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아나키즘에 대한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공산주의나 마르크스주의는 진정한 사회주의가 아니라고 비판하는 부분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마르크스가 본래는 사회적 아나키스트였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마르크스는 러시아나 중국이나 북한이나 쿠바식의 전체주의적이고 국가주의적인 공산주의를 주장하지 않았거든요. 이런 맥락에서는 현실공산주의가 사회주의가 아니라고 하는 비판도 가능하겠죠? 그리고 그 대안은 전체주의나 권위주의나 국가주의에 반대하는 사회적 아나키즘입니다. 넓은 의미에서 그런 사회적 아나키즘을 주장한 사람으로 로자 룩셈부르크나 안토니오 그람시도 포함할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사회적 아나키즘이야말로 진정한 사회주의입니다. 그리고 이야말로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것이지요. 자본주의가 ‘지배와 착취’를 기본으로 하는 새로운 노예제도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아나키즘은 봉건주의에도 반대하고 소비에트형이든 북경형이든 평양형이든 쿠바형이든 모든 국가주의에도 반대합니다. 진정한 사회주의는 ‘자기 노동의 과실을 도둑맞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노동의 수단을 소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니까요. 따라서 프루동은 사업의 소유물을 전면적으로 공유하는 노동자협동조합을 지지했습니다. 노동자가 경영에 참여함으로써 모든 게 노동자의 소유로 되기 때문이죠. 이처럼 참된 사회주의자는 자본에 의한 노동의 착취를 끝낼 뿐 아니라 생산자가 생산물을 소유하고 관리하는 사회를 추구합니다. 그리고 참된 사회주의자인 아나키스트는 자본주의를 거부합니다. 자본주의는 착취적인 동시에 권위주의적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에서는 노동자가 생산과정 중에 자신을 통치하지 못하고, 자기 노동의 산물을 관리하지도 못합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사회적 아나키즘」중에서
프루동에 의하면 사유재산권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하나는 타인의 근면과 노동을 약탈하는 것으로서 이자, 이윤, 지대, 임대료 등의 불로소득의 원천이고, 다른 하나는 외부로부터 또는 위로부터의 권력에 대하여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후자는 로크 등이 재산을 인간 자유의 기본적 조건으로 본 것과 일치하는데, 프루동은 이 점에서 생산수단을 공유하려는 사회주의 내지 공산주의에 반대했습니다. 동시에 프루동은 모든 인간이 공정의 원리에 따라 사유재산을 갖는 권리를 부여받으며, 일부의 인간이 타인을 착취하기 위하여 재산권을 독점하는 것은 정의에 반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따라서 그는 사유재산의 착취적 측면(강한 자가 약한 자를 착취한다)을 공격함과 동시에 사유재산의 자유적 측면을 옹호하고 공유재산제 역시 불평등하다(약한 자가 강한 자를 착취한다)고 공격했습니다.
이처럼 프루동은 자본가뿐만 아니라 그의 당대 사회주의자들에게도 동시에 도전장을 던진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극단적인 공산주의를 억압적이고 비열하다고 공격했는데요.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 자신의 일을 선택하고 싶어 하는데, 공산주의 체제는 ‘개인은 전적으로 집단에 종속되어 있다’는 원칙에서 출발하므로 평등의 원칙과 양심의 자율성을 침해한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프루동은 또 사회가 자본과 통치 또는 공산주의 국가 없이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는 권위가 자신의 지적 발달에 반비례한다고 확신한 그는 자신이 꿈꾸는 사회에서는 힘과 교활함이 정의의 영향력에 의해 제한되다가 마침내 평등의 승리와 함께 사라질 것이라고 결론짓습니다.
---「재산이란 무엇인가, 프루동」중에서
저는 아나키스트를 ‘만년 청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늘 원칙에 충실하고 철저했으며 타협을 거부했어요. 지식인으로서 열정적으로 사상적 대결을 펼쳤으며 평생을 두고 자신이 지키고자 한 원칙에 따라 집요하게 투쟁했습니다. 진지한 정신적 고투, 이상을 위한 외로운 결단에 몸을 바쳤습니다. 바쿠닌은 이것을 온몸으로 보여준 가장 순수한 원형이었습니다. 그 어떤 아나키스트보다 더 아나키스트다운 아나키스트였어요.
