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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것부터 먹고

우선 이것부터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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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11월 02일
쪽수, 무게, 크기 372쪽 | 412g | 128*188*30mm
ISBN13 9791169445481
ISBN10 1169445489

카드 뉴스로 보는 책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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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방에서 그녀가 꺼낸 건 사과였다. 반질반질 윤이 나지만, 설익었는지 아직 완전히 붉은 빛이 돌지 않는 사과를 줄줄이 꺼냈다. 사과를 든 비쩍 마른 중년의 여자. 동화 속 마녀 그 자체였다.
“오늘 나올 때 시골에서 보낸 사과라고 집주인이 줬어. 태풍으로 떨어진 낙과인데 빛깔은 안 좋지만 달다고 하더라.”
“이건 예산에서 제외야.”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뜻이라며 그녀는 살짝 웃었다. 가사 도우미에게 재료비를 주고 야식이나 석식 준비를 부탁하겠다던 다나카의 말을 떠올렸다. 그 예산에 포함되는 게 아니라는 뜻이리라.
---「제1화. 사과와 함께 나타난 마녀」중에서

“시금치를 푹 고아서 만든 스프야.”
“시금치를?”
“뿌리까지 다 넣었어. 육수는 따로 안 넣고. 소금하고 참기름으로만 간을 했지. 야채에서 나온 육수로 충분히 맛있거든.”
“그렇게 만들어도 이렇게 맛있구나.”
듬뿍 들어간 짙은 초록색 잎을 보고 있으려니 어릴 적 필리핀에서 본 애니메이션이 떠올랐다. 할머니 식당에 있는 TV에서는 외국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가 종일 흘러나오곤 했다. 안젤리카와 마이카는 시금치를 먹으면 힘이 솟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제일 좋아했다. 그만큼은 아니더라도 이 스프를 먹으니 몸이 따뜻해지면서 기운이 솟는 것 같았다.
---「제2화. 뽀빠이가 아니라도 맛있는 스프」중에서

“도미는 오랜만에 먹어 보네요.”
“새 출발을 축하할 땐 역시 도미를 먹어 줘야지.”
“무슨 뜻이에요?”
그러자 가케이는 밥공기를 쟁반에 올려서 가져왔다.
“자, 우선 이것부터 먹어 봐.”
도미 살을 섞은 솥 밥과 맑은 장국이었다.
“새 출발이라뇨?”
눈앞에서 모락모락 김을 뿜는, 먹음직스러운 도미 밥에 손대지 않고 이타미는 그렇게 물었다.
“이직하고 결혼.”
“허.”
밥을 먹지 않길 잘했다. 먹었으면 분명 사레가 들렸을 것이다.
“알고 있었어요?”
“아이고, 일단 밥부터 먹어. 다 식겠네.”
이타미는 머뭇거리며 젓가락을 들었다.
“이 회사 쓰레기는 내가 버리잖아. 비밀로 하고 싶으면 쓰다 만 이력서나 혼인신고서 작성 방법 프린트한 건 몰래 버려야지.”
---「제3화. 이시다 미쓰나리의 콤부차」중에서

“받아.”
어젯밤 가케이가 종이봉투 하나를 건넸다.
“이게 뭐예요?”
“산에 가서 먹을 거, 재료 사 왔어. 안에 만드는 방법도 써서 넣어 놨으니까 봐.”
등산은 그렇다 쳐도 식사는 편의점에서 사야겠다고 포기하고 있던 참이었다.
“감사합니다!”
모모타는 가케이를 우러러보았다.
“790엔이야.”
가케이는 퉁명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모모타는 가케이의 이런 점이 좋았다. 받을 건 확실히 받으니 마음 놓고 응석을 부릴 수 있었다. 그런데도 무심코 지갑에서 1000엔짜리 지폐를 꺼내며 “잔돈은 됐어요”라고 말해 버렸다.
“잔돈도 준비해 놨네요.”
가케이는 빨간 똑딱이 동전 지갑을 꺼내 모모타의 손에 잔돈을 쥐여 주었다.
---「제4화. 눈물 젖은 라면을 먹어 본 사람만이」중에서

“회사를 매각한다고 하면 모모는 어쩔 거야?”
모모타는 그제야 몸을 일으켜 다나카와 마주 봤다.
“모르겠어.”
“뭐?”
“모르겠다고, 갑자기 그렇게 물어도.”
“그렇겠네. 미안해.”
다나카는 다시 고개를 꾸벅 숙였다.
“실은 전부터 몇 군데에서 연락이 와서.”
“인수하고 싶다고?”
“그래.”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조건도 나쁘지 않았어.”
“잠깐만, 회사를 매각한다는 게 무슨 소리야?”
그제서야 겨우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매각한다고, 회사를 판다는 소리지. 지금까지 해 온 일들과 고객들에 대한 권리를 양도한다고 해야 하나.”
“이제 여기서 일 못하는 거야?”
나지막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제4화. 눈물 젖은 라면을 먹어 본 사람만이」중에서

“지금까지 만들어 주신 다른 솥 밥들도 전부 맛있었지만, 이 밥은 뭔가 맛이 다른 것 같아.”
다나카도 장국을 한 모금 마신 뒤 영양 밥을 먹었다. 쌀에는 거의 색이 배지 않았다. 흰쌀밥에 가까운 밥에 잘게 다진 고명을 섞어 놓았을 뿐이다. 그런데도 깊은 맛이 났다. 입에 넣으면 육수 향이 코를 지나 빠져나갔다. 쓱 빠져나가는 게 아니라 진득하게 흔적을 남기고 빠져나갔다. 쌀과 육수는 왜 이토록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까. 마음과 몸에 서서히 온기가 돌았다. 그날 이후로 싸늘하게 식어 있던 몸이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 같다고 다나카는 생각했다.
“맛있다.”
한숨처럼 감탄이 터져 나왔다.
---「제6화. 가케이 미노리의 오찬회」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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