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은 전쟁의 와중에 평화를 지향하고 구현하려는 열망을 담고 있다. 서사시나 비극의 주인공과는 다른, 비천한 신분의 엉뚱한 인물들을 무대의 전면에 내세워 그 열망이 실현되는 허구의 세계와 역사를 그려 냈다. 영웅이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가 비극적 결말로 막을 내리는 것과는 달리, 반反영웅적인 주인공이 맹렬히 활약하는 희극의 공간에는 기쁨과 환희의 축제로 채워진다. ---「1장 희극의 반영웅주의적 상상력 - 아리스토파네스의 ‘평화 3부작’ 읽기 」중에서
대부분의 현대 독자들에게 크레온은 더는 『안티고네』의 영웅이 아니다. 『안티고네』의 영웅은 폭군에게 맞서다가 순교한 안티고네로 뒤바뀌었다. 가치관의 변화와 함께 어제의 반영웅이 오늘의 영웅 반열에 오른 것이다. ---「2장 가치관의 전쟁 -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의 영웅과 반영웅 」중에서
일반적인 영웅상에서 보자면 스트릭랜드는 비열한 인물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한 민족 공동체를 이끄는 영웅들의 시대에 살고 있지 않았다. 그가 전통적인 영웅들의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역사와 신화 속의 영웅이 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근대 자본주의 체제가 등장하고, 자본주의가 낳은 물질문화가 인간성을 타락시킨 시대에 살고 있었다. 모든 개인이 물질적 이익만을 좇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런 시대에 고전적인 영웅적 가치를 들고나온다면 비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스트릭랜드라는 반영웅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영웅적 인생을 살았다. ---「3장 인간적인 굴레보다 숭고한 아름다움 - 『달과 6펜스』의 반영웅, 찰스 스트릭랜드 」중에서
독자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너무도 경직되고 기계화된 요나탄 노엘의 사고와 행동으로 인해 자주 웃게 된다. 작가는 바로 이 점, 즉 삶과 사고의 경직성이 가져올 수 있는 부정적인 측면을 희화화하면서 그것에 대해 경고하는 것이다. 그런데 평생 성실하게 살아온 요나탄, 그의 소시민적 삶과 사고의 경직성은 21세기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같은 소시민들에게서도 자주, 그리고 점점 더 많이 발견되는 것 같다. ---「4장 현대의 소시민: 삶과 사고의 경직성 -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비둘기』를 중심으로 」중에서
주인공 허삼관은 시대적 영웅과는 한참 거리가 먼 지극히 평범한 인물이다. 모순된 세상을 바꾸어 보겠다는 웅대한 포부도 없고, 딱히 이렇다 하고 내세울 재주나 사회적 지위도 없는, 먹고살기 힘든 시절을 맨몸으로 부딪쳐 살아간 중국의 대다수 소시민이 바로 허삼관이다. ---「5장 미워할 수 없는 소시민 허삼관 」중에서
개인적 출신과 시대를 탓한다면 영철의 불운이 설명되는 것일까? 그 시대 영웅적 존재들의 구상과 결정은 필부 영철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영철은 자신의 방식으로 이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오고자 했지만, 실패할 수밖에 없었고 남은 것은 회한뿐이었다. ---「6장 전쟁의 시대, 보통 사람 김영철의 일생 」중에서
나라를 기울게 한 미인. 경국지색이라는 것은 어쩌면 권력을 장악한 이들의 필요 때문에 의도적으로 부각된 역사 서술 방식이었을지 모른다. 이와 달리 민간 속에 전해진 이야기는 경국지색 달기를 다른 시에서 그려 내고 있었다. ---「7장 나라를 무너뜨린 악녀였을까, 복수를 꿈꾼 영웅이었을까 - 달기 이야기 」중에서
분명한 점은 『마르탱 게르의 귀향』의 베르트랑드를 특이 사례가 아닌 반영웅으로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16세기 후반 프랑스 아르티가에서의 생활을 중세 후기 남프랑스 시골 마을에서의 획일적인 삶 중 한 돌연변이가 아니라, 후대인이 고정화한 관념 틀 안에서도 보다 다양한 가능성을 모색했던 모습을 남긴 당시 인물의 흔적으로 새롭게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8장 세상과 맞춰 가며 사랑을 찾았는데, 그만… - 나탈리 Z. 데이비스의 『마르탱 게르의 귀향』 」중에서
