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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02월 15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656쪽 | 736g | 128*188*35mm
ISBN13 9788957077283
ISBN10 8957077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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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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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 문현선
이화여대 중어중문학과와 같은 대학 통번역대학원 한중과를 졸업했다. 2013년 현재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에서 강의하며 이화중국번역문화공간에서 중국어권 도서를 기획 및 번역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사서』, 『사랑을 담는 지갑』, 『인의 경영』, 『경화연』(전2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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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세상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혁명의 감정뿐입니다. 혁명가의 감정은 산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습니다. 산이 아무리 높고 바다가 아무리 깊어도 한눈에 반해버린 혁명가의 감정보다 넓고 깊지는 못하지요. 과연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진실해야 합니다. 그때 제 가슴에서는 형용 못 할 꽃 한 송이가 꽃잎을 한 장 한 장 피워 내고 있었습니다. 꽃잎이 피어날 때 기차가 가슴을 뚫고 지나가는 것 같은 소리가 났지요. 그녀가 입술을 꾹 다문 채 저를 쳐다보다가 시험이라도 하려는 듯 철궤에서 미끄러지며 힘껏 두 발을 앞으로 뻗었습니다. 하늘이여, 땅이여, 그녀가 다시 열 개 태양의 빛으로 제 가슴을 불태웠습니다.
저는 어떤 초인적인 힘에 압도당했습니다. 그녀의 아름다운 발에는 신발 자국이 분명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늘 세상에 드러나는 발등은 하얀 가운데 거뭇거뭇하고 자홍색이 섞였지만 신발 속의 두 발은 핏기 하나 없이 하얬습니다. 하얗기 때문에 그 빨강이 깊고 두터워 보였고, 빨갛기 때문에 그 하양이 가늘고 부드러워 보였습니다. 이게 그녀의 발이라고? 그렇다면 종아리는, 허벅지는, 몸은? 설마 이보다 더 희고 보드라울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저는 기꺼이 유혹당한 것처럼 철궤로 미끄러져 내리며 두 다리를 벌린 채로 길게 뻗은 그녀의 두 다리를 제 두 다리 사이, 가슴 아래에 놓았습니다. 그때 제 낯빛이 어땠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저 세상이 무너진 듯 심장이 거세게 뛰고 황허 물줄기처럼 피가 세차게 요동치는 것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저를 노리는 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디선가 저를 유인하는 적이 있는 것도 아닌데 손을 덜덜 떨고 비틀거리면서 대장정을 하듯 그녀의 두 발로 나아갔습니다. --- pp.34-36

그 동원회 때 저는 중대 통합 학습토론회에서처럼 절반은 지역 사투리를 사용하고 절반은 일상적인 군대 말투를 써 분위기를 격앙시켰습니다. 암송하는 듯한 어투로 한 시간 반을 이야기했지요. 3일 동안 관보를 읽고 연구한 내용을 그 한 시간 반 동안 남김없이 청산유수같이 줄줄 쏟아냈습니다. 제가 말재주가 있는 것은 알았지만 그렇게까지 좋은 줄은 몰랐습니다. 부대에 있을 때 정치공작원은 제가 정치공작원으로서의 자질이 있다고 했고, 정치교도원은 정치교도원으로서의 자질이 있다고 했지만, 연대 정치위원은 정치위원으로서의 자질이 있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연설은 대대 청년들의 얼을 쏙 빼놓았습니다. 그들은 제 재능과 능력에 놀라 제가 마오 주석님과 함께 안위안에 가기라도 한 듯, 대단한 상부 인사가 청강진의 혁명가로 내려온 듯 느꼈습니다. 그들은 제 장인에게서 항상 사투리와 욕설로 가득한 지루한 연설만 들었었지요. 하루 종일 확성기에서 꿍얼거리는 소리만 듣다가 그날 밤 제 연설을 듣자, 깔깔한 잡곡에 익숙한 입으로 갑자기 쌀이나 설탕물이 들어온 것처럼 신선함에 놀라고 마음이 설레었던 것입니다.
“아이쥔, 정말 말을 잘하는군. 어디서 배웠나?” 누군가 물었습니다.
“끊임없이 책과 관보를 읽고 일상에서 정열적으로 실천해 그렇습니다.”
제 대답에 또 누군가가 물었습니다.
“정말로 장인의 권력을 빼앗을 건가?”
“제가 빼앗는 게 아니라 혁명이 빼앗는 것입니다.” --- pp.117-119

