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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4월 22일
쪽수, 무게, 크기 376쪽 | 492g | 137*200*27mm
ISBN13 9788954686006
ISBN10 8954686001

중고도서 소개

사용 흔적 약간 있으나, 대체적으로 손상 없는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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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이런 인생이 낯선 것인가? 아니다. 수 세대에 걸쳐 이유도 없이 존엄성을 무시당한 여인들이 떳떳지 못한 대우로 고통받다가 낯선 방에서 죽어가는 일은 허다했다.
--- p.11

남애는 곧 울 듯한 어린 그녀를 끌어안는다. 햇살에 따스해진 살갗들이 닿는 자리에 지금 산이라 지칭된 그녀가 평생을 지녀야 하는 고독이 끼어든다. 말랑한 입술들이 맞닿고 작은 손가락들이 엉키다가 풀어진다.
--- p.25

슬픔인 것 같기도 하고 고독인 것 같기도 한 그 무엇.
그것은 그녀만의 표정은 아니다. 한낮에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있는 젊은 여자, 이력서를 들고 빌딩과 빌딩 사이를 헤치고 묵묵히 걷고 있는 청년, 새벽 지하철 속에 앉아 있는 샐러리맨의 얼굴에 일순 어렸다가 사라지곤 하는 표정이 방금 밤거리를 내다보고 있는 그녀의 얼굴에도 어렸다가 지워진다.
--- p.70

사이사이 수많은 나무들이 햇볕을 받고 있다. 비닐하우스 주변은 천변이다. 풀이 우거진 천변을 향해 잘 자란 판다고무나무와 가지마루가 윤기 나는 푸른 잎을 햇볕 아래 드러내놓고 찰랑찰랑거리고 있다. 수애는 바람이 일렁일 때마다 일제히 흔들리는 푸른 잎들을 눈부시게 쳐다본다. 푸른 잎사귀들이 아아, 소리를 지르고 있는 것 같다.
--- p.150

그 남자는 조금씩 가까이 오더니, 다 와서는 창 쪽을 향해 앉아 있는 그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더니, 그녀 속으로 쏙 들어와버렸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데 그녀는 확 열이 올라 얼굴이 붉어진다. 창피해서 눈물까지 글썽여진다. 열이 가라앉으라고 붉어진 얼굴을 찬 손바닥으로 문지르는데 열은 오히려 이마까지 확 퍼진다. 그래서 그녀는 방금, 그 남자를 어떻게 해서든 그녀 밖으로 내몰아보려고 몸을 기울어지게 해보았던 것이다.
--- p.194~195

그날, 소매가 없는 자주색 실크 블라우스 아래 좁쌀만한 소름이 돋은 채로 얌전하게 놓여 있던 그녀의 팔은, 추운가보군, 무심한 그 남자의 한마디로, 무심한 그 남자의 쓰다듬음으로, 그랬다, 욕망을 품게 된 것이다. 야릇한 건 그날 현실 속의 그녀는 분명 자줏빛 실크 블라우스가 아니라 농원에서 일을 마치고 나온 터라 팔을 걷어올린 흰색 셔츠 차림이었는데도 그녀는 한사코 자신이 그날 자줏빛 실크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고 기억하는 것이다.
--- p.249

슬픔 때문에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 또렷한 기억이 그녀에겐 있다. 나를 사랑하느냐고 묻기도 전에 다가온 그애의 돌연한 멸시를 갚아주기 위해서는, 죽을 수밖에 없다, 내 죽음만이 그애의 마음을 돌이켜놓을 것이다, (…) 너의 마음을 돌이켜놓기 위해서라면, 돌이켜놓을 수만 있다면 난 죽으리라, 매일매일을 그 생각으로 버티었다.
--- p.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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