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남북관계는 전쟁 시기 만들어진 대립과 적대의 기반 위에서 이루어졌다. 1950년대와 1960년대는 한반도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 차원에서도 그리고 세계적인 차원에서도 냉전의 시기였다. 냉전은 차가운 전쟁이라는 뜻으로, 뜨거운 전쟁인 열전과 다르지만, 다양한 영역에서의 경쟁과 대립을 의미했다. 물론 냉전의 시기 동안에도 대화를 할 수밖에 없는 기회들이 존재했다. 그러나 냉전의 기반 위에서 이루어진 대화의 기회는 일회적이었고, 이어지지 않았으며, 상황을 변화시키지도 못했다.
--- pp.22~23
평화가 경제이고 경제가 평화라는 의미는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즉, 경제는 갈등하면서도 대화와 협력이 이루어질 수 있게 만든다. 지속적인 대화와 협력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평화적 방법을 모색하게 만든다.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평화적 접근은 서로의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편견과 불신을 감소시키고, 그것이 반복될수록 상호 신뢰를 증진시킨다.
--- p.85
남북교류협력 영역에서 ‘지방’의 역할에 대한 논의는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다. 1995년 7월 민선(民選) 1기 지방자치단체가 출범하면서 지방행정이 더 이상 중앙정부의 수직적 통제를 받는 지역행정기관에 머무르지 않게 된 것이 ‘지방의 남북교류협력’을 논할 수 있게 된 환경적 요인이었다. (중략) 지방 차원에서도 자치와 분권의 원리가 적용되면서 지방자치단체는 중앙정부의 대북·통일정책을 획일적·피동적으로 수용해 왔던 객체에서 탈피해 지역의 이익과 발전을 위해 능동적인 남북교류협력을 추진할 수 있는 당사자가 될 수 있었다.
--- p.116
바다를 통한 경제발전과 미래 성장의 가능성은 북한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하지만 바다를 통한 북한의 경제발전은 분단과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로 제약받고 있으며, 기술과 자본력도 부족한 상황이다. 북한에게 바다는 오래된 가능성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북한의 오래된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어 주는 일, 그것이 남북 해양수산 협력의 목적이 될지도 모르겠다. 북한의 경제가 바다를 통해 다시 세계와 연결되어 물류가 오가고, 바다를 이용해 다양한 이윤을 창출하게 된다면 북한 경제 재건에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다.
--- pp.180~181
통일은 여러 유형이 존재한다. 점진적 통일과 급진적 통일, 흡수통일과 붕괴 통일, 평화통일과 무력통일, 내부로부터의 통일과 외부로부터의 통일, 자발적 통일과 타의에 의한 통일, 의도한 통일과 우발적 통일 등 다양하다. 그런데 이러한 다양한 유형의 통일 중에서 남북한 통일에 적합한 통일은 무엇일까?
--- p.189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 중 하나인 2차 세계대전의 결과 분단된 대표적인 두 나라인 독일과 한국은 그러면 왜 이렇게 다른 전개 양상을 보이게 되었을까? 한 나라는 분단 상황을 극복한 지 30년이 넘어선 시점에서 하나의 국가를 이루어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반면에 또 다른 주체인 한국은 왜 여전히 분단의 상흔을 극복하지 못한 채 상호 대결 구도 속에서 쓸데없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시간과 힘을 낭비하는 잘못을 반복하고 있는가?
--- p.218
양안관계의 핵심은 중국과 대만의 ‘하나의 중국’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과 입장이다. 중국은 ‘일국양제’의 통일방식을 통해 대만을 흡수 통합하려고 한다. 이에 반해 대만에서는 중국과의 통합에 대해 다양한 목소리가 있다. 중국과의 통합을 원하는 세력, 대만의 독립을 주장하는 세력, 그리고 다수를 차지하는 현상 유지 세력이 있다. 공산당 일당 지배체제인 중국에서는 일국양제의 통일방식에 대해 이견이 없지만, 대만에서는 집권 정당이 어디냐에 따라서 정부의 통일정책도 변해 왔다.
--- pp.274~275
그럼 통일평화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 그 방향으로 ‘3공(三共)’을 제시해 본다. 3공은 공감, 공존, 공영을 말한다. 통일평화는 새로운 시각으로 통일을 상상하는 것이지만 그 길은 평화통일보다 더 길고, 더 많은 인내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통일평화의 길을 닦아가려면 일관된 방향이 필요하다. 그 방향이 3공인 셈이다. 통일은 남북이 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가능하려면 남북 간 협력은 물론 국내외의 지지도 중요하다. 공감(共感)은 남북이 상호 존중하고 통일 문제에 관해 상호 입장을 이해하는 노력을 말한다. 나아가 공감은 남북이 합의하고 실천하는 통일 노력에 대한 국내외적 이해와 지지를 뜻하기도 한다. 공감이 없는 상태에서 통일 방안을 논의하는 것은 사상누각(沙上樓閣)에 불과할 것이다.
--- p.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