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를 마치고 만난 친구는 요새는 문자 대신 카카오톡이라는 걸 쓴다고 했다. 핸드폰이 스마트폰으로 바뀌던 시기였는데, 친구는 나에게 요즘은 카톡으로 연락을 하는 거라고 누가 문자를 하냐고 놀렸다.
누. 가. 요. 새. 문. 자. 를. 해.
세상은 바뀌어 가는데 내 시간은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그렇게 나의 20살과 21살은 지나가고 있었다. 운동을 마치고 학교를 나와 도서관으로 가는데 발걸음이 무거웠다. 작년에도 걸었던 이 거리, 성과 없이 보낸 1년과 다시 시작된 1년, 잘할 수 있을까, 이 시간을 견뎌낼 수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달리 갈 곳도, 할 것도 없었다. 불안감을 잠재우려면 공부를 하고 운동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야만 했고, 그것만이 답이었다. 그렇게 매일 도서관을 찾았고, 그렇게 매일 평행봉을 했다.
---「혹시 뒤처질까 불안해질 때면」중에서
단어들을 몸으로 배우곤 한다. 사랑도 절망도 외로움도, 경험하고 나서야 그게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잠들지 못하는 밤으로 사랑을 배웠고, 무기력증을 앓고서야 절망을 배웠다. 원래 그런 감정들은 겪고 나서야 알게 되는 건지, 아니면 내가 이해가 느려서 그런 건지, 나는 그런 종류의 감정들을 책으로 배울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사랑이 사랑이었다는 걸, 절망이 절망이었다는 걸, 몸으로 느끼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어디를… 더 자르라는 거죠?” 고등학교 입학 전 겨울 방학, 그러니까 중학교 3학년 2학기를 마친 겨울이었다. 2주 연속으로 미용실에 갔다. 1주일 만에 다시 찾아온 나를, 디자이너는 의아해했다. 스타일을 바꾸거나 군인 머리로 밀어달라고 했으면 납득했을 것이다. 하지만 6일 만에 다시 나타나 한 달 뒤에나 주문할 법한 ‘다듬어 주세요.’라는 한마디만 건넸으니, 다듬을 게 없는 머리를 보며 선생님은 당황해했다. 미용실에 다시 간 이유는 기분이 이상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은 침대에 누워 핸드폰 배경 화면을 그냥 검정, 까만 색종이 같은 화면으로 바꾸기도 했다. 그게 뭔가 기분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왠지 별론데 정체를 모르겠는 느낌. 그래도 머리를 다듬으면 새 신발을 신은 느낌이랄까, 기분이 환기된다는 걸 알고 있었고, 그래서 미용실에 다시 찾아간 것이다. 그렇게 몇 주를 보내다가 우연히 들른 타로 카드 집에서, 파마머리를 한 주인장은 내 카드를 살피고, ‘동생이 많이 외롭네요’라고 했다. 같이 간 누나에게 동생이 많이 쓸쓸하다고, 내가 외롭다고 그랬다. 아. 그제야 깨달았다. 몇 주 동안 내려앉았던 기분, 핸드폰 배경을 검정 화면으로 바꾸고 싶고, 머리를 자르고도 또 다시 자르고 싶었던 기분, 그건 바로 외로움이었다. 그렇게 그날 외로움을 배웠다.
---「가난과 외로움은 숨길 수 없다」중에서
“너처럼 우울한 사람이 어떻게 행복을 말해.” 행복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고 말하자 친구는 우울한 행복 전도사가 될 거냐고 되물었다. 농담이었겠지만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얘기를 들은 그때는 ‘배가 고파야 음식을 찾고, 사랑이 고파야 사람을 찾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파야 건강이 소중한 걸 알고, 돈이 없어야 만 원이 귀한 줄 아는 것처럼 우울을 맛본 자가 행복을 더 바랄 텐데…. 이별 후에 부르는 사랑 노래가 절절한 것처럼, 우울했던 내가 말하는 행복 이야기가 더 마음에 와 닿지 않을까. 마냥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 후 사는 게 녹록치 않음을 알게 된 건 20대 초반이었다. 삶은 우울과 무기력으로 점철되었다. 내 마음이 그래서 그런지 주위 사람들이 지닌 마음의 그림자도 눈에 띄었다. 글쓰기 모임에서 만난 분, 마냥 밝아 보이던 그분은 23살 때 뉴욕에서 머리가 수박처럼 깨졌다. 파티가 있었고 술에 취했는데, 눈을 떠보니 병실이었다고 했다. 15시간 만에 의식을 찾았지만 비자가 3일밖에 남지 않아 머리에 붕대를 감은 채 귀국하는 비행기를 탔다고,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왔다는 얘기를 덤덤히 말했다. 겉보기엔 단단해 보이는 사람도 굴곡진 인생의 역경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사람은 자기만의 무게를 버티며 산다.
---「감사함은 사람에게서 온다」중에서
책을 읽기 시작한 20대 초반에는 박완서 작가의 수필을 탐독했다.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를 시작으로 『두부』, 『한 길 사람 속』,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등 당시 서점에서 만날 수 있는 대부분의 수필집을 골라 읽었다. 책 제목은 가물거리지만 이 가운데 아직도 인상 깊게 기억하는 글이 있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즐거움은 영화를 보기 전부터 시작된다는 내용이다. 영화를 보기 전에 우리는 감상할 영화를 누군가와 함께 고른다. 예매를 하고 약속 시간과 장소를 정한다. 당일이 되면 시간에 맞춰 옷을 입고 외출 준비를 한다. 영화를 본 후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영화에 대한 감상을 나눈다. 헤어져서도 함께한 시간을 곱씹으며 여운을 즐긴다. 이게 모두 영화가 주는 즐거움이라는 작가의 혜안에 내 눈이 밝아지는 느낌이었다. 그렇구나!
---「보이는 만큼만 살아가는 것이라면」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