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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궤짝

[ 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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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11월 15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188쪽 | 128*185*20mm
ISBN13 9791198039705
ISBN10 1198039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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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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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무 궤짝 세 개가 마당으로 들려 나왔다. 궤짝은 어린애 하나 웅크리고 들어갈 수 있을 만한 크기였다. 허물어지고 있는 이 집과 저 궤짝들의 주인은 마리아였다. 그이는 작년 봄 윗동네 연씨네 선산에 묻혔다.

2. 이 흙집엔 오랫동안(사십이 년 동안이라고 요한이 말한다) 사람이 살지 않았다. 당시 마리아는 이 집을 30만 원에 샀는데 거기에 땅값은 포함되지 않았다. 하천부지의 이 땅은 매매될 수 없어 건물만 거래가 가능했다. 이 집은 전문용어를 써서 말하자면 지상권 주택이었다. 매매계약서 따위도 작성되지 않았지만 이 집의 주인이 마리아란 것은 온 마을이 다 알았다. 마을 사람들은 마리아가 곧 돌아올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이 집은 다른 사람을 들이지도 못하여 사람의 온기도 쬐지 못한 채 저 혼자 늙어 폭삭 주저앉을 참이었는데 마침 군에서 철거하기로 결정이 났다.

12. 피라미드로 보이는 삼각형 밖으로 머리가 삐죽 나온 쌍봉낙타 로고가 있고 그 아래로 CAMEL이란 글자와 그 아래에 냄비 지름을 뜻하는 26CM가 음각된 냄비 뚜껑 하단을 소동이 찬찬히 들여다본다. 마리아의 유품을 볼 때마다 소동은 누런 바람이 불던 그날의 마당으로 소환되곤 한다. 마당에 나란히 놓였던 궤짝 세 개는 한 사람이 짠 듯 모양과 크기가 동일했다. 궤짝 두 개는 틀림없이 열렸다. 퍽! 퍽! 쇠지렛대가 내던 소리도 분명히 있었다. 무엇보다 소동이 제 손으로 작성해 놓은 궤짝1, 궤짝2의 물품 목록이 있지 않은가! 그런데 가장 바깥쪽에 있던 궤짝3 아래는 빈칸이다. 아무런 목록이 없다. 텅 비어 있다. 퍽! 하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 세 번째 궤짝은 열리지 않은 게 분명했고 그 채로 분실된 게 확실했다.

19. 요즘 소동은 바쁘다. 그런데 포이에시스란 낱말에 자꾸 마음이 머문다. 포이에시스는 제작을 뜻하는 말이며 ‘시’라는 말의 근원이기도 하다. 소동은 자신이 손으로 무엇을 제작하는 걸 좋아한다는 걸 잘 안다. 그러나 시를 써본 적은 없다. 소동에게 시는 감상만 하면 되는 고마운 대상이다. 어쨌든 포이에시스.

24. 아무래도 서울 언니네 집에 한번 다녀와야겠구나 했던 건데 이렇게 되었네. 망자가 되어서나 올 줄 그때 알았다면 살림을 저렇게 마구잡이로 두지는 않았을 텐데. 시렁 위 이불은 다 닳았고 궤짝에 넣어둔 사진과 편지들, 그릇 몇 개만 남았구나. 용이도 운이도 우리 소서방도 우리 애기 동이도 눈시울이 붉네. 그래, 그래, 냄비는 멀쩡하니 가지고 가려무나. 아이고, 주전자는 하나 사지, 볼품없는 걸 뭐하러 챙기누? 그건 그냥 버려도 될 텐데. 아이구 아이들아, 사진만 챙기지 편지는 또 왜 챙기누? 저기에 뭐가 쓰여 있으려나? 남부끄러운 것도 있을 터인데, 그건 그냥 불태우면 좋을 텐데. 삼십만 원이면 그땐 큰돈이었지. 용이는 참 기억력 하나는 대단해. 삼십만 원을 주고 샀대니? 아니, 오라버니가 그 자리에 있었자뉴. 귀가 어둡다더니 저이 예전의 총기도 많이 사라졌네.

