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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정의 문장들

격정의 문장들

: 상언上言에서 독자 투고까지, 여성들의 목소리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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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11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308쪽 | 454g | 152*224*15mm
ISBN13 9791156122371
ISBN10 1156122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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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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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교 설립을 호소하며 대궐 앞에 엎드린 부인들의 목소리, 세상의 절반인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 여성독자의 목소리, “첩이 부인만 못하리까, 슬프다 대한의 천첩된 자들아”라고 외친 첩의 목소리가 그런 예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 자신의 존재 기반인 가문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국법을 어기고 편법을 행했다고 당당하면서도 간절하게 상언한 양반 부인의 상언, 시집을 향해 온몸을 다해 항변한 원정의 목소리가 있다
--- p.5

관청에 올린 진정서인 소지所志나 임금에게 올린 상언?격쟁擊錚이 있었다. 상언은 백성들이 글로 임금에게 직접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이고, 꽹과리를 친다는 뜻의 격쟁은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이 임금이 지나가는 길가에서 징이나 꽹과리를 쳐서 임금에게 하소연하던 제도였다. …… 상소는 아무나 쓸 수 없었다. 상소를 쓸 수 있는 사람은 관인이나 유생, 사림들에 국한되었고, 한문으로 써야 했다. 하지만 상언은 관원으로부터 천인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쓸 수 있었고 이두를 사용했다
--- p.16

정조 대 국왕에게 상언?격쟁한 사례들을 조사한 연구에 의하면, …… 여성들이 제기한 상언?격쟁이 405건이나 포함되어 있다. 정조 재위 기간인 1776년부터 1800년까지 약 25년 동안 405건이면 한 해에 16건 정도의 청원이 이루어진 셈이다. 이는 전체 상언?격쟁의 10.4퍼센트 정도이며 이 중 평민층 부녀자가 올린 것이 사족 부녀자가 올린 것의 3배 정도가 된다
--- p.18

여성이 상언을 할 수 있는 경우는 아내가 남편을 위해서妻爲夫 할 때이다. 그러나 여성들이 올린 상언은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 올린 경우도 많고 더러 딸로서 한 경우도 발견된다. 상언의 내용은 재산, 가족, 후계, 산송과 같은 일상에서 부딪치는 문제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신분에 따라 상언하는 내용도 달라서 양반 여성들은 주로 후계나 산송 문제로 상언을 했고 하층 여성들의 세금이나 송사 문제로 상언을 했다. 양반 여성들이 올린 상언 가운데는 사화를 비롯한 정치적인 문제로 죽은 남편이나 아들을 위해 올린 것들도 많다
--- p.18

윤씨 부인이 무조건 아들의 목숨을 구해 달라고 하는 건 아니다. 오시수의 정황이 용서받을 수 없고 죄를 면할 수 없다면 자신도 임금을 속인 것이니 함께 죽여 법을 바로잡으라고 한다. 윤씨 부인은 단지 아들의 목숨만을 구하고자 하는 어머니로서만 말한 것이 아니다. 윤씨 부인은 환국으로 정권이 바뀐 뒤 서인의 편에서 옥사를 재개한 임금을 향해 부당함을 주장하고 국가의 법을 바로 세우라고 신민으로서 말하고 있다
--- p.38

딸의 구명을 요청하면서 조원서의 처가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부분이 흥미롭다. 이치상으로는 용서하기 어렵겠지만 남의 첩이 될 수 있으며, 다만 사람들이 천하다고 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삼종지도를 잃은 것이지만 재혼할 수 있다고 했다. 즉, 사회적 비난의 대상은 되겠지만 관가에 잡혀 가 벌을 받을 죄는 아니라는 것이다. 유교적 정절관에 포섭되지 않고 당당히 재혼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조원서 처의 원정은 조선 후기 하층민 부녀들의 정절 관념이 양반들의 정절 관념과 다른 것을 보여 준다
--- p.76

시집 남자 어른들과 힘을 겨루고 시어머니에게 원정을 하여 승패를 가르고자 하면서 써 보낸 글에서 이씨 부인은 내내 시집과 대결 구도를 형성하고 격한 감정과 원색적인 표현으로 시집을 공격한다
--- p.79

이씨 부인이 선택한 방식은 유교적 여성 규범의 틀에 매이지 않는 것이었다. 바느질은 배우지 않았다고 하고 시집에서 나가 친정으로 갔다. 참고 순종하는 모습으로 자신을 재현하지도 않았다. 분노와 미움, 원망과 서운함, 슬픔과 억울함, 자신감과 자기비하 같은 감정들이 솔직하고 강렬하게 드러나 있다. 욕도 하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멈출 수 없다는 듯이 쏟아져 나온다. 조선시대 여성들이 쓴 글 가운데 이토록 감정을 강렬하게 표현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한 글은 찾기가 어렵다
--- p.90

