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행본 사진책들은 잘 팔리는데 사진 잡지가 안 되는 이유는, 거기 담긴 사진들의 컨셉이 언제나 똑같기 때문이 아닐까요? 사람들은 읽고 싶어하고 사진을 보고 싶어합니다. 그러려면 컨셉과 감성이 다양해질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즉 ‘아트 다큐멘터리’, 퀄리티가 높은 사진이 있어야 한다는 거죠.
이제는 포털·신문·잡지 등에 갔던 사진이 사진전, 사진집에 사용되고 프린트로도 일반에게 팔릴 수 있는, 그런 시스템 전체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문제는 지금 우리한테는 원본 프린트, 즉 빈티지(사진이 촬영된 비슷한 시기에 프린트된 오래된 원본 프린트)가 없어요. 디지털 이미지로만 존재하죠. 몇십 년 후에 도대체 뭘 남겨놓을 수 있겠습니까.”
--- p.165~166 '대담_다큐멘터리 사진의 오늘을 이야기하다' 중에서
“10년 동안 신문 사진 일을 했습니다. 촬영한 사진들을 급하게 선택하고 마감하는 일을 반복하다 보니, 작업이 점점 정형화됐죠. 내 사진이라기보다는 전형적인 신문 사진이 되어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p.315 '대담_포토저널리즘의 오늘 우리는 왜 ‘반동’하는가' 중에서
“요즘에는 신문 기사와 마찬가지로, 신문 사진도 점점 해석이 중요해지고 기자의 시각과 주관이 인정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사진가의 주관을 인정한다는 것은 기존 사진이 가지고 있었던 ‘객관의 신화’를 깨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 사진으로 제시되는 것도 절대적인 사실이 아닐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고, 독자들에게도 각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판단하게끔 요구하는 것이죠.”
--- p.317 '대담_포토저널리즘의 오늘 우리는 왜 ‘반동’하는가' 중에서
“강운구를 얘기하기 전에 먼저 사진가 강운구가 활약했던 시대를 봐야 돼요. 왜? 강운구 자신이 그 시대를 살아간 한 사람인데다, 강운구의 사진도 그 시대의 산물이자 새로운 징표이고 그 시대를 산 사람의 발언이거든요. 근원적인 것을 짚어야 한다는 거죠. 불교에서 잘 하는 이야기로 이런 것이 있어요. 흙덩어리를 개에게 던지면 개는 그 흙덩어리를 물지만, 호랑이에게 던지면 그 흙덩어리를 던진 사람을 문다는 거지. 강운구를 논할 때도 우리는 흙덩어리인 강운구를 보면 안 돼요. 오히려 흙덩어리를 던진 사람을 봐야지. 그런 점에서 시대가 중요해요.”
--- p.132 '내가 만난 사진가 강운구' 육명심(사진사가)
“오래전 영화지만 <고래사냥>을 촬영할 때, 촬영지였던 강원도 임계에서 우리 마을의 전형을 본 일이 있다. 또 <만다라>를 찍을 때 눈밭을 거닐며 스쳐가듯 포착한 우리 마을의 풍경도 떠오른다. 강운구 선생의 이 사진에서 떠오르는 것은 바로 그때 보았던 푸근함이다. 지붕과 지붕이 머리를 맞대고 있는 듯한 느낌. 몸과 몸이 서로 부비고 온정을 나누는 듯한 그 모습이다. 서로 엉키고 맞닿아 있는 초가의 모습들에서 이웃에 대한 정을 새삼 떠올리게 한다.”
--- p.112~113쪽 '내가 좋아하는 강운구의 사진 한 장 1-몸과 몸을 맞댄 초가집 풍경' 안성기(영화배우)
“작가는, 자신이 사라져 버린 가옥에 대해 갖는 관심은 “건축 자체에 대한 관심이라기보다는 이 땅에 사는 사람들과 그 삶의 환경에 대한 관심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강운구』에서 인용한 작가의 사진 설명). 강운구의 수분리와 용대리 사진은 시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사라진 것들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폭력적으로 추방된 것들을 담고 있다. 때문에 그의 사진을 보는 일은 사진 속의 피사체를 추억하는 것이 아니라, 있었던 것들이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특수한 맥락을 보는 것이다. 공간 자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채운 사람들과 그들의 삶을 보는 것이다. 특별한 미학적 장치도, 의도적인 시선의 배치도 없이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를 그 순간들을 담은 강운구의 1970년대 사진들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 여전히 현재적이다.”
--- p.131 '공간을 채우는 삶, 삶을 찍은 사진-강운구의 수분리와 용대리 사진에 대한 단상' 윤세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