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밝은 날이면 태양과 나무들, 갈색의 바위들과 저 멀리 눈 덮인 산들을 행복과 기쁨에 충만한 채 바라보며 그것들을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다고 느꼈다. 또한 어두운 때는 내 고통이 확장되어 보다 격렬하게 고동치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쾌락과 고통을 구별하지 않았다. 둘이 서로 닮았으며 둘 다 고통스럽기도 하고 감미롭기도 했다. 내 마음이 즐거울 때나 고통에 시달릴 때나 내 창조의 힘은 차분하게 그 갈등을 바라보며 밝음과 어둠이, 고뇌와 행복이 단 하나의 유일한 힘, 위대한 음악의 힘과 리듬에 의해 친밀하게 맺어진 형제라는 것을 발견했다. --- p.41~42
나 자신도 변한 것 같았다.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 모든 것에서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동시에 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일부분이 된 것 같았다. 나는 내가 이제껏 삶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부끄러웠다. 그리고 내 젊은 시절 처음으로, 우리는 그 누군가는 증오하고 다른 사람은 사랑하면서, 한 사람은 존경하고 다른 사람은 경멸하면서 단순하게 우리의 삶을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들은 뒤섞여 함께 존재하고 있으며 분리할 수 없고, 구별할 수도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 p.67
연주를 시작하자 마음이 지극히 평온해졌다. 나는 박자에 맞춰 몸을 흔들면서 내가 연주하는 하모니에 녹아들었다. 마치 방금 작곡한 완전히 새로운 곡 같았다. 나는 음악에 대해 생각했고 동시에 게르트루트에 대해 생각했다. 마치 그 두 흐름이 아무런 충돌도 없이 뒤섞여 한없이 맑게 빛나는 것 같았다. 나는 활을 놀리면서 눈길로 지휘를 했다. 음악은 거침없이 황홀하게 울려 퍼졌고 황금으로 된 찬란한 길을 통해 나를 게르트루트에게로 이끌었다. 더 이상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굳이 그녀의 모습을 보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내 음악을, 내 숨결을, 내 생각을, 내 심장 고동을 그녀에게 바쳤다. 마치 아침에 산책길에 나선 나그네가 아무런 주저 없이 이른 아침의 연한 하늘빛과 초원의 반짝임에 온몸을 맡겨버리는 것과도 같았다. 야릇한 안락함이 점점 고조되는 음률과 함께 나를 감쌌고 나는 놀라운 가운데 행복을 맛보았다. 나는 갑자기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결코 새로운 감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주 오랫동안 예감해오던 것이 환하게 드러난 것이었으며 낯선 곳을 헤매다 친근한 곳으로 돌아온 것, 바로 그것이었다. --- p.102쪽
“맞아, 자네는 유행병에 걸린 거야. 지식인들 사이에 만연해 있는 병이지. 의사들은 그 병이 있는지 알지도 못해. 개인주의 혹은 망상적 고독이라고 부를 수 있는 병인데, 정신이 건강하지 못해서 걸리는 병이야. 요즘 책들에 만연해 있지. 그게 자네에게도 스며든 거야. 나는 고립되어 있다, 아무도 나와 상관이 없다,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뭐, 이런 생각을 자네는 하고 있을 거야. 그렇지 않은가?” --- p.160
운명은 친절하지 않고 삶은 변덕스럽고 냉혹하며 자연에는 친절도 이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운명의 손아귀에 놓여 있는 우리 인간 존재에게는 선과 의지가 존재하며 비록 잠깐이나마 우리는 자연이나 운명보다 강해질 수 있다. 우리는 그럴 필요가 있을 때 서로 가깝게 다가갈 수 있고 서로 사랑하고 이해할 수 있으며 서로 위로하며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이따금 어둠의 힘들이 약해졌을 때 우리는 그 이상의 것을 할 수 있다. 우리는 순간적으로 신적인 존재가 될 수 있고 우리의 손을 뻗쳐 우리의 의지로 전에 존재하지 않던 것을 창조할 수 있다. 그리고 일단 그것을 창조하고 나면 그것이 우리 없이도 스스로 계속 살아갈 수 있게 할 수 있다. 소리나 단어, 혹은 다른 덧없고 가치 없는 것들로 우리는 놀이를 만들 수 있으며 의미와 위안과 선의에 가득 찬 멜로디와 노래를, 우연이나 운명의 그 요란한 장난보다 더 영원하며 더 아름다운 미덕을 갖추고 있는 그런 멜로디와 노래를 창조할 수 있다.
--- p.238~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