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꽃이 피는가 싶더니 실록이 짙어져 온 산과 들이 파란색으로 물들었다. 내일이 단오라 어머니가 당부하던 말이 떠올라서 강변으로 나갔다. 하숙집에서 강둑길에 올라서서 서쪽으로 2백 미터 정도 가면 강둑이 산과 연결되는 지점이다. 산기슭과 강 사이에 밭이 있는데 손수레가 다닐 수 있는 굽은 오솔길이 저 멀리 강 끝까지 이어져 있다. 강변을 따라 길을 가는 것은 언젠가 보았던 밤나무를 찾기 위함이다. 내 얼굴은 어릴 때부터 마른버짐이 피어 흰색 반점 같은 것이 여기저기 있다. 밥을 잘 먹지 않아 영양부족으로 생긴 버짐이다. 어릴 때는 그냥 두고 지냈는데 중학생이 되니 보기에 흉했다. 그렇다고 병원에 갈 형편도, 약을 살 돈도 없으니 어머니는 안타까웠던 모양이다.
도영이가 나와서 기다리지나 않을까? 정말 나오기나 할 것인가? 조금 전에 해는 졌지만 강에 흘러가는 물, 강변 밭에서 일하는 사람들, 마을 우물가 여자들은 어제처럼 보였지만 오늘은 더 아름답게 보였다. 강둑을 걸으면서 누가 보지나 않을까? 진수라도 오면 어떻게 하지! 수문에서 만나자고 했는데, 수문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수문 밑에서 기다리나 하고 내려다보니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도영이가 언제 나타났는지 내 뒤에서 웃고 있었다. 도영이의 웃는 모습을 보는 순간 모든 걱정이 사라졌다. 수문에서 시내 쪽으로 가고 있는 도영이를 따라갔다. 발을 맞추게 되자 도영이가 입을 열었다.
생각나는 대로 몇 번 수정하고 썼으나 다른 학생들이 고치고,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고쳐도 내 마음에는 들지 않았다. 특히 ‘다시 못 올 추억을 가슴에 잠재우면서’라는 구절을 넣었는데 도영이와 헤어진다는 생각 때문에 빼고 싶었다. 졸업앨범의 도영이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교복의 흰 칼라가 다른 여학생보다 크다. 갸름한 얼굴, 굵은 눈과 쌍꺼풀, 오똑한 코, 얇은 입술, 보조개가 들어가는 볼이 너무 귀여웠다.
중학교의 마지막 겨울방학이다. 종업식을 하자 싸놓은 가방을 들고 시골집으로 갔다. 부모님과 같은 방을 쓰려고 하니 공부가 되지 않아 불을 때지 않던 방에 불을 넣고 나니 형에게 미안했다. 아버지도 갈비와 장작을 하지만 형은 추운 날씨에 절골까지 소달구지를 몰고 가서 나무를 했다. 가까운 뫼골에 가서 깨두거리(그루터기)와 썩은 나뭇가지를 지게에 지고 왔다. 한 짐을 지고 왔지만 한 번 불을 지피면 없다. 낮에는 질녀 조카들과 놀고, 나무하고, 공부도 하지만 밤에는 마을에 들어가서 친구들과 어울려 윷도 놀고 화투놀이도 했다. 마을에서 떨어진 새로 지은 집이 3년이 되었지만 적응이 되지 않는다.
주산 합격증을 4장이나 들고 시골집에 가니 어머니는 ‘내 아들이 최고!’ 라며 온 동네에 자랑을 했다. 용돈은 아버지에게 타서 쓰는데, 아버지는 아침 일찍 일어나 저녁 식사를 할 때까지 농사일, 친척 대소사, 조상일, 이웃일, 심지어 친구일 까지 돌보느라 항상 바빴다. 아버지는 농사일도 부지런히 했지만 사주, 관상, 중매, 궁합, 일 년 신수, 건물 신축일, 장 담는 날, 부엌 고치는 날, 환자 객귀 물러주기, 상가 예의, 부고, 대들보 글씨, 축, 홀기, 풍수, 족보 수단, 조상 산소 상석, 비, 비문, 당제사, 기우제 등 사람이 태어나서 죽은 후의 일까지 앞서서 했다. 집안의 수입과 지출은 아버지를 통해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돈은 아버지 궤짝으로 들어가고 나왔다. 토요일 집에 왔다가 일요일 오후 시내로 갈 때는 어디에 얼마가 필요한지 조목조목 이야기하면 궤짝의 큰 종이 지갑에서 돈을 꺼내 준다.
