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이란 접촉을 뜻하는 ‘컨택트contact’에 부정의 의미를 더하는 접두사 ‘언un’이 붙어 사람과 직접적으로 연결되거나 접촉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비대면 사회는 접촉하지 않는, 면대면하지 않는 고립된 사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접촉하지 않고도 온라인으로 대면하고 소통하는 사회를 뜻한다. 그래서 언택트 대신 영어 단어 ‘contact’와 ‘on’을 결합하여 ‘온택트ontact’라는 용어를 쓰기도 한다. 이러한 비대면 사회를 실현해주는 수단을 통틀어 비대면 기술이라고 부른다. 비대면 기술(주로 디지털 기술)은 팬데믹 시대에 우리의 안전을 지켜주는 생존 기술이자, 인류세에 방에 앉아 온라인으로 소통하면서 지구를 지키는 기술이기도 하다.
---「비대면과 팬데믹」중에서
철학자 미셸 세르Michel Serres는 인지과학을 통해 이를 설명한다. 그는 뇌와 몸이 달라진 이 새로운 종류의 인간을 ‘엄지세대thumbelina’라고 부른다. 엄지세대란 두 개의 엄지손가락만을 사용하여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문자 메시지를 주고 받는 광경에 감탄한 세르가 Z세대에게붙인 이름이다. 그는 가상세계에 사는 이 신인류가 웹상에서 서핑할 때, 엄지손가락을 사용하여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을 때, 위키피디아나 페이스북을 훑어볼 때 자극받는 뉴런과 뇌의 부위가, 책, 칠판, 공책 등을 사용할 때 자극받는 뉴런과 뇌의 부위와 매우 다르다고 주장하면서, 이들의 머리는 우리와 다르다고 단언한다. 다른 머리를 가진 이들은 이전 세대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인식한다. 글도 다른 방식으로 쓰고, 구사하는 언어도 다르다. 디지털 시대 신인류의 뇌, 몸, 인식, 언어, 행동은 더 이상 호모 사피엔스와 같지 않다. 반면 역사학자 브루스 매즐리시Bruce Mazlish는 인간의 진화는 물질적이기보다 문화적이며, ‘물질적 존재’는 3만 년 동안 거의 변화하지 않았지만 문화는 엄청나게 변화했다고 말한다. 이 말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는 타당하지 않을 것 같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인간의 물질적 몸, 특히 뇌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뇌뿐만 아니라 컴퓨터 앞에서 한 자세로 오랜 시간 지내니 거북목증후군·척추측만증·손목터널증후군 등 근골격계와 신경계도 변화를 겪고 있는 듯하다. 스마트폰, 컴퓨터, VR기기 등 디지털 전자기기를 아우르는 디지털 현실에 최적화된(혹은 그로 인해 변용된) 몸과 뇌를 갖게 된 새로운 인류의 등장이라고 할 수 있다.
---「비대면과 팬데믹」중에서
던바의 연구는 사회적 털 고르기, 현존하는 몸들끼리의 접촉 유무 및 빈도와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이것을 철학자 휴버트 드레이퍼스Hubert Dreyfus의 관점으로 더 깊게 살펴보자. 드레이퍼스는 인터넷의 철학≫에서 우리 삶이 지닌 최대의 의미는 신체가 현전presence하는 현실세계에서 위험을 감내하는 진정한 헌신 속에서 찾을 수 있으며, 인터넷상에서 아바타(가상 신체)의 익명성과 안전성은 필연적으로 그러한 진지한 의미를 결여시킨다고 말한다. 따라서 탈신체화된 원격 현전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삶의 의미와 보람을 잃고 우울증과 허무주의에 빠지기 쉽다. 익명성과 안정성이 매력인 사이버공간에서는 현실세계에서 찾을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쓴 우정과 헌신은 기대할 수 없다. 사이버공간에서는 친밀감과 신뢰가 희미해지므로 그 세계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불안과 외로움, 우울증과 허무주의는 클 수밖에 없다.
---「사라지는 사람들, 외로워지는 사람들」중에서
갈수록 냉랭해지는 디지털 세상의 확장 속에서, 즉 가속화된 비대면 삶형태 속에서 이해와 공감, 우정과 환대, 애정은 희미해진다. 연결과 이해와 공감을 위해 발전해온 비대면 기술들이 역설적으로 친밀성을 줄이고 있다. 디지털 만남은 사람들과의 연결을 희미하게 만들고 관계의 밀도와 열감을 낮추고 있다. 직접 대면이 감소할수록 현대사회는 점점 더 삭막해지고 황량해진다. 이해, 공감, 친밀성의 결핍은 외로움, 자살, 살인과 같은 각종 정신적 문제나 극악한 범죄의 원인이 된다. 비대면 접촉의 기능과 효율을 쫓다가 이러한 공백과 결핍이 점점 커지는 것을 방치해 사회적 문제를 키울 수 있다. 사회가 냉랭해지고 삭막해지고 사람들이 외로워지는 것에는 물론 돈의 영향이 크지만,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우정, 연대, 사랑, 공감, 이해의 원천인 신체적 접촉이 희소해지는 비대면 사회의 심화와도 관련이 깊다.
---「디지털 친밀성」중에서
영준은 한국인들이 맺는 가족·친구·친척 관계는 백인들이 맺는 관계에 비해 흉허물이 없고 끈끈하다고 생각한다. 이 끈끈함은 불행과 행복의 근원이다. 가부장사회인 한국에서는 가족의 근접성과 끈끈한 대면이 굴레가 되는 경우가 많으며, 특히 여성에게 더 그렇다. 여성에게는 가족의 근접성과 대면이 오히려 가족과의 친밀성을 약화시킬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폭력적인 상황을 처하게 될 때도 많다. 비대면 문화가 확산되면서 집콕이 늘고 타인과 만나는 시간은 줄어들었지만, 집에서 지내는 만큼 가족이 직접 대면하는 시간은 늘어났다. 가족의 사이가 좋아진 가정도 있겠으나 그보다는 직접 대면의 증가가 야기한 부정적 파장이 너무도 크고 깊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비대면 삶형태로 인해 가정폭력의 피해자들인 여성, 아동, 반려동물이 집 안에서 가해자인 남성과 지내야 하는 시간이 늘면서 세계적으로 가정폭력이 급증했다. 비대면 삶형태가 초래한 코로나 블루로 가족 구성원의 우울과 스트레스가 배가되어 그 잔혹성도 심각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각국 정부에서는 심각해지는 가정폭력에 대응 방안을 내놓고 있으나 역부족으로 보인다. 급기야 안토니우 구테흐스Antonio Guterres 유엔 사무총장은 팬데믹 선언 이후 각국 정부가 여성에 대한 폭력 예방을 코로나 대책의 핵심 과제로 다룰 것을 촉구했다.
---「대면의 고통과 안전한 접촉지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