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주인을 닮는다고들 한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마주가 되어가는 것이다. 말들은 주인의 내면에 자신을 녹아들게 한다. 감정의 위장이다. 목장에 있는 말들은 오랫동안 망가진 사람들을 수도 없이 많이 보아왔다. 그들은 얼굴에, 몸의 자세에, 각자의 독특한 움직임에 인생 역정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다닌다. 이 신체적 표현은 말들이 즉각 이해할 수 있는 언어다. 두려움과 그 사촌들─분노와 짜증과 고통─은 재소자들의 걸음걸이에, 들의 어깨와 목에, 굽은 등에 실리고 눈썹 밑 그림자에 숨어 그들로 하여금 곁눈질로 주위를 살피게 만든다.”
--- p.22
“이걸 씌우게 해줄 거야? 그 정도로 가까이 가도 돼? 준비됐어?나는 호크의 어깨 쪽으로 다가간다. 호크가 옆으로 물러나더니, 목을 꺾어 검은색 수장굴레와 붉은 리드줄을 쉭쉭거리는 뱀 보듯 빤히 바라본다. 전에 무슨 일이 있었든, 다신 그런 일 없을 거야. 나는 굴레의 버클을 흔들어 짤랑거리는 소리를 낸다. 호크는 몇발짝 더 물러나지만 멀리 가버리지는 않는다. 나는 오른손을 뻗어 녀석의 기갑**과 어깨, 가슴팍 가운데를 살살 긁어준다. 팔을 얼굴 가까이 더 들어올려 귀 근처를 긁어주면서 노랫말 없는 단순한 멜로디를 흥얼거린다. 녀석의 눈빛이 부드러워진다.”
--- p.30-31
“플로르와 새라는 감정이 북받쳐 먹먹해한다. 아래 속눈썹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이 목장에서 두 암말에게 손끝 한번 대지 못한 채 지내온 시간이 얼마인가. 그리 크지도 않은 목장인데 말이다. 여기서는 모든 인간, 모든 동물이 전체와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루나와 에스트렐라는 고립되고 외상을 입은 채 너무 오랫동안 방치돼 있었다. 그렇게 사는 게 어떤 건지, 플로르와 새라는 잘 안다.”
--- p.61
“나는 이 세상에 나온 순간부터 무언의 상태로 살기를 택했다. 심지어 내 방에 혼자 있을 때조차 말을 하지 않으려 했다. 나는 잠잠한 공간에서 살았고, 거기서는 침묵이 나를 보호해주었다. 나에게 언어는 보통 사람에게 그것이 가지는 의미─자신을 표현하는 힘─가 아니었다. 세상을 이해하는 힘도 아니었다. 나에게 언어는 모든것을 베어버리는 칼과 같았다.”
--- p.65
““저 말들이 여러분을 존중하길 바란다면, 먼저 여러분이 자기 자신을 존중해야 해요.” 나는 주의를 단번에 집중시킬 정도로 크게 말한다. “어떻게 걷느냐, 어떤 자세로 서 있느냐를 보고 말들은 여러분을 짓밟을지 순순히 따를지 결정할 거예요. 그뿐 아니라 여러분이 믿을 만한 사람인지 가짜배기인지도 판단할 거예요. 내 말을 믿으세요. 말들은 차이를 알아요.” 그러자 남자들 모두 나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완벽한 자세로 서려고 몸을 가다듬는다.“
--- p.105
”나는 어딘가에 속한 기분을 느낀 적이 거의 없다. 사람이 쉽게 느껴진 적이 없다. 겉에서 읽히는 것─제스처, 걷는 모양, 고개를 든 각도 등─이 입에서 나오는 말과 일치하지 않아서다. 나는 파티에서 구석에 처박혀 꼼짝도 안 하는 여학생이 아니다. 아예 파티에 가지 않는 여학생이다. 그런데 플로르와 새라, 렉스와 폴, 심지어 랜디와 같이 있을 때면 내가 그들에게 속해 있음을 안다. 우리는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들, 우리의 부적당한 부분들을 모두가 볼 수 있게 드러내고 다닌다. 목장에 완벽하고 아름다운 사람은 없다. 우리는 못난이들, 대하기 힘든 이들, 비가시적인 이들, 망가진 사람들이다. 감춰진 부분이 하나도 없다. 내게 말들이 늘 쉬운 상대였던 이유도 이것이다. 말들은 솔직하다. 자기 기분이 어떤지 그대로 보여준다.“
--- p.229
“지난 일 년간 나는 루나에게서 또다른 나를 보았다. 루나의 고립, 아무도 믿지 못하는 태도, 이 공동체에서 편하게 지내지 못하는 모습. 그런 모습에서 외롭고 은둔적이었던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 한때 사나운 짐승에 버금갔던 루나가 푹신한 동물인형과 더 닮은 모습으로 원형 마장 안을 한가로이 거닐고 있다. 나는 랜디의 기승대에 걸터앉은 채 루나와 조이가 산책 나온 오랜 친구처럼 한몸으로 흔들대며 걷는 걸 지켜본다. 문득 궁금해진다. 나도 루나처럼 더 온화한 존재로 변했을까? 마침내 남을 믿을 수 있게 되고 어딘가에 속한 기분을 느끼는 사람이 되었을까?”
--- p.3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