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4년 양주삼 감독의 글로 첫 선교사 논쟁이 발생했을 때, 북장로회 선교역사위원회(위원 로즈, 코엔)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여러 선교회나 교회가 한국에서 개신교 선교 사업을 시작하는 데 참여하는 위대한 특권을 받은 것이지, 특정한 선교회나 교회가 그 모든 신용과 영광을 가져가기 위해 ‘처음’이 되려고 할 필요는 없다.”
---「04 | 첫 선교사는 알렌인가, 매클레이인가?」중에서
한국을 지칭하던 ‘조용한 아침의 나라’나 ‘은자의 나라’라는 용어는 바로 일본의 시각을 반영한 미국의 오리엔탈리즘에서 나온 말이다. 퍼시벌 로웰(Percival Lowell)이 미국-일본-한국을 거치면서 만든 용어가 ‘the Land of Morning Calm’이다. 그리피스(William E. Griffis)가 일본에서 ‘미개국 조선’을 바라보면서 만든 용어가 ‘the Hermit Nation’이다. 그래서 한국의 민족주의자들은 그 담론에 대항하기 위해서 조선을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렀고, 한국 기독교인들은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을 찬송으로 불렀다.
---「08 | ‘언더우드의 기도’는 누가 썼는가?」중에서
1893년 5월 6일 자 스크랜턴의 편지를 보면 이곳에서는 세례교인 12명과 학습교인 36명을 비롯하여 남녀 합한 전체 회중 약 50-70명이 매주 예배를 드렸다. 스크랜턴은 편지에 예배당 평면도를 그렸는데, 예배실 중앙에 남녀 좌석을 분리하는 병풍을 쳤다고 밝혔다. 그것은 나무로 문처럼 틀을 짜고 창호지를 발라 이은 것이었다. 설교단에서 보면 왼쪽이 여성석, 오른쪽이 남성석이었다. 스크랜턴은 예배를 마치고 (설교단에서 보았을 때) 남녀 출입구 양쪽으로 나가는 회중을 보면서 이를 세상을 향한 쌍발총(double-barrel)에 비유했다. 그 교회는 세상에 나가서 세속의 악과 전투하는 신자들을 파송하는 교회였다.
---「16 | 서울의 첫 교회들」중에서
교회의 위기와 전환기에는 기존 제도나 헌법이 수정되거나 해체되며, 이에 저항하는 세력은 교권을 강화하려고 한다. 한국교회의 위기를 교권으로 해결할 시점은 이미 오래전에 지났다. 무능하고 시대착오적인 교권이 해체되고 새로운 영적 운동이 일어날 때 비로소 부흥과 개혁이 가능할 것이다. 현재 수준과 상태의 교권 대의정치와 지교회 자치권이 해체되어야만 한국 장로교회가 살 수 있다. 부패된 교회를 개혁하고 세속 정치의 불의와 불평등에 맞서 항거하는 장로교회 본연의 정신으로 돌아갈 때, 또 목회자를 돕는 장로, 지교회를 돕고 돌보는 노회라는 장로교회 본래의 직분과 정체가 회복될 때에만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19 | 장로교회의 회중정치와 대의정치의 조화」중에서
초신자는 학습반에 들어가 1년 이상 성경, 기독교 기본 교리, 세례 신청자를 위한 요리문답인 「위원입교인 규됴」를 배웠다. 세례를 받기 위해서는 기독교인으로서 살고 있다는 다음과 같은 증거가 있어야 했다. ① 한글 해독: 성경을 읽기 위해서, ② 주일 성수: 추수기에도 주일예배에 참석해야 함, ③ 금지 사항: 제사, 굿, 축첩, 술 취함, 담배 피우기, 노름, ④ 매일 가정 기도, ⑤ 청년의 경우 자립을 위한 노동, ⑥ 전도: 최소한 한두 명을 전도해서 교회에 인도해야 함. 동시에 입교인이 된 경우에도 2항과 3항을 어길 경우 책벌을 내렸는데, 약 3%의 입교인이 치리를 받았다. 예를 들면 1902년에 “5명의 입교인이 수찬 정지(修餐停止), 5명이 출교(黜?), 6명의 학습교인이 등록 자격이 박탈되었다.” 따라서 샤록스는 선천 지부의 성장은 거품이 아니라 확실한 성장이라고 확신했다. 술과 담배를 끊고 성실히 노동하고 안식을 지키면서, 더 나은 추수나 수입으로 복을 주실 하나님을 믿는 농민들과 상인들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21 | 선천 기독교의 성장과 부흥」중에서
현재 사용하는 하나님은 토착적인 이름(‘하늘’의 초월성을 지닌 하느님)이자 이를 변용한 새로운 용어(‘하나’의 유일성 + ‘한’의 위대성 + 단군 신화의 삼위일체적 원시 유일신성 + 단군 민족주의의 근대 역사성의 4중 요소를 지닌 하나님) 양자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하나님은 중국의 상제(上帝)와 일본의 가미(かみ)나 한국 가톨릭의 하느님과 같은 ‘이름’들보다 더 나은 ‘이름 + 용어’이다.
---「28 | 하나님인가, 하느님인가?」중에서
근대 자본주의는 무교를 죽이지 못했고 오히려 물신주의를 양산했다. 여기에는 근대성(modernity)과 마술성(magicality)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초기 한국교회가 귀신들은 몰아냈으나, 어느덧 그 자리에 근대 자본주의의 일곱 물신(fetish)?물질적 기복 신앙, 마술적 투기주의, 대형 교회당 숭배주의, 자기 몸만 돌보는 성형과 웰빙 추구와 도취적 자기애, 은사 체험주의, 문자에 매이는 근본주의, 시끄럽고 단순 반복되는 음악으로 황홀경 예배드리기?이 똬리를 틀었다. 교회는 맘몬/물신과의 대국에서 밀리는 형국이다. 신의 한 수, 그것은 장고(長考)의 과정이 필요하더라도 과정과 절차를 중시하는 이성과 더불어, 정의와 평화의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미지를 본받는 성화의 삶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29 | 귀신인가, 악마인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