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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로

시인동네 시인선-188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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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10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132쪽 | 194g | 127*203*20mm
ISBN13 9791158965662
ISBN10 1158965664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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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유고래라 부르기도 하고 말향고래라고도 했다

잠시 한눈팔면 중심을 잃고 쓰러지고 마는 거친 난바다에서

부유하는 섬처럼 떠돌았다

고래 심줄처럼 질긴 사랑을 놓지 못했다

서로 지향하는 길이 달라서

너는 뭍으로 진화하고, 나는 지금도 신생대 어디쯤 머물러 있다

몇 헤르츠로 주파수를 맞추어야 할지 몰라

멍하니 수평선만 바라보고 있다

고래가 수면 위로 다시 떠오를 때까지
---「너를 기다리며」중에서

진실은 늘 불편하기 마련입니다
‘좋아요’와 ‘구독하기’를 열심히 누르지만
과장된 측면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 당신의 마음속에 몇 개의 얼굴을 숨기고 있습니까
직접 대면하고 싶은 모습들과
피하고 싶은 현실 사이 괴리감
오늘도 어김없이 태양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사실 이 태양은 과거의 허상에 불과한데
당신은 믿습니다, 조금 전 동쪽에서 서쪽으로 지는 해를
몇억 광년을 지나 빛의 속도로 달려온
지구가 자전하는 것인 줄도 모르고
단지 눈으로 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눈을 감으면 적막한 어둠이 찾아옵니다
당신은 밤하늘의 별들이 명멸하는 이유를 알고 있나요?
캄캄한 하늘 위로 미리내가 떨어지면
지구 반대편 어딘가에서
생을 마감한 생명체가 사라지는 것이라고
당신은 어디서 들은 적 있습니다
사실 운석은 무생물이라서 죽고 사는 문제가 없는 것인데
행성은 늘 같은 방향으로만 윤회를 떠돕니다
당신은 하루에 몇 번이나 당신을 만납니까
그동안 진실을 고백한 경우는 몇 번입니까
진실을 고백할 만한 상대는 있습니까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다시 떠오를 것입니다
맑은 날에는 항상 우산을 준비해 두세요
---「페르소나」중에서

군대를 전역한 후의 일이었다 나도 언젠가 때가 되면 결혼 정도는 하겠지 생각했다 처음엔 은행원을 배우자로 생각했다 평소 숫자에 약해서 계산이 밝은 여자가 눈에 띄었다 서른 즈음엔 영양사를 아내로 생각했다 요리 잘하는 여자를 만나면 적어도 밥은 굶지 않을 것 같았다 마흔 전후로는 술집을 경영하는 여자를 생각했다 술을 자주 마시다 보니 대작(對酌) 가능한 사람이 통할 것 같았다 그사이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는 여자도 괜찮을 것 같았다 먼 훗날 아이를 낳게 되면 양육에 필요한 지혜를 갖춘 여인이 필요할 것 같았으므로

그리하여 결국 나는 혼자가 되었다
그냥 혼자 살기로 했다

사람들은 결혼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라 했다
---「노총각에서 독거노인 사인」중에서

아리스토텔레스를 아랫도리털나스로 외우라는
윤리 선생 밑에서 철학을 배웠다
소크라테스는 소쿠리테스로 발음하고
니체를 나체로 취급하기도 했다

21세기 우리의 고매한 사상가들은 너무 진지해서 너무 진부했다

발터 벤야민, 롤랑 바르트, 미셸 푸코, 자크 데리다
임마누엘 칸트는 질 들뢰즈를 낳고,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은 슬라보예 지젝을 낳기도 했다

간혹 술자리에 모인 사람들끼리
노자와 장자를 혼동하거나
쇼펜하우어와 니체 사상을 짜깁기해서 차라투스트라를 설교할 때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해맑은 표정으로
그냥 웃고 즐기며 분위기나 띄우면 그만인 것을

오늘따라 술맛이 쓴 이유를 모르겠다
고배를 자꾸만 들이키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장 폴 사르트르는 메를로 퐁티를 낳고, 에드문트 후설은 자크 라캉을 낳고, 자크 라캉은 모리스 블랑쇼를 낳고, 레비나스는 줄리아 크리스테바를 낳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끈질긴 계보의 마지막 벼랑 끝에서
나는 지금껏 무슨 화두를 붙잡고 살았는가?

한 마리 제비가 날아와서 당신의 인생이 봄날인 줄 알았다

모든 질문이 먹고사는 문제로 귀결된다면
각자 능력에 맞는 응분의 몫이 주어져야 한다고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로
---「프로네시스」중에서

내가 말한 창조가 사실은 모방에 불과함을 고백합니다
남들의 언사를 지금까지 우려먹고 살았습니다
가난할수록 겉모습만 화려하게 포장하는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인생은 서로 속고 속이는 과정의 연속이니까
과장된 불신이 믿음으로 성장하려면
제법 그럴법한 논리가 우리에겐 필요합니다
진실은 불편하고 진리는 불변하는 습성을 믿습니다
거리를 활보하는 다양한 사람들
어제의 당신과 오늘의 당신이 다른 모습일지라도
내 안의 당신은 여전히 그대로입니다
눈가의 잔주름이 깊어져 고민하는 당신은
당신이 아니라는 반증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먹고사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더군요
그동안 당신은 무얼 먹고 살았나요?
저는 매운 음식이라면 무조건 다 잘 먹습니다
---「데자뷔」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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