누구에게도 그 비밀을 알려줄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건 저와 훙메이가 영원히 공개하지 않을 어두운 통로이자 방이고, 저희의 신성하고 위대한 사랑의 결정체이자 증거였으니까요. 저는 두 광주리에 흙을 채운 다음 땅굴에서 기어 올라와 줄을 잡아 당겨 광주리에 담긴 흙을 달빛 아래로 끌어냈습니다. 그런 다음 어깨에 메고 돼지우리 옆으로 뒷문을 나와서는 샛길을 따라 언덕 아래의 수로로 갔습니다. 언덕 위에 있던 달이 어느새 마을 꼭대기로 옮겨가 있었습니다. 청사 뒷마당에 있는 치셴탕 대전의 용마루와 추녀마루가 달빛에 부드럽게 녹아 느릿하게 출렁이는 것 같았습니다. 마을 거리에서 간혹 들리는 어슴푸레한 개 짖는 소리가 투명한 살얼음처럼 밤하늘에서 미끄러지자 초여름 달밤이 더욱 깊어지고 신비로워지며 형용할 수 없게 아름다워졌습니다. 개구리와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제 발소리에 잠시 멈췄다가 이내 다시 아무 걱정도 없다는 듯 울려 퍼지면서 제 발소리와 어깨 위 광주리의 삐걱거림을 삼켰습니다. 그러다 세상이 더할 나위 없이 고요해졌습니다. 그 정적 속에서 저는 바러우 산맥이 숨 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2년 내에 550미터의 혁명적 사랑의 땅굴을 완성하고 제 정치 생애에 방해가 될 청강진의 크고 작은 장애물을 없애며, 스물일곱 생일 전에 진장이 되어 청강진의 최고 인물이 되겠다고 굳게 결심했습니다. 그날 밤 땅굴을 0.8미터 팠고 열아홉 번 흙을 수로로 날랐으며 열아홉 번 진 정부의 기와 건물을 보면서 열아홉 번 그런 결심과 다짐을 했습니다. 그러다 닭이 세 번 울고 동쪽에 우윳빛이 번지기 시작해 진정부 쪽으로 소변을 본 다음 집으로 돌아가 잠을 잤습니다. --- pp.280-281

“혁명이 우리에게 이런 기회를 주는데 이 기회를 놓친다면 정말 멍청이요.”
“다 좋은데 결국 우리를 지하로 내몬 것도 혁명이에요.”
“당신 몸에 붙은 흙 좀 봐요.”
제가 말하면서 그녀의 부풀어 오른 왼쪽 젖꼭지를 가리켰습니다. 노란 콩 같은 흙 알갱이가 젖꼭지에 새로운 젖꼭지가 솟아난 것처럼 붙어 있었습니다. 그녀가 고개를 숙여 흙알갱이를 보더니 털어내려고 손을 들었다가 갑자기 도로 내려놓았습니다.
“당신이 털어줘요.” 그녀가 말했습니다.
“지금 진장한테 흙을 털라는 것이오?”
“가오 현장님, 제 젖에 붙은 흙 좀 털어주세요.”
“세상에, 지금 현장을 부려먹겠다는 것이오?”
“가오 행정관님, 이 흙 좀 핥아내주세요.”
“맙소사, 행정관을 아이 부르듯 부르는군.”
“가오 성장님, 혀끝으로 제 젖꼭지의 흙을 떨어뜨려주세요.”
“성장이 그런 일을 할 수 있겠소?”
“성장도 남자인걸요. 가오 성장님, 제발 이 흙 좀 핥아서 떨어뜨려주세요.”
“혁명가라고 불러봐요.”
“천재 혁명가님, 당신은 중국 대륙에서 떠오르는 찬란한 별이지요. 당신 혀의 샘물은 목마른 인민과 대지를 적시니 그 샘물로 제 젖꼭지에 붙은 황토를 씻어내주세요.” --- pp.352-353

