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에서 흡수하는 것보다 많은 수분을 방출하는 식물은 고사한다. 대기의 온도가 높을수록 더 많은 수분을 빨아들여야 하지. 항의할 줄 알아야 하지만, 나중에 자신이 줄 것도 있어야 한다. 세상에 애정과 호기심을 가지고, 네 지식과 정서의 저장고를 듬뿍 채워두어라. 페미니즘이 네 주장의 설득력을 보증해주는 것이 아니라, 너의 지식이 너의 페미니즘에 설득력을 가져다주는 것이야. 페미니즘 아닌 다른 영역에서도 지적으로 신뢰받을 수 있어야 사람들이 네 페미니즘도 신뢰한단다. 다른 하나는 자신의 기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네가 너의 기쁨을 찾는다고 해서 항의의 진실성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란다. 오히려 너의 기쁨과 생동성만큼 너의 주장에 전반적인 설득력을 가져다주는 것도 없단다.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내놓거나 혹은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것보다, 네가 가지고 있는 것에 다른 사람들이 호기심을 갖도록 해라. 그렇게 하려면 너에게 어떤 즐거움이 있어야 한단다.
---「어쨌건 페미니스트인 Y에게_장춘익」중에서
장춘익 교수의 〈여성주의철학〉은 학습자들로 하여금 수업 콘텐츠인 성차별과 젠더불평등, 그리고 그에 대한 비판적 여성주의적 문제의식과 이론들에 집중하게 만들었으며, 무엇보다 이러한 지식과 문제의식을 외부에서 주어지는 방식이 아니라 학습자들 스스로 생각하고 토론하는 상호적이고 자율적인 방식으로 획득하도록 만들었다. 즉, 장춘익 교수의 「여성주의철학」은 앞서 1장에서 한승일이 증언한 대로 학습자의 인지적 자율성과 실존적 사유 전환이 동반되는 수업이었다. 소크라테스의 엘렝코스와 루소의 고백화행에 비교할 수 있는 장춘익 교수 특유의 여성주의 교육실천은 최종적으로 학습자들로 하여금 졸업 후 그들의 사회적 성인의 삶에서 자발적으로 보편적인 여성주의적 도덕 가치에 따라 사유하고 고민하도록 만들었음이 보다 객관적으로 확인된 셈이다.
---「여성주의철학을 만난 102인의 기억」중에서
그의 강의실에서 경험하는 평등한 토론과 상호적 성찰, 그리고 발견의 행복한 감정은 많은 학생들로 하여금 여성주의 페다고지가 지향하는 연대의 가치를 내면화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보편주의 도덕에 근거한 이러한 연대의 가치를 내면화한 학생들은 강의실 밖에서 만나는 젠더 억압에 새롭게 주목해 저항하거나, 스스로 연대의 요구를 이어가는 파생 공론장을 만드는 행위로 나아갔다. 이 수업의 적극적 학습자들은 교내외에서 이차적인 공론장, 즉 각종 동아리, 독서회, 토론회, 문화행사 등의 활동을 자발적으로 기획했음이 구체적으로 확인된다. 학습효과의 관점에서 볼 때, 말하자면 이들은 학습의 곱셈효과를 내는 오피니언리더 역할로 성장해나간 것이다.
---「실천이 된 교육」중에서
그는 사회대에서도 페미니즘 관련 수업을 들은 경험이 있는데, 그 차이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했다. “사회대나 교양수업에서 페미니즘을 다루는 수업이 있었지만, 장춘익 선생님 〈여성주의철학〉 수업처럼 그렇지는 않았어요. ○○○ 선생님은 페미니스트이고 목소리 톤도 그렇고, 늘 입장이 명확했어요. 만약 여성할당제에 대한 백래시가 있다고 하면, 그 백래시가 잘못됐다고 명확하게 말씀하셨어요. 저는 그게 불편했던 사람은 당연히 아니지만,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거 같아요. 그러니까 두 분의 수업방식은 완전 다르죠. ○○○ 선생님은 자신의 명확한 입장에서 강의를 쭉 하는 방식이고, 장춘익 선생님 수업은 항상 학생들이 발제를 하고 나서, 질문하고 토론하는 것을 하나씩 들으면서 나가는 식이고. 학생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수업이 라는 게 장춘익 선생님 수업의 가장 큰 특성이었던 것 같아요.”
---「하나의 수업, 열가지 삶: 수강생 인터뷰」중에서
하지만 대학에서 체계적 이론으로서의 페미니즘, 정치로서의 페미니즘을 만나기 전까지 나의 저 타자적 실존 감정은 내면의 혼란이나 저항, 고민이나 갈등에 가까웠다. 평소엔 대체로 미미했으나 때때로 격정적이던 내 안의 이런 감정들로 인해 엉클어지기 일쑤였던 일상과 사유에 얼마간 단단한 틀을 부여할 수 있었던 건 대학에서 만난 페미니즘 덕분이었다. 살아오면서 끊임없이 돋아나던 삶과 존재를 향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도록 도와준 이 새로운 페미니즘은 내게 기존의 사고방식이며 언어며 삶의 양식으로부터 바람처럼 자유로워지라고 일러주었다. 그리고 그러한 ‘당부’를 받아들일 때마다 나는 일종의 해방감을 느꼈다. 그 새롭게 열린 길에 발을 들여놓으며 기꺼웠다.
---「강의실에서 뻗어나간 나의 페미니즘 이야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