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성장소설 쓰기가 우리 국어 교육의 한 줄기로 또렷이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누구나 자라면서 힘든 시절이 있었고, 또 크고 작은 상처가 남아 있다. 자라 온 이야기 쓰기는 그 상처를 풀어 준다. 맺힌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지 않고 덮어 두면 언젠가는 그 상처가 덧나기 마련이다. 세상에 마음을 닫고 자기 세계에 갇혀 살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한테 폭언이나 폭력으로 터져 나오기도 한다. 말하기 힘든 고통스런 상처라 하더라도 글로 풀어내고 나면, 자기도 모르게 용서하는 마음이 자라나고, 그것이 오히려 살아가는 힘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자라 온 이야기 쓰기는 아이들 마음을 자라게 하는 좋은 공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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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와 ‘적다’의 차이가 무엇일까?
국어 첫 시간이자 글쓰기 첫 시간에 내가 아이들에게 던지는 물음이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쓰다’는 ‘~적는다’로, ‘적다’는 ‘~쓴다’로 돌려 막기 해 놓았다. 이걸 믿고 그대로 따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이들은 다양한 답을 내놓는다. 빠른 시간에 쉽게 쓰는 건 적는 거고, 어렵게 오래 쓰면 쓰는 거라는 둥, 적는 건 메모 같은 거고 쓰는 건 작품이라는 둥, 보고 쓰면 적는 거고 안 보고 쓰면 쓰는 거라는 둥, 그러다가 얼마 안 가서 정답을 찾아낸다. 글에 담기는 정보가 바깥에서 들어온 것이면 적는 거고, 내 안에서 나온 것이면 쓰는 것이다.
그러면 한 아이가 꼭 딴지를 걸어온다.
“‘받아쓰기’는 선생님이 불러 주는 대로 적는 것인데, 어째서 ‘받아적기’라 하지 않고 ‘받아쓰기’라 합니까?”
기다렸던 물음이기에 반갑게 대답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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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글을 쓸 때 또 하나 마음 쓸 일은 풀이말의 때매김(시제)이다. 자라 온 이야기, 서사문를 써내라고 했는데, 몇몇 아이들은 서사문이 아닌 설명문을 써서 내기도 한다. 식구 이야기를 쓰라고 하면 식구 소개를 해 놓거나, 자라 온 이야기를 쓰라고 하면 자기를 소개한 글을 종종 본다.
설명과 서사는 지식이나 정보를 전달하느냐, 혹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사건을 전달하느냐 하는 전달 목적에도 차이가 있지만, 더 뚜렷한 차이는 때매김에 있다. 설명문은 언제나 현재형이고, 서사문은 기본 진술이 과거형인데 사이사이 현재형이 섞이기도 한다.
--- p.119
앞뒤로 이어지는 사건이 없는 단편적인 사건 하나는 서사 구조를 갖추지 못한다. 아이들이 쓴 글을 보면 이야기글 꼴을 갖추지 못한 것이 더러 있다. 예를 들자면, 물놀이하다 물에 빠졌는데 아버지가 구해 준 사건, 자전거 타다가 넘어져서 팔이 부러졌던 일, 시골 할머니 집에 가서 화장실에 빠졌던 경험, 이웃집 초인종 누르고 도망쳤던 장난, 자동차 사고로 병원에 입원했던 일과 같은 이야기가 그랬다. 이런 글은 사건의 연속성이 없다. 이야기는 꼬리를 무는 사건이 처음과 중간과 끝으로 이어져서 하나의 큰 덩어리가 될 때 비로소 제 꼴을 갖추어 드러나게 된다. 이 점은 글감을 고르는 단계에서 미리 지도해야 하는 것이 좋다. 처음도 없고 끝도 없는 사건 하나만 가지고 쓰면, 그 뒤에는 꼭 어설프게 감상이나 주장이 뒤따른다. 글을 마무리 짓자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 p.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