“자네들은 아직 젊으니 억지로 숨기지 말고 말해야 하는 것을 전부 말하게. 혁명 때문이라면 10여 명을 죽이고도 계속 관직에 있을 수 있는 시대인데 자네들이 말 못할 게 뭐가 있겠는가?”
그런 다음 류 처장이 나갔습니다.
류 처장이 나가자마자 제복을 입은 우람한 사내 넷이 방으로 들어와서는 두말하지 않고 저희 몸을 수색했습니다. 그들은 훙메이의 머리카락과 머리카락에 가려진 귀 뒤까지 전부 훑어본 다음 저와 훙메이에게 수갑을 채웠습니다. 그때 훙메이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지만 그녀는 입술을 꽉 깨물어 눈물을 삼켰습니다. 류 처장이 도착하기 전 저와 훙메이는 생각을 정리해두었지요. “훙메이, 후회해요?” 하고 제가 묻자 그녀가 “당신이 진심으로 나를 좋아한다면 후회하지 않아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난 후회해요. 진작 떳떳하게 당신과 결혼하지 않은 것을 후회해요”라고 말하자 그녀가 와락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제 몸에 엎드려 울면서 “아이쥔, 됐어요. 충분해요. 당신의 그 말만으로도 당신과의 혁명은 충분히 가치 있었어요” 하고 말했습니다. 저희는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눈물은 흘리지 말자고 약속했습니다. 절대 누구도 저희 이 한 쌍의 혁명가를 진흙 인형이나 허수아비, 종이인형으로 취급하도록 두지 말자고 했습니다. --- pp.502-503

단상 아래의 사람들은 전부 갑작스러운 침묵에 빠졌다. 맞은편 기슭으로 몰려가던 사람들도 우르르 고개를 돌리고 몸을 돌리더니 심판대에 시선을 고정한 채 나와 나의 샤훙메이를 보는 데에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뚫어져라 우리의 감정을 보고 우리의 사랑을 보고 혁명가의 입술과 혀를 보았다. 단상 위에서 총을 든 병사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판결 뒤 자리를 떠나던 법관이 정신을 놓은 듯 멍해졌다. 단상 아래 군중들의 눈과 시선이 굳어졌다. 허공의 먼지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모래톱의 조약돌이 우리의 입맞춤이 보이지 않자 끊임없이 튀어올랐다. 강물 속 물고기와 게가 수면으로 올라와 환호하며 깡충깡충 뛰었다. 내 혀끝과 그녀의 입술이 두 마리 뱀처럼 장난치고 그녀의 촉촉한 입술과 내 입술이 두 마리 물고기처럼 투닥거렸다. 내 어깨가 그녀의 어깨를 누르며 엎치락뒤치락하고 그녀의 가슴이 내 가슴을 기둥처럼 받쳤다. 우리의 감정이 활활 뜨거워지고 우리의 사랑이 반짝반짝 빛을 발했다…….
그런데, 그런데 바로 그때, 그 순간, 아마도 일 분, 어쩌면 하룻밤, 하루, 백 년, 또 그저 수초가 정지한 그때 혁명가가 혁명가에게 방아쇠를 당겼다.
그들은 우리를 강 맞은편에 미리 파놓은 모래 구덩이에서 총살하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를 판결의 여운도 채 가시지 않은 심판대 위에서 죽였다. 하지만 피를 흘리며 쓰러질 때에도 나와 훙메이는 달라붙어 있었다. 두 입술이 찰싹 맞붙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피비린내에 질식해 죽었다.
사람이 죽는 일은 항상 있지만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기러기 털보다 가볍다. 혁명이 아직 성공하지 않았으니, 동지들이여, 계속 노력하기를.
--- pp.649-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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