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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11월 11일
쪽수, 무게, 크기 112쪽 | 128*210*20mm
ISBN13 9791168150348
ISBN10 1168150345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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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속도로 달려오고 있을 당신을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어
나도 당신을 맞이하러
지구의 공전 속도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당신과 내가 어디서 만날지는 모릅니다.
워낙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달려가는 중이라
우리가 서로를 발견할 수 있을까요
설령 발견한다 해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당신이 나를 알아볼 수 있을까요
비바람을 이기고 마침내 피워낸 꽃처럼.
---「마침내 피워낸 꽃처럼」중에서

캘리포니아 1번 고속도로 ‘빅서’ 근처에서
폭우로 흙더미가 굴러떨어지며
고속도로를 끌어안고 태평양 바다로 투신했다.

평소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꿈에도 그리던 바다의 품을 향해
혼신을 다해 내달린 흙더미가
아름다운 해안도로 위로 질주할 때의
활시위 같은 팽팽한 긴장감
그리고 도로와 함께
온몸을 던져 바다로 향할 때
그 절벽의 높이만큼 치솟았을 짜릿한 전율

도로와 바다의 경계를 짓는
높은 절벽의 교만함도 허물어버린
치열한 흙의 정신이 내 시의 정신을 닮았다.
---「투신投身」중에서

너는 떠났다.
강을 건넜을까 산을 넘었을까
언젠가는 다시 돌아올 것 같은
예감을 떨치지 못하지만
아무튼 너는 먼 길을 떠났고
나는 지금 잃어버린
너를 기다리다 머리가 허옇게 쇠었다.
추억은 상자에 담긴 보물이 아니다.
추억이란
물수제비 뜨다가 호수가 꼴깍 삼킨 돌멩이
잃어버리고 찾다가, 찾으려 애쓰다가
마침내 돌아선 곳에 삶이 있다.
너는 떠났다.
호수가 삼킨 돌멩이에 물이끼 돋듯
우리가 있었던 시간은
아무도 추억으로 간직하지 않으리라
그러니 상실에 대하여
상심하지 않기로 한다 나여.
---「상실에 대하여」중에서

블루사파이어처럼 빛나는 저 눈망울을 보라.

뜨거운 태양과
보드라운 달의 피로
한 생명이 탄생하는 것은 참으로 커다란 축복이다.

그렇다. 무르익은 누리장나무 열매처럼
우리도 저마다
매혹적인 영혼의 눈을 간직하고 있다.
---「누리장나무 열매」중에서

참새 두 마리가 통통통 장난치며 놀고 있다.

저 가녀린 발가락이 대지를 울린다.

흔들리는 나뭇가지 춤추는 이파리들

구름의 그림자도 잠시 놀아주다 먼저 간다.

참새 두 마리의 작은 몸짓에 우주가 술렁인다.
---「작은 몸짓」중에서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써야 할 것들이 많은데
보드라운 이 아침
서서히 부풀어 오르는 나무
손톱까지 선명한
나무의 저 고운 손가락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얼마 남지 않은 시간」중에서

새로운 태양이 빛나는 이른 아침
오랜만에 만난 손자 키 훌쩍 컸듯
나무들은 한 뼘쯤 더 높아 보이고
맑고 푸른 하늘 우러르며
욜그랑살그랑 가동질하는 이파리
하비비 하비비 노래하는 새들
이 은총의 아침
빠담빠담 나의 심장 박동 소리.
---「이 은총의 아침」중에서

베드로 사도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하셨지.

거꾸로 매달려 보았니?
거꾸로 매달려 바라보는 세상을 너는 아니?

인간들은 나를
온 세계 코로나19의 원적지로 지목했지만
천만에, 인간 대신에 내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린 셈이야.

사실 지구상에서 인간만큼 어리석은 종족도 없지.
내가 초음파로 듣고 보는 능력을 인간은 가지지 못하지.

그래서 지금 신은 나보다 인간에게 경고등을 켜신 거야.
---「박쥐」중에서

상한 전복을 먹고 어지럽기 시작했다.
토했다. 세상이 빙빙 돌았다.
백치의 푸른빛이 용접불꽃처럼 튀어 오르고
또 토했다. 어지러움에 고통스러웠던 나는
미처 소화되지 않은
낯선 만남, 낯선 지식들
밑바닥까지 말끔히 네 번째 토하고서야
비로소 숨을 제대로 쉴 수 있었다.
녹초가 되었다.
온몸이 축 처질 만큼 상했다.
위장을 소란케 한 죄로
꼬박 이틀을 누워 정신을 못 차렸다.
나이 칠십 중반 생애가 상해도 단단히 상했다.
영혼이 상하고 평화가 상했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기도마저 상했다. 상했다는 것은
세상만사가 귀찮아진다는 것
사랑에 굶주려간다는 것
그러다가 그냥 그렇게 간다는 것
깊이도 모른 채 그냥 그렇게.
나이 칠십 중반이면 이제 상할 나이지.
아니 이미 상한 나이지.
---「상했다는 것」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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