몇 달 살지도 못하고 이제야 와보네. 저 혼자 늙은 집이 무너지는구나. 그래, 옳다. 잘했다. 어차피 하천부지에 집값만 주고 산 집. 그런데 가만 보자, 이사했다고 용이가 서울서 사서 부친 후지카 곤로가 보이지 않네? 몇 번 쓰지도 않았는데. 이런, 이런. 죽어서도 물건이 아깝다니! 그래, 그래. 그것도 누군가 잘 썼으면 됐다. 여기도 죄다 입식 부엌이고 가스를 쓴 지 오래라니 그 곤로를 쓰던 여편네도 나처럼 망자가 되었기 십상. 아, 좋구나, 이 바람. 좋다. 이제야 왔지만 괜찮다. 좋구나, 좋아. 무너져라, 싹 무너뜨려라. 좋구나, 좋아.

35. 뻐꾹 뻐꾹 뻐꾹. 뻐꾸기가 울고 일들이 일어난다. 재스민 나무에선 새로 잎이 나고 화병의 백합은 이제 말라간다. 어린잎들은 쇠어 버리고 꽃이 떨어진 자리에 열매가 맺혀 있다. 일들이 일어난다. 전쟁이 나고, 가상화폐가 폭락하고, 물가가 오르고, 병에 걸리고, 죽고, 태어나고. 매순간 일들이 일어난다.

37. 모니카는 요한이 보내오는 택배를 멈추라고 말할 수 없었다. 마리아가 불귀의 객이 된 지 1년이 넘었어도 요한은 하루에 두 개씩 요구르트를 배달받고 있었다. 마리아 몫의 요구르트를 모아 〈소동 앞〉으로 택배를 보내며 모친의 부재를 애써 견디어 보려는 것 같았다. 헐거운 택배 상자 틈들을 마스크나 손소독제 같은 것들로 메꾸어 보냈는데 이번엔 진단키트 여섯 개가 더 들어 있었다. 모니카가 오라비에게 요구르트를 하나는 끊어도 되지 않겠느냐고 물었는데 요한은 단칼에 그럴 수 없다고 했다.

77. 찌뿌둥한 몸이 펴지고 마음이 비워지면 그 비워진 자리 한편에 조그만 연못 같은 마음이 차오르곤 한다. 가만히 눈을 감고 가슴에 손을 대면 몸속 연못에 고이는 물소리가 들려온다. 꽃이 피고 새가 우는 곳. 걱정과 다툼 들어설 곳이 없고 다만 두런두런 들려오는 이야기 소리. 낱낱의 사이가 느리게 느리게 흐르는 곳. 조그마해서 더 이쁘장한 연못 같은 마음을 몸속 어딘가에 두고 지내는 사람은 자애롭지. 제 안의 이쁜 곳을 잃지 않지. 그런 사람 하나를 나는 만났지.

160. 저들은 정갈하고 가지런한 세계보다 거칠고 야생적인 세계 쪽을 기웃거리는 사람들이었다. 가지런하게 수렴되는 생각보다 거칠게 확산하는 생각에 더 흥미를 느꼈다. 세상은 점점 더 매끄럽고 가지런한 길로 갔고 울퉁불퉁한 갈등의 구릉들을 깎아내기에 바빴다. 그래서 저들은 있어 왔고 있어야 할 구릉들을 찾아 나서야 했다. 언덕들이 사라지는 것을 먼저 경험한 자들을 찾아 나섰다. 그들의 조언이 절실했다. 하나의 길에 수렴되기보다는 무수한 길로의 확산을 바라마지 않는 이 가족은 그래서 셋이 함께 있지 않으면 종종 외로웠다. 셋이 같이 있어도 때때로 외로웠다. 그리하여 차라투스트라는 헤지고 낡아갔다.

165. † 찬미예수
어머니 바쁘시고 고생이 많으시지요? 이곳 요한은 항상 걱정이 됩니다. 밀은 베었는지 궁금하군요. 농사일에 모니카 데리고 고생이 많이 되겠네요. 빨리 돈을 보낸다는 것이 늦어졌어요. 아쉬운 대로 급한 곳에 먼저 쓰세요. 약국도 장사가 잘 안 돼서 돈이 몇 푼 안 됩니다. 이번엔 800원밖에 넣지 못했어요. 모니카와 엄마 난닝구라도 새로 사 입으세요. 많은 돈은 아니지만 생기는 대로 보내드릴게요. 할머니도 건강하신지요? 모니카도 잘 노는지요? 모니카가 두 돌이 넘었는데 아직 출생신고를 안 하셨다는 게 마음에 걸립니다. 관모아저씨께 부탁을 해서 빨리 출생신고를 하세요. 모니카 노는 모습이 눈에 선하고 자꾸만 생각이 납니다. 그리고 전에 보낸 비오비타를 어거지로라도 먹이세요. 밥에라도 넣어서 주든지 하세요. 애기가 너무 말랐어요. 다음에 또 쓰기로 하고 이만 줄입니다.
청주 약국에서 69년 6월 27일 낮 2시.