초월은 제일 먼저 남편 심희순의 죄부터 고발하는데 그 어조가 놀랍다. 초월이 심희순에 대해 말하는 것을 보자. “재상의 손자요 사족의 아들인데 사람됨이 특히 모자라고, 행동이 경솔하고 무례하며 가난한 선비를 능멸하고 사람들을 무시하며”, 공부를 하지 않아서 무식하고 “지각이 없어 소견이 어둡고 생각이 막혀 있으니 밥 부대일 뿐”이다. 또 국록만 탐내고 부모를 돌아보지 않고 처첩을 두었으며, 집에서는 음악을 일삼고 창부와 가객들과 어울린다. 초월은 이런 남편을 삭탈관직해서 시골에 보내 10년간 두문불출 성현의 글만 읽게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 p.100

초월은 고을의 일만 번거롭게 하고 부자는 면죄해 주고 가난한 자만 재앙을 입게 하는 어사제도의 폐단을 지적한다. 또 임금이 술 마시는 것으로 일을 삼고, 기생 운희를 가까이하는 것을 혹독하게 비판하고, 중전을 박대하는 것까지 문제삼는다. 과거제도의 폐단도 빠지지 않는데 초월은 시골 선비가 응시하러 가는 과정부터 이야기하며 선비 아내의 노동을 언급한다. …… 이렇게 과거시험을 보러 가지만 과거장에 들어가서는 자리다툼에 억울하게 시골 선비만 욕을 당하고, 합격하는 사람은 권문세가의 자제들, 수령의 자제들, 시험관의 일가친척, 의주나 송경의 부잣집 자식들이라고 고발한다
--- p.101

대한제국 고종 35년인 1898년 9월 1일 서울 “북촌의 여중군자” 몇 명이 〈여학교설시통문女學校設施通文〉을 써서 여학교의 필요성과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며 학교 설립 소식을 전했다. 이날은 한국 여성운동사의 중요한 한 장면으로 기억될 만하다. …… 이들은 통문을 발표한 뒤 최초의 여성단체인 찬양회를 결성하고 회장을 지냈다. 1898년 서울 북촌 여성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찬양회는 남녀평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여성들이 단체 조직을 통해 사회적 경험을 쌓고, 단체 투쟁을 통해 사회적 경륜을 쌓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쳤는데 그 회원이 400여 명에 이를 정도로 많은 여성들의 호응을 받았다
--- p.113

북촌 여성들은 문명개화를 위한 여학교 설립을 주장하면서 전통적인 방식인 통문과 상소 형식을 택했다. 상소는 익히 알려져 있지만 통문은 다소 낯선 형식이다. 통문通文은 회문回文이라고도 하는데 특정한 단체에서 개인들에게 통지하는 문서의 형태를 말한다. 통문은 16세기에 문서 형식의 하나로 확립되었고 조선 후기에 이르러 널리 사용되었다
--- p.114

이목구비와 사지오관육체가 남녀가 다름이 있습니까? 어찌하여 병신 모양으로 사나이가 벌어 주는 것만 앉아 먹고 평생을 깊은 규방에 처하여 남의 절제만 받으리오? 이왕에 우리보다 먼저 문명개화한 나라들을 보면 남녀가 동등한 권리가 있어 어려서부터 각각 학교에 다니며 각종 학문을 다 배워 이목을 넓히고 장성한 뒤에 사나이와 부부의 의를 맺습니다
--- p.115

사나이가 위력으로 여편네를 압제하려고 한갓 옛글을 빙자하여 말하되 여자는 안에 있으면서 밖을 말하지 말며 술과 밥을 지음이 마땅하다 하니 어찌하여 사지육체가 사나이와 같은데 이 같은 압제를 받아 세상형편을 알지 못하고 죽은 사람 모양이 되리오? 이제는 옛 풍속과 규범을 전폐하고 개명진보하여 우리나라도 다른 나라와 같이 여학교를 설립하여 각각 여아들을 보내 갖가지 재주를 배워 이후에 여중군자들이 되게 하려 이제 여학교를 창설하니
--- p.116

이 통문은 여성 자신의 필요를 여성 주체의 목소리로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남녀의 동등한 권리를 주장했다. 상언에서처럼 남편이나 아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들이 주체가 되어 바로 자신들, 여성들을 위해 목소리를 냈다. 이것이 이 통문의 중요한 점이다
--- p.117

