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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츰차츰

: 쓰고 그리며 완성한 홀가분함의 미학

황중일 | 북랩 | 2022년 11월 04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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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11월 04일
쪽수, 무게, 크기 280쪽 | 440g | 152*225*16mm
ISBN13 9791168365469
ISBN10 1168365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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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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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명아주풀 사이에 웅크리고 있다. 길고양이인지는 모르겠지만 낯익은 녀석이다. 장 씨가 어렸을 때는 사방에 널린 게 명아주였다. 시금치의 사촌인 명아주. 명아주를 따 가면 어머니가 나물로 무쳐주셨다. 새큼하니 맛있었다. 명아주 나물무침은 장 씨의 시각과 촉각과 후각과 미각의 정체성이었다. 명아주는 갖가지 미생물의 밥이 되기 때문에 땅을 기름지게 한다.
--- p.56

언젠가는 자기가 술 때문에 정신병원에 갇히게 될 것이라고 친구가 걱정했다. 운명은 자기 예언을 사랑하는가 보다. 친구가 둔촌동 보훈병원 정신병동에 입원했을 때, 나에게 빨리 와달라는 연락을 했다. 개도 포니를 타고 다닌다는 개포동에 살던 나는 지금은 단종이 된 콩코드를 몰고 빛의 속도로 달려갔다.
--- p.74

카프카의 〈변신〉은 회문과 같다. 변신해도 운명은 바뀌지 않는다. 그래도 나라면 변신을 택하겠다. 인간의 지식이 빅뱅의 폭발처럼 아무리 팽창했어도 하늘과 땅과 바다에 대해서 여전히 우리는 모르는 게 훨씬 많다. 인간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 p.110

학생의 집에 갔다가 할아버지 연세의 어르신에게 손목을 잡혔다. 진달래 술을 커피잔에 주시길래 살짝 맛보다가 홀딱 마셔버렸다. 달보드레했다. 진달래라는 이름이 너무 좋았다. 약술이라 많이 마시면 안 된다고,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어르신이 ‘한 잔 더?’하는 눈짓을 보냈다. 나는 빈 커피잔을 내밀었다. 안주도 없이 두 번째 잔을 깨끗이 비웠다. 오로지 진달래라는 그 이름 때문에. 그 어르신은 신기한 듯 놀란 듯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당돌한 총각 선생을 바라보았다. 이왕이면 석 잔은 하셔야지. 나는 세 번째 잔도 꿀꺽했다. 어스름 돌아오는 길에 나는 개천에 몽땅 토했다. 온몸이 화끈거리면서 열이 났다. 후유증은 없었다. 그 진달래술은 내 가슴에 지워지지 않는 붉은 상처를 남겼다. 그때는 몰랐지만.
--- p.183

결가부좌의 기억은 고통이다. 참을 수 없는 것을 참는 게 진정한 인내다. 나는 고통의 힘을 믿는다. 결가부좌의 고통을 통해 몸과 정신은 정화된다. 고통을 토대로 삶은 비로소 반듯해진다. 앉는 자세에는 그 사람의 인격이 스며 있다.
--- p.207

이제 나는 내가 쓴 글을 떠나고 내 글도 나를 떠난다. 이렇게 나는 나의 과거를 정리하고 나에게 버림받았던 나를 위로하며 어제의 나와 작별한다.
--- p.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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