점심을 먹고 시내에 가려고 아버지를 찾으니 앞들 논에서 추수를 했다. 교복을 입고 가방을 사랑방 동마루에 둔 채 일꾼, 품앗이꾼, 가족들이 일을 하는 논으로 갔다. 오솔길을 따라 가다가 논둑길로 접어들었다. 이웃집 논둑을 걷다가 동네 사람들이 일을 하면 인사를 하고 또 이웃집 밭둑으로 걸어서 오래 전에 산 다섯 마지기 논에 가니 모두 엎드려 벼를 베느라 정신이 없다. 모내기를 할 때는 논둑에 앉아서 줄을 들어 주기도 하고 조금 거들기도 했다. 어제는 벼 베는 일을 거들다가 낫에 손을 조금 다쳤다. 가족들은 내가 농사일을 거들어도 서툴기 때문에 저러다가 말겠지 하고 관심이 없다.
은행 입사시험은 학교장의 추천을 받아야 응시할 수 있다. 추천 조건은 주산 2급 부기 2급 이상으로 3학년 때 전 과목 평균이 80점 이상이어야 한다. 해마다 입사시험 조건에 맞는 학생은 3명, 많아야 5명 정도이다. 3학년이 되고 중요한 1학기 중간고사 시험이 월요일인데 책을 살 돈이 필요하여 토요일 오후에 시골집에 갔다. 월요일 시험 칠 과목을 준비하여 가방에 넣고 갔다. 저녁 늦게까지 호롱불을 켜고 월요일에 있을 상업대요, 상업수학, 국어, 사회 공부를 했다. 첫닭이 울고 잠시 눈을 붙였는데 창문이 훤하게 밝았다. 식구들은 아침을 먹고 논밭에 나가고 질녀들만 남았다.
늦은 아침을 먹으려는데, 어지러워 그릇을 들고 일어설 수가 없다. 곧 나아지겠지 하고 잠시 앉았다가 일어서려는데,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 방에 들어가서 누웠다. 늦어도 점심을 먹고 시내에 가야 한다고 걱정을 하며 눈을 감았는데, 점점 정신이 몽롱해졌다. 언제 왔는지 어머니는 내 머리를 짚고, 아버지는 옆에 앉아서 입맛을 다시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누워서 앓는 소리에 놀라 질녀가 들로 가서 연락을 한 것이 분명하다. 눈이 떠지자 시내에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억지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으나 걸음이 되지 않는다. 대문 옆 밭으로 뛰어가면서 중얼거렸다. ‘중간고사인데, 중간고사인데, 학교에 가야 한다. 가야 한다.’ 어머니는 신도 궤지 못하고 발을 절룩거리며 따라왔다.
도영이가 선을 본다는 날이다. 도서관에서 책을 봐도 영우와 두태가 장난을 걸어와도 의욕 없이 축 늘어져 하루를 보냈다. 영우는 왜 그러느냐고 지나가는 말로 했으나 마음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 그저 웃어 보였다. 저녁시간에 다방에서 만나 선을 본다는데, 선을 보고 저녁도 먹고, 영화구경도 가고, 강변에 산책도 하겠지! 도서관에서 학원으로 가면서 농협 앞을 지나며 이것저것 상상을 하니 가슴만 답답했다.
선을 보고 일주일이 지나도록 도영이는 아무런 연락이 없다. 농협에 찾아가서 어떻게 되었는지? 물어보고 싶지만 좋지 않은 답이 돌아올까? 두려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분명히 선을 보고 약혼식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일주일째 연락이 없는 것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지 않는가? 고개를 숙이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데 불이 켜진 전파사 스피커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