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망망대해에서 풍랑을 만났다. 무섭고 사나운 파도를 헤쳐 나와야 나는 사람일 수 있다. 내 부모님이 너는 “그 시집을 살아 낼 수 없다.” 염려하셨던 것이 지금의 나의 모습이다. 남의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부덕의 도리를 다 해야 한다는 의무를 나는 지켜나갈 것이다. 사나운 맹수들이 상처를 자기 혓바닥으로 핥아 치유하는 것 같이 어느 누구도 나를 도와 줄 수 없다. 이러한 불행도 내가 소유한 것이다. 이를 현명하게 잘 처리한다면 나는 아무것도 잃지 않을 수 있다. 내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행복하고,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불행하다. 운명은 나를 행복하게도 불행하게도 하지 못한다. 내 자의만이 행복과 불행을 결정짓는 유일한 근거이다. ‘그래야 이 시집을 살아낼 수 있다.’
---「여인의 질투」중에서
아들 둘이라, “고맙습니다, 부처님!” 하고 감사 기도를 드려야 하는데, 나는 오직 여섯 아이를 어떻게 교육 시킬까 하는 걱정으로 나의 의식 기능을 모두 중지시키고 있었다. 다섯에 아이 하나 더 보탠 여섯 아이의 교육은 상상이 가지 않는다. 계산에 없던 숫자 하나가 모든 계획을 다 바꾸어 놓고 있다. 선생님이 날 보자고 해, 퉁퉁 부은 몸으로 원장실에 들어가니 심각한 표정을 짓고 계신다. 직감으로 아기한테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걸 느꼈다. 한 아기가 체중 미달이니 인큐베이터에 넣어야 안전하다고 한다. 나는 단호하게 “괜찮다. 넣지 않아도 잘 자랄 수 있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체중 미달에 대한 나의 무지를 깨우쳐 주기 위하여 열심히 설명하신다. 그래도 나는 “잘 자랍니다. 두고 보십시요.” 하니, 화를 내시면서 “당신이 아기 생명을 책임질 거유?” 한다. “네, 제가 책임집니다.” “그럼 여기에다 각서를 작성해요.” 하시고 원장실 밖으로 나가신다.
---「가피를 입다」중에서
나는 어디서 그런 순발력이 생겼는지 “소장님! 회장님께서 명하신 일입니다. 오늘 차 70대 분량의 시멘트를 꼭 실어야 합니다. 울산에서 인부들이 놀고 있어요.” 하고 서두를 뗐다. 소장은 한동안 말이 없더니 “네, 알겠습니다. 자동차들을 기차 출구에 대기해 주십시오.”라고 했다. 이게 웬일인가? 나는 이곳으로 오 는 몇 시간 내내 차 안에서 “한 포도 배정할 수 없습니다, 지금의 형편으로는.”이라는 공장장의 냉엄한 대답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거듭 생각하며 이곳으로 왔다. 대기 중인 다른 회사의 차들은 일주일 이상 기다려도, 한 포도 배당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수천 대의 트럭들이 움직이지 못해, 자동차 산이 되어 버린 이 사태를 어느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모든 일 처리는 철저한 준비와 열성이 있어야 한다. 이 열성은 일을 잘 하겠다는 의지와 처리 능력이 필요하다. 이 일은 나에게 행운을 가져다 줄 것이다. 행운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나의 정신과 행동에서 나오고 있었다.
---「시멘트 파동으로 기회를 얻다」중에서
어느 날 퇴근해 거실에 들어서자 두 아들이 겁먹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울기 시작한다. 마룻바닥에는 무슨 전자기계 부품 같은 것이 차례차례 놓여 있다. 아이를 달래느라 미쳐 TV가 사라지고 받침대만 덩그러니 남았다는 걸 보지 못했다. “엄마, 이것 뜯어서 다시 만들려고 했는데 아무리 차례차례 같다 붙여도 본래대로 되지 않아요.”라며 눈물을 흘린다. 곁에 서 있는 누나들은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고 있다. “니가 무슨 기술자야, 왜 멀쩡한 텔레비전을 못 보게 만들어? 빨리 사 와.” 누나도 같이 운다. 지난번에는 오디오를 분해해 못쓰게 만들어 다락방에다 얹어 두었다. 아이는 기계를 조립할 수 있다고 생각해 자꾸만 시도한다. “자, 엄마 말 잘 들어. 너희들은 분명히 할 수 있어. 그런데 조립하는 순서에 잘못이 있었어. 무엇이 문제인지 그 점을 찾을 때까지 새 가구는 손대지 말고, 버리게 되어 있는 것들만 이용해 다시 만들어 봐.”
---「자식은 부모 마음 먹고 자란다」중에서
대학 총장님이 홀 안에 마련된 강단에서 학생과 부모 앞에서 졸업식을 거행한다. 먼저 학생 7명을 호명해 단상에 일렬로 세웠다. 이들은 전체 학업 성적 2%에 드는 학생들이다. 두 아들도 나란히 그 대열 첫 번째에 서 있다. 총장님은 한 사람씩 불러 졸업증서와 성적표를 주면서 악수도 청한다. 부모들이 나를 힐금힐금 쳐다보며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동양인이 둘이나 상을 타잖아.” 아마 이렇게 말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 다음에는 나머지 학생들이 졸업장을 받았다. 총장님은 축사를 시작한다. “자랑스런 부모님, 세계 최고의 대학을 졸업하는 졸업생 여러분, 졸업을 축하합니다. 슈바이처 박사처럼 인류에 대한 사랑과 봉사정신을 갖고 의사로서 훌륭한 삶을 살라.”고 당부했을 것이다. 내가 알아듣는 단어는 ‘슈바이처 박사’가 유일했다. 식이 끝나자 많은 부모들이 나를 가운데 세운 채, 빙 둘러서 있다. “당신은 아주 자랑스런 아들을 두었어요. 당신 역시 대단한 어머니예요.” 모두가 축하의 말을 해주고 있다. 축구 경기장에 결승골을 넣은 선수의 헹가래 같이, 나의 몸도 홀 안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졸업 무도회」중에서
주위는 아직도 어두운데 나 혼자 도로 한복판에 서 있다. 혹시 운전자가 나를 보지 못하고 돌진한다면 나는 이 자리에서 죽는 것인가, 온몸이 떨린다. 차고에서 자동차 시동 거는 소리가 난다. 두 눈을 감았다. 눈을 뜨고는 트럭이 나에게 달려오는 질주를 도저히 막아낼 수 없다는 순간적인 판단이 왔다. 팔에 힘을 준다. 양팔을 벌리고 1차선 넓이의 도로 한가운데 서 있다. 어둠이 조금씩 물러나 희미하게 주위가 밝아지고 있었고 ‘끼-익’ 하는 급정거 소리와 “아줌마!” 하며 악을 쓰는 소리가 들린다. “미쳤어? 죽고 싶어 환장했어?” 아무 대꾸도 하지 않은 채 그냥 양팔만 벌리고 서 있다. 주위에서 사람들의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하나 둘 주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운전자는 차에서 내려와 다짜고짜 나를 끌어낸다. 내가 끌려 나온 그 자리에 몇십 명의 주민들이 대신 서 있다. 그들은 나를 진정시키기 위해 따스한 물과 담요를 가지고 와 얼싸안아주었다.
---「천막 농성으로 맞서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