는 시작되는 전쟁이란 말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누가 누구와의 전쟁이란 말인가. 갑자기 박동근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할아버진 ‘여수의 추억은 끝나지 않은 전쟁’이라고 시로 썼다.
죽기 싫으면 조국을 떠나라는 노학년의 명령을 받고 홍콩으로 피신하였다. 홍콩에서 부두 노동자로 활동하다가 영국 화물선을 타고 유럽으로 가서 네덜란드에서 부두 하역 잡부로 일했다. 떠돌이 집시에겐 정착이란 말을 쓸 수가 없었다. 다시 독일로 스웨덴으로 떠돌다가 그곳에서 한 여인을 만났다. 호주 여인인데 화물선 식당일을 하였다. 그 여인의 동정과 구애로 마침내 결혼했고 그녀의 고향으로 이주를 했다. 20대에 한국을 떠나 97세가 되었으니 오랜 시간이었다. 가난하지만 아내의 도움으로 마음 놓고 살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의 가슴엔 그리운 고국으로 돌아가는 일념이 가득했다. 그러나 돌아가면 방공법으로 감옥 생활을 하는 처지라서 귀국을 피했다.
순천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문단에 데뷔했고 기라성 같은 시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시를 발표하였다. 당시 서정주 신석정을 능가하는 대시인으로 지목받았으며 장차 한국 문단의 거목으로 등장할 시인이었다. 그런데 좌익이란 죄명과 변절자란 누명을 쓰고 조국을 떠나야 했던 불행한 엘리트였다.
분명히 박인숙 할머니 죽음은 블루베리 다이아몬드와 연관이 있었다. 그래서 깽 조직이 냄새를 맡은 것이다. 인수씬 박인숙 할머니가 그 다이아몬드를 갖고 있다고 생각을 하였다. 황금 다방 마담 이수임이 문제의 다이아몬드를 어느 섬에 숨겨놨는데 그걸 박인숙씨가 알고 그 다이아몬드를 빼냈을 것이다. 홍콩의 보석상 리만 데이비드 씨의 증언에 의하며 이수임과 박인숙 중 한 분이 그 다이아몬드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인수는 부인했다. 그럼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까? 박인숙 할머닌 이수임 노파가 그 다이아몬드를 가지고 있다고 하고 리만은 박인숙 할머니를 의심하였다.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다이아몬드를 가지고 있을 거라는 애매한 증언은 신빙성이 없었다.
“죽음의 욕망을 털고 나오세요.” 박 형사는 그를 압박하였다.
“뭘요?” 하인수는 강하게 부정하였다. 블루베리 다이아몬드를 가진 자가 범인이다. 그 다이아몬드가 연쇄살인 사건을 일으키는 원흉이었다. 분명하게 이 모든 살인사건은 다이아몬드를 가지려는 욕망 때문에 일어나고 있었다. 그래서 박철 형사는 꽃섬을 의심하고 집요하게 뒤졌다.
군부 내 좌익 군인들의 여·순 반란으로 무고한 여수 시민이 학살당했다. 남로당 여성 위원 연맹장인 한채연은 반란군을 따라 지리산으로 갔다가 진압군에 잡혔다. 반란 진압 과정에서 무수한 민간인이 무참히 학살당했다. 진압군은 잔당 소탕에 나섰다. 계엄군은 여수 시민을 거의 다 빨갱이라고 간주하고 무자비하게 가담자 색출과 부역자 색출로 무고한 여수 시민을 학살하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1940년 10월 25일, 여수·순천에 암거하는 남로당 세력을 소탕하라는 재차 탈환 작전을 명령했다. 바다에서 함정이 대공포로 여수 시내를 강타하였다. 장갑차, 박격포의 지원을 받은 4개 대대 전차대와 항공기, 경비정이 동원된 포위전을 폈다. 그러나 이미 반란군의 주력은 빠져나가고 극소수의 반란군이 남아서 대항하였다.
해녕은 그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사라호 태풍이 불던 그날 밤, 어머니는 부엌칼로 아버지의 가슴과 목을 찔러 폭풍의 바다에 밀어 넣었다. 그렇게 어머니는 아버지를 죽이고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로 뛰어들었다. 악몽 같은 기억이 떠올랐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