어쩌면 메데이아는 반영웅적 존재인 고대 희랍의 여성들의 대변자로서, 비록 당장 인정받고 있지는 못하지만, 그들 역시 남자들처럼 인류 역사의 주체이고, ---「비록 여성의 인권 신장이 이루어지는 것은 그로부터 훨씬 뒤의 일이기는 하지만) 언젠가 변화와 개혁에 동참할 수 있는 강력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남자들 못지않게 위대한 존재라고 말해 주는 인물이었을지도 모른다. ---「9장 메데이아! 영웅인 듯, 영웅 아닌, 영웅 같은 그녀 」중에서
과연 카틸리나는 극악무도한 악당이었을까. 결과적으로, 끝내 불법적인 무장 세력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는 점에서 로마 공화정에 대한 카틸리나의 반국가적 행위는 이론의 여지 없이 단죄받을 일이었다. 그러나 그가 급기야 ‘실제로’ 무력에 의탁하게 된 것은 다름 아닌 키케로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10장 키케로의 반反영웅 카틸리나 - 『카틸리나 규탄 연설』과 그 이후 」중에서
프로메테우스와 인간들이 어떤 존재들인가. 이야기 속에서 프로메테우스는 교활한 속임수와 계략을 쓰면서까지 자신이 아끼는 인간들을 보호하려다 고통당해야 했던 반영웅이자 다크 히어로였다. 한편 인간들은 그의 비공식적인 지원을 받기는 하지만, 제우스의 질서에 더욱 강력하게 구속되고 그의 결정에 따라 일방적으로 좌우될 수밖에 없는 다수의 ‘쩌리들’이었다. 그런데 이런 그들에게도 제우스의 질서를 거슬러 자기들의 의지를 실현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11장 다크 히어로의 측면에서 다시 보는 프로메테우스 」중에서
유비가 조조를 압도하거나 필적할 만한 강한 영웅상으로 상상되지 않았기에 그를 치자의 영웅으로 정립해 가는 데는 무용은 뛰어나지 만 기질상의 결점도 적지 않고 도덕적 약점도 많은 장비 같은 반영웅이란 존재가 꼭 필요했음이다. 이것이 조조라는 확실하고도 강렬한 반영웅이 유비의 반대편에 확고하게 설정되어 있었음에도, 유비 진영에 장비라는 또 다른 반영웅이 별도로 존재하게 된 저간의 사정이다. ---「12장 영웅이기를 거부한 ‘직진直進’ 장비 」중에서
영웅은커녕 저팔계는 인간이 지닌 갖은 욕망의 집적체로 일관되게 형상화되어 있다. 역대의 논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저팔계를 세속적 욕망과 인간이 지닌 저열함의 화신으로 평해 왔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저팔계는 반영웅의 반열에 오를 만한 여지를 확실하게 지니고 있었다. ---「13장 불량 영웅 저팔계 」중에서
켄 키지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1962)에는 근현대적인 반反영웅상을 대표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 인물들은 탁월한 역량과 자질이 있기는커녕 사회적으로 무능하고, 심지어 범죄를 저지른 자이다. 하지만 소설은 이 사회적 패배자들이 억압적인 제도에 맞서서 자유라는 가치를 드높이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14장 자유의 가치를 되찾은 루저들 - 켄 키지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반영웅상 」중에서
왕백작에게는 시대에 부합하며 시대를 이끌어 가는 강력한 계몽의 힘에 장악되지 않는 것이 목표이다. 그는 식민 제국이 추진하는 전시 체제에 잘 부합하는 인간으로 계몽되고 싶지 않다. 갱생하여 광명의 시대에 걸맞은 인간으로 개조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개조되지 않은 반계몽의 인간으로 사는 것도 불가능하다.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돌아갈 수도 없다.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한다. 삶의 의지는 있으나 방향은 없다. ---「15장 갱생을 거부하고 기인奇人으로 살다 - 「유치장에서 만난 사나이」의 왕백작 」중에서
루쉰의 초기 작품에서 ‘영웅’은 깨어 있는 사람, 봉건적 구세계에 반항하는 용사나 전사, 시대를 앞서간 선구자로 묘사된다. 하지만 이러한 ‘영웅’들은 그들에 대한 민중, 즉 수많은 ‘비영웅’들의 몰이해로 인해 종종 ‘미치광이’로 그려진다. 그들은 세속을 초월하여 평범한 사람들이 ‘정상’이라고 여기는 세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비틀어 보기 때문에 미쳐 보이는 것일 뿐이다.
---「16장 허망 속에서 방황하는 반영웅 - 루쉰의 단편소설 「술집에서」와 「고독한 사람」을 중심으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