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공식적으로 별난 아이라고 진단받은 건 2년 전, 열두 살 때다. 그전에도 비공식적으로 별난 아이긴 했다. 부모님도 짐작했던 것 같다. 그날 랭리 선생님의 진료실에서 모두 나만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름을 말해 주겠니?”
말이 안 되는 말이다. 선생님은 오랫동안 우리 가족을 진료했다. 만에 하나 그때까지 내 이름을 몰랐다면, 선생님은 내 이름으로 예약된 진료 시간에 누가 나타나리라 생각한 걸까? 사실 나는 말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특별한 상황에 맞닥뜨리면 머릿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진다. 내가 하려는 말이 머릿속에서 감쪽같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그럼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혹은 머릿속에 너무 많은 말이 한꺼번에 떠올라서 엉망진창 난장판으로 변해 결국 한마디도 하지 못하곤 한다. 어떤 때는, 하고 싶은 말이 뭔지 정확히 아는데 그 말이 어딘가에 걸려 도저히 꺼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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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에 등교하는 첫날이 오기 전에 선택적 함구증이 마술처럼 사라지기를 바랐다. 하지만 너무 걱정한 나머지 증상은 더 심해지고 말았다. 결국 내가 옳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얼마나 간절히 소망하는지와 상관없이 나 같은 사람에게 꿈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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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명의 낯선 얼굴들, 수많은 교실, 시간 맞춰 울리는 준비종 소리, 기운이 넘치는 아이들, 영원히 멈추지 않을 듯 내리는 비, 사라져 버린 말과 함께 학교에서 지내는 동안 나는 줄곧 단 한 가지 소망을 품었다. 그건 바로 ‘친구’였다. 말을 못 하는 아이에게 친구란 유니콘처럼 희귀한 존재다. 하지만 유니콘과는 달리 흔해 빠진 것도 있으니, 이미 나쁜 내 기분을 더 나쁘게 하는 사람들이다.
새로운 학교에 가서 처음 두 주를 누구와도 말하지 않고 보내면, 일부러 그런다며 무례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자신과 함께하기 싫거나, 자신을 좋아하지 않거나, 굉장히 유별난 아이라고 오해할 것이 뻔하다. 또 누군가는 하고 싶은 말이 전혀 없는, 말도 없고 생각도 없는 텅 빈 인간이라고 여길 것이다. 걸어 다니는 백지처럼 존재감 없는 사람이랄까. 나라는 존재는 한마디로 ‘노바디’였다.
노바디와 친구가 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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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나는 학교에서 목소리를 내게 되었다. 그렇게 절실히 원하던 목소리를 말이다. 나 자신을 포함해 메이너 중학교에서 아무 말도 못 하고 고통당하는 노바디들을 대변할 만큼 커다란 목소리를. 이 목소리는 내가 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던 말들을 모두에게 들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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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내내 마치 실제로 사람들을 보면서 말하는 느낌이 들었다. 진짜 기분 좋았다. 학교에서 다섯 달 가까이 지내는 동안 구데이커 선생님 말고는 누구와도 말을 해 본 적이 없다. 시간이 갈수록 구데이커 선생님이 더 좋아졌는데, 선생님은 내가 수선 중이라고 한 책에 대해 집요하게 캐묻지 않았다. (사실 블로그에 글을 쓰느라 책을 수선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서 선생님에게는 딱히 좋은 일이 아니긴 하다.)
집에 돌아와서 미스 노바디 블로그에 글을 올린 뒤 ‘만세, 내가 별종이라는 게 이렇게 기쁠 수가’라거나 ‘우리 반에 늘 벌을 받느라 방과 후에 남는 남자애가 있는데 쿨해서였어ㅋㅋㅋ’라거나 ‘노바디라서 자랑스럽다, 다른 사람 눈물 쏟게 만들면 쿨한 게 아니지’라는 댓글을 읽으며, 내가 변화를 만들었다는 확신을 얻었다.
그보다 더 좋은 건 나 역시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이번만큼은 나쁜 쪽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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