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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 이름이 나하고 같아

아침달 시집-026이동
리뷰 총점10.0 리뷰 8건 | 판매지수 6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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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희곡 top100 6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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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11월 11일
쪽수, 무게, 크기 100쪽 | 142g | 125*190*15mm
ISBN13 9791189467722
ISBN10 1189467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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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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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간다.
친한 사람을 찾고 싶다.

희미한 냄새가 혈액 안으로 가득 찬다.
부풀었네요.

친한 사람으로 가득 찼으면 좋겠다.
이 병원이

하나같이 절룩거리고
하나같이 얼굴이 무너진 자들

입원 기간 내내 한 침대를 쓰던 사람이 복도 끝에서 손을 흔든다.
오랜 숲을 걸어와

이 황야에서 아름다워지려 한다.
---「친분」중에서

당번인 나는 운동장에 흰 선을 그리고 배구공을 던졌습니다. 죽었어! 비명처럼 나는 이 말을 사랑했습니다. 죽은 사람들이 바깥으로 밀려납니다. 죽었어! 나는 죽은 사람들을 밀치고 더 넓은 바깥으로 밀려갑니다. 보이지 않는 S의 체온이 나를 따뜻하게 감쌌습니다.
---「내 친구 타투이스트」중에서

저녁이 되면 냄새가 난다. 재희는 깊은 눈 속에 코를 박고 킁킁거린다. 어디에든 조금씩 고통의 냄새가 나. 뿔을 잡고 황산비가 쏟아지는 겨울 밖으로 가자.
---「졸업여행」중에서

엄마는 자꾸 내 귀에 대고 말한다
네가 아프니 건강한 사람한테 미안하다

나의 통증이
건강한 사람을 걱정하는 표시라니
---「독서」중에서

세계여, 아직도 망하지 않고 있다니. 너는 실망한다. 엎드려서 굴을 판다. 투명한 삽. 망한 지 오래되었는데, 너는 어느 세계에 있는 거니. 물고기만 물에 있는 것을 모른대. 나는 불타는 삽을 들고서 잿빛 털이 불근불근 솟는 너의 등을 보았다.
---「갱도 체험」

세계 대전 동안 군 기상예보관들은 주요 폭풍우에 여자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버지 얼음에 빠져 죽은 그 여자 이름은 알지도 못하잖아요. 아니다, 그 여자 이름이 나하고 같아.
---「한파주의보」중에서

현실 너머의 초과된 세계로 흘러가는 문장들을 따라 걸었어. 끝도 없이 긴 공백이었지만.
---「네 안을 걷다 보면」중에서

네가 서 있는 바깥은 그렇게나 따뜻한데, 나는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요. 깊은 곳으로 부는 바람. 나는 노트에 적힌 영국 시인의 시를 지워버렸습니다. 만나면 헤어질 수밖에 없고. 안쪽이 더 좋다는 말은 늘 다정했던 너의 안부겠지만. 우리는 서로의 우는 얼굴은 싫어합니다. 네가 아름다운 빛을 흘리며 나와 멀어질 때. 버스를 타고 검은 겨울 속으로 내가 영원히 떠밀려 갈 때.
---「연인의 안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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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차창의 두 시인

폐차장이 타올랐다. 여름이었다. 분홍색 스트랩 샌들을 신고 있었던 너, 엄지 고리에 유리 큐빅이 박힌 조리를 신고 있었던 나. 고철이 된 자동차 카시트와 불타는 폐타이어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 기둥을 바라보며 우린 호숫가에 앉아 있었다. 소방 헬기가 호수에 두레박을 내려 물을 길어 불타오르는 폐차장 쪽으로 날아갔다. 갑자기 분주한 잠자리처럼. 예기치 못한 사고와 불행은 우리 주변에 널려 있어서 우리의 심장은 쿵쾅거리기 위해 항시 대기 중이다.

슬픔으로 시를 쓰는 이영주에겐 이 세상에 시의 재료가 너무 많다. 어떨 땐 너무 고통스러워 그만 쓰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다. 재료가 차고 넘치는데 그것을 썩게 방치하는 것은 슬픔으로 시를 쓰는 시인의 직무유기. “슬픔은 아름답지만 오로지 슬픔만이 아이덴티티가 되면 어린이”가 되니까. 세상이 슬픔만으로 출렁거리지 않도록. 이영주는 신선한 슬픔으로 고급 요리를 해서 삶의 비의를 맛보여주려는 비스트로의 수석 셰프처럼 시를 쓴다. “나의 통증이 건강한 사람을 걱정하는 표시”라는 사실에 대해서 이렇게 담담하고 서늘하게 직시하는 시인을, “다른 사람에게 향해 있는 죽음을 내 쪽으로 끌어와 따뜻하게 감싸 쥐고 잠”드는 시인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영주는 ‘갱도 체험’하듯 시를 몰고 너무 깊은 곳으로 간다. “물고기만 물에 있는 것을 모”르는 것처럼. 어지간한 사람들은 거기까지 가지 않는다. 물고기들에게 ‘공기’의 존재를 전하여 역설적으로 물의 존재를 알게 해주는, 심해에서 형광빛을 보여주는 전기해파리처럼. 짜릿하고 두렵고 신비롭지만, 고통스러울 정도로 슬프고 아름다운, 거짓말 같지만 외면할 수 없는 진실을 전한다. 구름에서 떨어진 빗물이 지하로 흘러들어 결국 바다로 가는 것처럼. 이영주의 시는 “현실 너머 초과된 세계로 흘러가는 문장”이다. 그래서 계속 더 깊이 들어가볼 수밖에 없고, 그곳에서 본 것들을 그대로 보여줄 수밖에 없다. 누군가 시인의 언어를 은유라 말해도, 이영주에게 그것은 직설이니까.

나는 이영주가 너무 좋지만, 이영주의 시는 이영주보다 조금 더 좋다.
물속에서만 내내 살아서 물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이들이 있다면 ‘이영주 시’를 맡아봤으면 좋겠다. 그래서 따뜻한 물(삶)과 서늘한 공기(죽음)까지 모두 느낄 수 있다면, 그래서 우리의 의식이 지금보다 확장된다면, 이 고통스럽고 슬픔으로만 출렁이는 삶의 차원이 조금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 유형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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