[제국신문] 1898년 10월 12일 자 〈잡보〉에는 전날 승동 부인협회인 찬양회 부인들이 상소를 올렸다는 기사가 실렸다. …… 기사에는 찬양회 회원들이 장례원 주사 김용규의 집에서 회의를 열고 가마를 타거나 걸어가서 상소를 올렸는데 “사람은 일반인데 남자가 벌어 주는 것만 먹고 규중에 들어앉아 갇힌 죄인 모양으로 권리도 없고 학문도 없고 어디를 다닐 때도 가마를 타든지 장옷을 쓰지 않으면 급한 일이 있어도 출입을 못하니 장옷 쓰지 말고 가마 타지 말고 우산이나 들고 다니게 해 달라”는 게 목적이라고 했다
--- p.121

1899년 3월, 북촌 부인들이 주축이 된 찬양회는 축첩을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 추계 최은희(1904~1984)의 《여성을 넘어 아낙의 너울을 벗고》에는 상소 장면을 이렇게 전한다. 그녀들은 흰 헝겊에 먹 글씨로 ‘한 지아비가 두 아내를 거느리는 것은 윤리에 거스르는 길이오, 덕의를 잃은 행위一夫二室, 悖倫之道, 德義之失’라고 크게 세로로 내려써서 장대에 매달아 포덕문 앞에 세웠다. 그 옆에는 정결한 돗자리를 깔고 대부분 옥색 치마에 미색 반회장저고리를 받쳐 조촐하게 의상을 차려입은 30~40대의 젊은 부인 50여 명이 한 무릎을 세우고 질서정연하게 앉아 있었다
--- p.127

그녀들은 고종 황제께 “상감께서 먼저 후궁을 물리치시고 공경대부로부터 미관말직과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기왕지사는 불문에 붙이고라도 앞으로는 절대로 첩을 두지 말라는 칙령을 내려 줍소서”라는 내용의 상소를 올렸다
--- p.128

평양 사는 농희란 기생이 시폐 여덟 가지에 수천 말을 중추원에 헌의하였다가 퇴함을 당하였던지 또 내부로 상서하였다는 글을 본 즉 과연 희귀하기로 대강 번역하노라. 중추원에 헌의하였던 글에는 중추원의 가운데 중, 지도리 추 두 글자를 평론하고 중추원 관원들의 실직함을 책망하였는데 사리가 당연하고 문법이 유식하여 가위 중용 문장이라고 할 만하다. 그 여덟 조목은 일 왈 추숭 사건이오, 이 왈 벼슬 파는 일이오, 삼 왈 별입시[임금을 사사롭게 만나는 것] 논란이오, 사 왈 과거 보일 규모요, 오 왈 학교 논란이요, 육 왈 기도 논란이오, 칠 왈 공맹의 도 숭상할 일이오, 팔 왈 비석을 세워 황상폐하와 공덕을 송축할 일이다
--- p.134

남녀의 교육이 모두 없어서는 안 되지만 여자교육이 남자교육보다 더 필요하다. 어떤 이는 “남자교육도 갖춰지지 않았는데 어느 겨를에 교육을 시작하겠는가”라고 함부로 말하거나 “남자만 교육해도 이미 충분한데 무엇 때문에 여자교육에 관심을 두겠는가?”라고 하는데 이는 진화의 시대에 통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늘이 사람을 낸 원리에도 전혀 무지한 것이다! 하늘에는 음양이 있고 사람에게는 남녀가 있는데 음양과 남녀는 분명히 서로 동등한 짝이라는 뜻이지 고하와 우열의 다름이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은 사사로움이 없으니 어찌 남자는 귀하고 여자는 천하며 또 어찌 남자는 현명하고 여자는 어리석겠는가?
--- p.150

신소당은 먼저 남자를 향해서는 충효의리를 품고 보국안민을, 여자들을 향해서는 여자 몸으로 보국안민할 수 없으니 여학교를 세워 개명 규칙을 배운 뒤에 남자와 동등하게 황실을 보호하고 민생을 구제하면 좋지 않겠느냐고 권한다. 그리고 여학교 회원들을 향해 여학교 경비와 황제 즉위 기념일인 기원절 경비를 줄일 방안을 제시하고 절용절검해서 국가든 개인집이든 빚이 없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 p.183

1907년 2월 23일에는 대구에서 부녀들의 국채보상운동 조직이 결성되었다. 해외의 여성들도 국채보상운동에 적극 동참했다. 의연금을 보내고, 부인이라고 가만히 있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돈만 보내지 말고 금은패물과 곡식도 조금이라도 내자는 내용의 투고도 했다. 이들은 나라 위하는 마음에는 남녀가 없으니 세계 열강이 서로 다투고 빈약한 나라를 빼앗아 삼키려는 시대에 빚을 갚고 자유를 찾아 문명한 독립국이 되자고 하며 국채보상운동에 동참했다
--- p.190