콜(G. D. H. Cole)이 말했듯이 바쿠닌의 사상은 “자유로 시작하여 자유로 끝”납니다. 반면 마르크스는 “평등으로 시작하여 평등으로 끝”납니다. 물론 바쿠닌을 비롯한 아나키스트들도 불평등을 지적하고 소수의 지배층이 민중을 경제적으로 착취하는 것을 비판했습니다. 불평등과 착취가 자유를 침범하는 통치 권력의 압제 때문에 발생하는 ‘악’이라고 보았으니까요. 따라서 “자유를 떠나서는 어떤 선도 없고, 자유야말로 참으로 그 이름에 값하는 모든 선의 원천이며, 절대적인 조건이다. 따라서 선은 자유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며, 자유는 불가분이므로 일부라도 침범당하면 그 즉시 전체가 말살된다고 바쿠닌은 주장했는데요. 바쿠닌이 말하는 자유는 공동체 의식에 투철한 사회 구성원들이 모두, 예외 없이, 평등하게 누리는 자유입니다. 따라
서 (그가 주장하는) 자유는 고립된 것이 아니라 상호적이며 사회적인 것이에요. 개인의 자유만이 아니라 민족의 자유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쿠닌은 혁명적 아나키스트다」중에서
말라테스타에게 아나키는 곧 정부가 없는 사회를 의미했어요. 정부는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그 본성상 약탈적이고 억압적이고, 그것은 또한 ‘재산 소유자’의 헌병이기 때문에, 국가를 폐지한다는 것은 곧 사유재산의 폐지를 포함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대신 그는 자발적인 결사에 대한 공감과 관심으로 단결된 개인의 자발적인 집단화를 요구했습니다. 삶은 자유로운 주도, 자유로운 계약 및 자발적인 협력에 기초하여 관리될 거라는 점, 실제 존재는 개인이라는 것, 사회 또는 집단은 개인으로 구성되어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어요. 그러고는 개인의 자유가 자발적인 연대와 이익 공동체에 대한 인식에 기초하는 한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에서 갈등이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았습니다.
말라테스타는 ‘조화로운 사회, 정부와 재산이 없는 사회에서 각자는 우리가 해야 할 것을 원한다’는 격언을 ‘원하는 대로 하라’고 선언했습니다. 이 단계에서 그는 아나키스트 사회에서는 욕망과 의무 사이에 충돌이 없을 거라는 낙관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던 거예요. 그리고 이런 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은 ‘혁명적 행동으로 사회적 부를 짓밟는 것’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1890년대 초기에 유럽을 널리 여행한 그는 1892년에 터진 헤레스(Jerez) 농민 봉기 당시 스페인에 있었는데, 여기서 다양한 아나키즘의 공통분모를 추출하여 아나키즘의 기본원리를 확인하는 ‘형용사 없는 아나키즘’을 주장함으로써 집단주의자와 공산주의자 사이의 갈등을 완화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형용사 없는 아나키즘을 주장하다, 말라테스타」중에서
정부, 혁명, 교육에 대한 골드만의 주장은 변함없이 명확하고 자각적이었지만, 아나키스트 이론에 대한 가장 중요한 공헌은 페미니스트 차원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녀는 당대 여성의 지위와 조건에 크게 분개했는데, 이러한 태도로 악명이 높아져요. 특히 남녀관계에 만연한 이중 잣대를 혐오하여 자연의 충동을 폄훼하고 문화를 억압하는 ‘청교도의 위선’을 공격했습니다. 여성을 성적인 대상, 사육자, 값싼 노동력으로 취급하는 기존 시스템을 비난했고, 매춘이 여성에 대한 착취의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지만, 그것이 아니라고 해도 모든 여성은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몸을 팔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지요. 개인을 정치적인 것으로 치환하는 바람에 골드만은 당대 페미니스트들로부터 고립되지만, 바로 이 점 때문에 그녀는 1970년대와 1980년대 미국 페미니스트들에게 매력적으로 재발견됩니다. (…) 골드만은 무엇보다도 여성의 해방이 자신으로부터 그리고 자신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를 위해 첫째, 자신을 성상품이 아닌 인격체로 주장해야 하고, 둘째, 그녀의 몸에 대한 권리를 거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즉 본인이 원하지 않는 한 아이 낳기를 거부하고, 신, 국가, 사회, 남편, 가족 등을 섬겨야 한다는 이데올로기를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 사랑이 관습의 틀을 깨는 가장 강력한 요인인 반면, 결혼은 국가와 교회에 우리의 가장 친밀한 문제를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말했어요. 결혼은 순전히 경제적인 합의로서 여성에게는 일종의 보험을 제공하고, 남성에게는 친절하고 아름다운 장난감을 제공할 뿐이라고 했습니다. 이로써 여성은 (남성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하인의 삶을 준비해야 하고, 남성은 (여성에 대한) 동산 및 부동산 모기지 권리를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기 마음대로 여성을 지배하려 드는 남성의 모든 욕망을 거부할 때 여성 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고, 사랑이라는 미명에 갇힌 권리를 해방할 수 있으며, 모성에 대한 절대적인 자유를 선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골드만의 페미니즘」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