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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유사

: 조선왕조실록에서 다루지 못한 진짜 조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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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0년 03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324쪽 | 614g | 153*224*30mm
ISBN13 9788952213716
ISBN10 8952213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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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상주에서 태어난 장순손(張順孫, 1457-1534)은 콧구멍이 심하게 위로 들린 얼굴이 돼지머리를 닮아 일찍이 ‘저두(猪頭)’라는 별명을 얻었다.
“어이, 장저두!”
“저두가 무슨 뜻인감?”
“돼지 저[猪], 머리 두[頭]!”
생김은 못났어도 장순손은 좀 늦은 나이인 스물여덟 살(1485) 때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을 시작했고 순조롭게 승진하였다. ‘인생이 순(順)하고 손(孫)을 잘 이으라’는 이름 그대로의 삶이었다. 하지만 1504년(연산군 10) 후원에서 열리는 궁궐 활쏘기 대회[後苑觀射]에 토를 다는 바람에 연산군의 미움을 받아 고향 상주로 부처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너 보는 재미에 내가 사는구나.”
이때 장순손은 그곳에서 산홍이라는 이름의 기생을 사랑하였으나 그마저 오래가지 못했다. 얼마 뒤 산홍이 채홍사에게 발탁되어 궁궐로 가서 연산군을 모셨기 때문이다.
연산군은 여러 기생들 중에서도 산홍을 특히 예뻐하였다. 미모가 뛰어난 데다 교태가 있었던 까닭이다.
그러던 1506년의 어느 날이었다. 종묘에 친제를 올리는 날 연산군이 손수 돼지머리?를 제물로 제사상에 고이고 있을 때 옆에서 시중들던 기생 산홍이 ‘후훗’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몹시 비위가 거슬린 연산군은 노기를 띤 채 산홍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이년 어찌 웃느냐?”
당황한 산홍은 황급히 몸을 낮추며 대답했다.
“제가 웃은 데에는 나름의 사연이 있사옵니다.”
“그 사연이 뭐란 말이냐?”
“제가 상주에 있을 때 장순손이란 사람을 보았는데 그 얼굴 생김새가 돼지를 닮아 별명이 ‘돼지머리’였습니다. 지금 돼지머리를 보니 그 생각이 나서 웃었사옵니다. 용서하여 주소서.”
“장저두를 말하는 게로구나. 그놈이라면 그럴 만도 하지. 그 자가 돼지를 닮은 게 아니라 돼지가 그 자를 닮은 것이니까.”
연산군은 처음에는 산홍의 변명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그러나 연산군은 이내 얼굴을 찡그리더니 산홍에게 화를 내었다.
“가만 생각하니 네 년이 그놈 얼굴을 어찌 자세히 아느냐?”
산홍이 대답을 얼버무리자 연산군은 치밀어 오르는 질투심에 큰소리로 말했다.
“네 이년! 그놈이 네 서방이었던 모양이로구나. 당장 그놈을 멀리 귀양 보내야겠다. 아니다. 그 놈 면상을 다시 한 번 봐야겠다. 여봐라!”
연산군은 즉시 의금부에 호령하여 장순손을 즉각 잡아 오라 했다. 하여 도사(都事: 의금부?중추부 따위에 속하여 벼슬아치의 감찰 및 규탄을 맡은 종오품 벼슬) 일행이 장순손을 잡으러 길을 떠났다. 이튿날 연산군은 분이 안 풀렸는지 따로 나졸을 보내면서 이렇게 호통쳤다.
“압송되어 오는 장순손을 만나거든 그 자리에서 처형하고 목만 베어 오라!”
“예이!”
장순손으로서는 날벼락을 맞은 셈이었다. 벼슬에서 쫓겨나 애인을 뺏기고 이제 목숨마저 내놓아야 하는 신세가 됐기 때문이다.
어찌됐든 상주에 먼저 도착한 도사 일행은 장순손을 포박하여 압송하였다. 장순손은 별수 없이 끌려갔고 문경새재를 넘어야 했다. 문경새재를 넘기 전 함창에 이르니 두 갈래 길이 나왔다. 비교적 편한 큰 길과 좁은 지름길이었다. 도사가 장순손에게 물었다.
“어느 길로 가고 싶으시오?”
장순손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좀 늦더라도 편한 길로 갈까? 불편하더라도 빠른 길로 갈까?’
장순손이 이런 생각을 할 때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사잇길을 가로질러 지나갔다. 그걸 본 장순손이 도사에게 말했다.
“지난날 내가 가는 길을 검은 고양이가 가로지르더니 과거에 급제를 합디다. 지금 고양이가 저쪽 길을 가로질러가니 나를 그쪽으로 데려가 주시오. 그쪽 길이 비록 좁기는 하나 지름길이어서 빠를 것이외다.”
장순손은 과거 시험에 여러 차례 낙방했었고 실제 그런 일을 겪은 뒤 과거에 합격하였기에 그리 말했던 것이다.
“그럽시다.”
어려운 부탁이 아닌지라 도사는 쉽게 승낙하였다. 일행은 좁은 길로 접어들어 문경새재를 향해 계속 갔다. 그런데 사소해 보인 이 선택이 장순손의 목숨을 살렸다. 특명을 받고 장순손을 죽이러 온 나졸들이 큰길로 지나갔기 때문이다.
장순손의 행운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장순손 일행이 문경에 이르렀을 때 반정(反正)이 일어나 연산군을 내쫓고 새 임금 중종이 등극했으며, 억울한 사람을 모두 석방한다는 사면령이 전해졌다. 장순손은 참으로 아슬아슬하게 죽음을 모면한 것이다.
--- pp. 109-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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