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자유나 기본적 인권의 보장과 양립하는 유일한 사회·경제 시스템으로서 다양한 종류의 자본주의가 존재한다는 엄연한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 구조적 모순과 결함을 사회사상의 역사에서 배우는 것, 바로 거기에 이 책의 기본적 문제의식이 있다. _「후기」에서국가 및 시장에 관한 문제들과 씨름한 역사저자는 서장에서 ‘사회’란 무엇인가, 개념의 범주부터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사회는 실질적으로 근대사회이고 특히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에서 시작되는 유럽 사회와 그 연장선상에서 성립된 북미 대륙 사회를 가리킨다. 유럽이라 하더라도 고대와 중세 사회는 포함하지 않고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도 포함하지 않았다. 이 책에서 말하는 고유한 의미의 ‘사회’는 ‘법의 지배’를 원리로 삼는 ‘합리적 국가’를 가진 사회이고, ‘시장’을 경제 기반으로 하는 사회를 일컫는다. 따라서 고대 아테나나 폴리스가 고도로 발달하였다 해도 이는 법치나 순수한 시장이 아닌 정치·종교의 공동체이기에 사회로 볼 수 없다. 이 책의 대상을 근대사회로 한정하더라도 거기에는 500년 가까운 역사가 있다. ‘사회’라는 개념 자체가 근대 유럽 사회의 변화에 따라 구체적 내용을 바꿔왔으며, ‘사회사상’의 역사는 이런 역사적 변화를 내재적으로 추적하려는 시도를 가리킨다. (…) 실제로 이 책에 등장하는 사상가들은 하나같이 근대사회가 합리적 국가와 시장경제를 두 기둥으로 하는, 인류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질서의 출현이라는 사실을 인식함과 동시에 근대사회에서 개인의 ‘자유’와 ‘공공’의 양립은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기본 문제에 대해 각자의 입장에서 씨름했다. 다양한 사상의 문맥 속에서 사상가들이 제기하고 파고들었던 이 공통의 문제가 각 시대와 지역에서 어떻게 제기되고 다뤄지고 계승되는지를 추적하는 것이 이 책의 주제이다. _「서장: 사회사상이란 무엇인가」에서주요 사상가들이 주장한 문맥의 바탕인 인간관, 사회관, 역사관을 살핀다근대 유럽의 사회사상사를 연구하는 방법으로는 아주 다양한 접근법이 있지만, 단순하게는 경제학적 접근, 철학·윤리학적 접근, 법학·정치학적 접근으로 볼 수 있는데, 이 책은 경제학적 접근에 가깝다. 그렇다고 경제학사를 다룬 것은 아니다.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스미스의 『국부론』을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회사상적 요소들을 이해해야만 가능하다. 인간만이 갖고 있는 이성과 언어를 구사하며 상대를 설득한다는 스미스의 ‘교환 성향’의 개념을 인간의 본성과 경제활동에 대한 사회사상적 문제 인식이라고 저자는 판단한 것이다. 정치학자이자 법학자 등 여러 면모를 지닌 스미스의 사상을 근본적으로 통일하는 것은 도덕철학이고, 도덕철학은 염연히 사회사상의 영역이며, 스미스의 사회사상에서 경제학이 생겨난 것이지 그 역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스미스의 철학과 정치학, 법학을 함께 다루고 있으나 당대의 사회적 요소들을 이해하기 위해 사회사상에 기반을 둔 경제학을 상정한 것이다. 저자의 이러한 태도는 이 책에서 다루는 사상가들을 설명하는 전반에 드러난다. 따라서 이 책은 사상가들이 주장했던 학문이나 어떤 체제에 국한해서 살피기보다는 각 사상가의 인간관, 사회관, 역사관을 동시에 살펴봄으로써 그들의 주장이 어디에서 연유했고 어디로 향하고 있고 무엇을 주장하고 있는지 보다 깊이 알 수 있다는 것이다.사회사상은 완성된 경제학 체계에서는 감춰져 보이지 않는, 경제학의 밑바탕을 떠받치는 인간관·사회관·역사관을 그 자체로서 백일하에 드러내고 그것을 중심 주제로 삼아 고찰하는 학문인 것이다. _「서장: 사회사상이란 무엇인가」에서독자들을 위한 세심한 배려, 저작 연표와 참고문헌저자는 이 책의 말미에 저작 연표와 참고문헌을 두어 독자를 배려하였다. 저작 연표는 본문에서 각 장으로 구분하여 이해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 주요 세계사적 사건과 함께 사회사상사의 주요 저작 간의 선후 관계나 영향 관계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특히 참고문헌은 장마다 1차 문헌과 2차 문헌을 나누고 저자가 명저로 여긴 책은 별표로 체크해 놓았다. 이 책을 읽는 한국의 독자들은 일본의 지적 전통과 학계에 대한 부러움을 한껏 느끼게 될 대목인데, 「후기」에서 “번역서를 포함해 사회사상에 관한 문헌이 일본어로 이렇게나 많이 출간되었다는 사실을 독자에게 전하고 싶었다. 나 스스로도 이 목록을 작성하며 몇 가지 발견이나 놀라움을 경험했다. 도리어 독자가 헤맬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기도 하지만, 그 이상으로 독자 스스로 도서관을 찾아 서점에서는 쉽게 구할 수 없는 수많은 책을 손에 쥐고 읽으면서 사회사상사의 참맛을 맛보고 스스로의 문제에 관심을 발전시켜나가길 바랄 따름”이라고 적어둘 만큼 자국의 풍부한 선행 문헌들에 대한 저자의 자부심과 동시에 이 책을 관심 있게 읽은 독자들의 향후 독서의 길도 제시하였다. 이는 또 한편으로는 이 책이 얼마나 많은 선행 연구자들의 기록을 토대로 성실하고 충실하게 쓰였는지 보여준다. 영어권을 중심으로 한 문명사회 옹호의 사상사라는 성격이 다소 강하지만 500년 세월에 이르는 사회사상사의 주요 학설을 일별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_「역자 후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