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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랗게 날아야 빠져나갈 수 있다

포지션 사림-18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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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11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168쪽 | 204g | 120*185*20mm
ISBN13 9791197019784
ISBN10 1197019782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예감은 때로 정지신호,
가늘어진 말들이 마른 기침소리를 낸다

침묵은 세상 밖의 노선
선뜻 다가서지 못하고 두리번거릴 때,
아프다고 소리치지 못하고 나를 잠글 때,
벼린 시간이 나뭇등걸에 매달려 있다

부랑자가 뱉은 마른기침을 먹고
공원의 편백은 무심히 자라 반백이 되고 다닥다닥 붙어 가계를 꾸리겠지

음률을 고스란히 옮긴 떨리는 손의 음표들
슬픔 위에서도 가볍게 내려앉아 기꺼이 날아오르려는 눈빛
내딛던 발을 걷은 껍질처럼 공손한 자세로 공벌레들이 웅크려있다
그늘이 거느리는 길을 묵묵히 따르는 당신
나방을 뒤따르는 한 무리의 침묵
어둠이 흩어지고 남긴 서늘한 빛무리 속으로
울고 남은 몇 개의 말들이 저녁으로 이운다
내가 버린 칼날의?곡哭들은 어디에 기대어 있을까
흰 뼈들이 공중을 떠돌고
입술 달그락거리던 석양이 홰를 친다

어느 쪽을 돌아봐도 낯설게 웃고 있는 얼굴들
어떤 생각은 날개가 꺾인 방향으로 천천히 고개를 묻고
핏기 없는 바람이 난간 끝에서 발끝을 모은다
진눈깨비처럼 쌓여가는 내 어깨의 석회

버스가 마지막 정류장에 정차했을 때

나도 모르게 나온 노랫가락을 붙잡고
눈 속의 혀는 오랫동안 습기를 핥고 있다
비로소 인적이 사라진 고행 속으로 날아가는 나방들
그 뒤를 맹목으로 따르는 어슴푸레한 것들이
잡힐 듯 잡히지 않은 채 멀어지고 있다

오늘의 바깥이 자꾸만 겨드랑이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나방은 누가 풀어 놓았을까」중에서

사라지는 것들이 구석구석 붙어있다

흔들리는 그림자를 바다라고 바꿔 부르기 시작했다, 복도
그곳에 들어서면 생각이 길고 멀어진다
늘어선 슬픔이 빼곡히 들어찬 방들
흰색 페인트의 농담濃淡을 적막으로 덧칠한다

배웅한 사람과 마중 나올 사람은 다르지 않다
드문 일이지만 트럭에 숨어든 이민자처럼
오늘도 죽음이 죽음을 살려내지 못했다
손가락 안쪽에 그믐달 같은 티눈이 들어앉기 시작했다

겨울이 도착한다
유리창, 침대가 바늘 틈에 꽂힌 채 손이 묶여있다
코로 이어진 식사 호스는 지하로 연결된다
복도는 조용하다
화살표는 얼마나 많은 의심이 뻗어 있나
오지 않을 날이 이미 와버린 것처럼
나의 물음표는 안과 밖의 모서리
흔들리는 물음이 사방에 널려 있다

눈물은 실패하지 않아요
병이 병을 어루만진다
복도에 버려져 까치발을 들고 있는 울음을 본다
병 속에 병이 같은 두께의 체온을 드러내도록
그 누구도 당신의 고통보다 빨리 달릴 순 없을 것이다
누군가의 바람이기도 했던 길,
약 없이도 수평으로 누워있는 당신
긴 바다가 출구 없는 둥근 시간이 된 채

천천히 유영하며 말을 걸어오는 난간이 흔들린다

끝이 만져지는 길
---「고통보다 빨리 달릴 순 없을 것이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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