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전환에 대해 정치체계는 그 체계의 사회 내적 환경인 여론을 감안하여 집합적 구속력을 갖는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그 결정이 학문체계, 경제체계, 법체계, 종교체계 등에 의해서 어떻게 받아들여지는가는 다른 체계들의 내적인 작동이고, 해당 정치체계의 결정을 관련된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도 사람들의 자기준거적 결정이다.(...)결국, 생태적 위험에 처한 사회의 자기기술로서 녹색전환을 본다는 것은 사회가 자기(自己)와 자기가 아닌 것을 구별하고, 생태적 위험을 다루는 자기(自己)가 기능적으로 분화된 사회체계들이라는 것에 부합하게 사회를 관찰하고 기술(記述)하는 것이다.
--- p.47
지배구조 안에서 대안을 만들거나, 지배구조에 저항하고, 다른 한편으로 지배구조를 길들이기 위해 그 판에 끼어드는 정치가 지난 40년 동안 한국 전환 정치의 지형이었다. 지배구조를 해체하고 새로 만드는 생태전환 정치는 아직 싹을 피우지 못하고 있다. 생태위기의 시대에 수많은 생명들이 다른 구조의 영향을 받으며 다른 생각을 갖고 살아가고 있는 지구에서 우리는 장기적이고 복합적인 생태전환 정치를 구상하고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
--- p.76-77
커먼즈 정치에서 유래하는 커먼즈의 구성적 힘은 에너지 전환과 교통 전환 등 여러 부문에서의 전환 논의를 커먼즈의 시각에서 재해석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이제 커먼즈는 전환 실험, 예시적 정치의 사례를 넘어서 공공부문을 민주적으로 통제하고 생태적으로 전환하는 것과 연결된다.
--- p.106
이탈리아 커먼즈 운동의 과정은 커먼즈의 정치를 활성화함으로써 도시정부 수준에서 커먼즈의 법이 제도화되는 하나의 경로를 보여줌으로써, 한국 사회에서 커먼즈에 기반한 전환을 달성하는 데 유효한 참조점을 제공하고 있다.
--- p.149
도시는 전환정치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특히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맥락에서 도시는 다양한 사회 그룹이 일상생활에서의 경험 공유를 통해 반자본주의, 반세계화, 반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전환정치와 자본 간의 변증법적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 p.155-156
그린 뉴딜 거버넌스가 생태적 시장의 확대 수준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 중간 지원조직 주체가 정부 예산이나 대기업 ESG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보다 산림 커먼즈의 역량을 강화하면서 사회적 경제의 생태화 성과를 중소-대기업의 그린 비즈니스와 실질적으로 접합하는 현장 실천에서 해답을 찾아야 하겠다.
--- p.209
한국의 온실가스 감축은 주로 예산이 투입되면 쉽게 이행될 수 있는 정책과제에 집중되었다. 이런 이유로 온실가스 감축에 실질적으로 기여했는지 여부에 상관없이 온실가스 감축과 관련된 행정부의 정책과제 수행은 90% 이상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 이와 대조적으로 배출권거래제의 배출권 할당량 설정, 석탄발전소 건설 금지, 전기요금 현실화, 탄소세 도입 등 온실가스 배출에 미치는 영향력은 크지만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정책 분야는 매우 취약하다. (...)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정당정치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기후정책을 강조하는 소수정당의 의회진출을 가능하게 하는 선거제도 개혁이나 소수정당의 정책이 협상력을 가질 수 있도록 대통령선거 등에서 결선투표제 도입 등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 p.212-243
다른 누가 아니라 ‘청년이’ 피해자라고 주장할 경우 청년의 피해자성은 청년에 대한 기존의 사회적 관념을 통해 구성될 수밖에 없는데, 청년이라는 개념은 미래의 주역, 변화의 주체 등의 긍정적인 이미지, 어림, 미숙함 등 보호받아야 할 약자의 이미지, 정치적 의사결정으로부터 무관한, 순수하게 열정적인 등의 순수함과 무고함의 이미지를 통해 역사적으로 구성되어왔기 때문이다. 청기행의 기후 운동은 청년에 대한 보호주의적 시선과 나이주의를 비판하고 넘어서고자 하지만, 청년을 피해자로 위치시키는 과정에서 바로 그 나이주의, 보호주의를 통해 구성된 ‘청년’을 활용하게 된다.
--- p.263
인간과 유사한 동물의 특성을 강조하는 동물권 정치가 동물을 ‘인간 비슷한 존재’로 환원한다면, 응답의 정치는 동물의 복잡함(complexity)과 개성, 인간이 아직까지 파악하지 못한 미지의 특성을 존중하고, 이 같은 동물의 역량이 인간-동물 관계에 미치는 효과에 대해 열린 태도를 갖는다. 다종적 상호작용은 인간과 동물이 유사하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과 다르기 때문에 의미를 갖는 것이다.
--- p.330
채식활동은 육식위주의 문화와 그와 연관된 산업구조, 나아가서는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을 전제로 하고 있다. 채식활동은 채식에 대한 의지를 발화하고, 식탁에서 무엇을 먹을지를 타협하는 과정 그리고 유연한 협력과 연대를 통해 정책적 변화와 구조적인 전환을 만들어 가는 중층적 과정을 수반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중층적 과정을 통해서, 인간중심주의, 육식중심 문화, 기후위기의 지배구조와 사람들의 가치체계를 전환시켜 나가는 계기들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 p.2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