172. 요한이 보와라. 싸늘한 겨울이 계속되는 이때 타향에서 올마나 고생이 많겠니. 미운이 털모자와 장갑을 바든 즉씨 답장을 보냈는데 잘 받아 보았는지 궁금하고나. 너의 외숙모는 인기형 잔치때 서울 항모아저씨와 이모님 다 오기를 바라는데 너의 편지를 보니 두 분이 다 오실것같다니 반갑고나. 할머니 살아계실 때 꼭 다녀가시기를. 아무쪼록 너의 외가집으로 말하면 참 조흔 경사이니 꼭 다녀가야하지 안깼니? 요한아 너도 호씨 아저씨한테 잘 이야기하여서 꼭 갗이 오도록 하여라. 엄마도 늬가 보고싶어. 미운이는 오빠가 보고싶어 죽을 지경이란다. 돈이 업스면 가는 차비는 엄마가 마련해주마. 이만 주린다. 11월 26일 밤.

192. 젊어서도 마리아는 입이 무거운 아낙이었다고 모니카가 말하곤 했다. 남의 비밀을 잘 지켜준다는 의미라기보다는 마을 사람들만큼 생활어를 적절하게 사용하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그랬을 것이다. 때때로 이질적인 단어가 튀어나왔을 것이다. 그럴 때에 가톨릭의 언어는 얼마나 반가웠을까? 함께 시작하는 사람들이 다 같이 새로 배워가야 하는 언어. 모국의 언어에 어려움을 겪던 마리아에게 그 언어가 얼마나 반가웠을지. 공소 마당에 있던 하얀 마리아 동상이 어린 모니카는 무서웠겠지만 마리아에겐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외양간이 있고 아버지가 있는 동무들의 집과 달리 화단이 있고 측백나무 울타리가 있는 공소가 어린 모니카는 확실히 이상했을 것이다. 학교에도 없는 넓은 강당 마루가 있었어. 그 마루의 차가운 촉감을 아직도 잊지 못하겠어. 모니카가 석민에게 하는 소리를 소동도 몇 번 들었다. 노래 같고 반성 같던 미사의 말들. 나무 벽에 걸린 예수의 아이콘들.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과 창들. 좌우로 남자와 여자로 구분하여 놓인 방석들. 중앙에 단을 높여 놓인 제단 쪽으론 나가지지 않던 어린아이의 발걸음.

202. 공소는 많은 부분에서 좋은 공동체가 지니는 미덕을 가지고 있었다. 공소는 성스러움만을 강요한 게 아니었다. 서로를 친구 삼았으며 생활경제의 많은 부분도 함께했다. 함께 울고 함께 웃으며 더 좋은 사람이 되라고 서로를 격려했다. 마리아는 하나의 신을 믿었다기보다 공소에 참여한 교우들의 우정을 믿었을 터였다.

234. 유월이 되자 바람이 사나워졌다. 며칠 날이 궂더니 마침내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아직 큰 비가 아니어서 모니카가 금방 우울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뻐꾹 뻐꾹 뻐꾸기가 운다. 뻐꾸기가 울고 일들이 일어난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돈보스꼬가 종종 소동이 맘으로 들어온다. 알랭 들롱처럼 잘 생기고 배구도 잘하던 청년. 신부님의 미사 가방을 싣고 신부님보다 먼저 도착해 미사 준비를 하던 청년. 자라나고 마모되고 소생하며 미래와 닿는….

236. 유난히 바람이 많던 어느 봄날, 곧 허물어질 집 마당으로 나무 궤짝들이 들려 나왔다. 아이 하나는 들어갈 크기였던 그 궤짝들 안엔 아이가 웅크리고 앉아 있던 게 맞다. 그 아이는 마리아며 요한이며 모니카였다. 그리고 아직 열지 못한 세 번째 궤짝이 있다고 소동은 여전히 믿고 있다. 엄청난 호기심을 유발하는 수수께끼이며 그냥 옆에 두고 싶은 질문이며 삶의 어떤 부분은 믿어도 좋다는 허락 같은 이 세 번째 궤짝을 오늘도 소동은 믿어보는 것이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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