대체로 이천만 중 여자가 일천만이오 일천만 중에 가락지 있는 이가 반은 넘을 터이오니 가락지 매 쌍에 이 원씩만 셈하고 보면 일천 만 원이 여인 수중에 있다 할 수 있습니다. …… 다만 손가락을 속박하는 것뿐이오. 여인의 사랑하는 바이지만 자녀에게야 비할 것인가? 우리나라 수백 년 풍습이 일용사물로 소용없는 것을 이렇듯 사랑하는 것이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하였더니 오늘날 이 중대한 일을 성취하는 데 비함이로다. 이렇듯이 국채를 갚고 보면 국권만 회복할 뿐 아니라 우리 여자의 이름 세상에 전파하여 남녀동등권을 찾을 것이니
--- p.191

교육자들은 ‘단발을 좌우로 갈라서 짙은 기름을 바르고 맥고모자를 쓰고 구두를 신은 신식 차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농운 낭자는 이들을 보며 과연 교육자인지 얼개화자인지, 실속 없이 남들을 따라하는 자들이 아닌지 의아해한다. 그리고 이들에 대해 신학문이니 교육이니 하는 말만 잠깐 듣고 구학문을 심하게 논박하니 문명 교육계의 ‘마귀’라고까지 한다. 농운 낭자는 서양 여러 나라가 문명부강하게 된 것은 교육의 효력이라고 하여 그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교육자들의 신식 차림과 구학문 비판에 대해서는 반감을 드러낸다
--- p.197

부용은 의봉루에서 국채보상운동을 위한 단체 설립을 주장하는 신사들의 연설을 듣고 애국부인회를 만들었다. …… 그런데 강주식이라는 사람이 와서 부용을 비롯한 회원들에게 모은 돈을 합하자고 했다. …… 부인회의 일원인 왕손만은 나라에 보답하는 마음은 개인 각각의 의무이고, 예의로 보면 함께 앉을 수도 함께 모일 수도 없다고 거절했다. …… 애국부인회가 모금한 돈을 합하지 않겠다고 하자 일본 순사까지 동원해서 방해하며 졸렬하게 행동한 강주식에 대해 부용은 “천생적발피天生的潑皮”, 즉 “타고난 부랑자”라고 하면서 비분함을 이기지 못해 알리니 이 ‘글을 게재하여 퍼뜨려서 애국부인회를 방해하는 사람을 성토해 주기를 바란다’고 호소했다
--- p.203

부인도 층층이요, 사부도 층층이요, 남의 첩도 층층이지 사부의 딸이라고 행세가 방탕하고 제멋대로여도 부인입니까? 상놈의 딸이라도 생각 없는 남자들이 후취, 삼취, 사취까지 함부로 해 온 것도 부인 축에 가오리까? 첩이라도 상처한 후 들어와서 고락을 같이 겪고 봉제사 접빈객에 자식 낳고 일부종사하는 첩이 부인만 못하리까? 방탕하고 제멋대로 구는 첩과 같이 옥석으로 구분해서야 어찌 아니 분하리까?
--- p.213

1899년 스스로를 과부라 밝힌 여성이 개가 문제를 남녀평등이라는 대의와 연결시켜 쓴 글을 [제국신문]에 투고했다. 자칭 ‘대한광녀’라 한 여성의 글이 그것이다. 광녀란 말은 曠女, 즉 홀어미, 과부를 말한다
--- p.221

대한광녀가 말한 청춘과부의 참혹한 광경이란 무엇인가? “적적히 빈 방”에서 외로운 침상을 의지해 “이 생각 저 생각에 심사를 둘 데 없어 짧은 한숨 긴 탄식에” 팔자타령을 하고, 봄바람 가을 달에 애가 끊어지고, 겨울밤 여름날에 잠 못 들어 원한이 사무치는 것으로 적게는 한 집안의 재앙이고 크게는 나라의 재앙이다. 과부의 문제를 외로움의 문제로만 보는 것 같지만 대한광녀는 이것이 집안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국가의 문제라고 보고 나름의 해결방안을 제시한다. 대한광녀는 먼저 조선이 여성을 교육시키지 않는 고루한 풍습을 비판하면서 이천만 중의 반이 되는 여성을 교육시키지 않고는 개명진보도 부강기초도 이룰 수 없다고 한다
--- p.222

대한광녀가 제시한 해결방안은 명료하다. 과부 본인이 절개를 지키기 원하면 그 뜻대로 하게 해 주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개가하게 하는 것이다. 대한광녀는 수절 자체를 문제삼지는 않는다. 과부 본인이 원치 않는 수절을 가족의 이익 때문에 강요당하거나, 개가가 허용되었는데도 점잖은 집안에서 개가시키지 않는 것을 비판한다
---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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