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우울증은 스물셋에 발병해 7년 뒤인 서른에 재발했다.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정신과 약을 먹는다. 35년 동안 우울증을 앓았고,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평생 항우울증 약을 먹어야 한다. 자살 충동을 이기지 못해 세 번 자살을 시도했고, 일산 백병원 정신병동에만 여덟 번 입원했다. 세 번째부터는 살기 위한 입원이었다. 병원에서 주는 밥 먹고, 약 먹고, 음악 치료를 하거나 미술 치료를 하며 우울증을 극복한다. 한시적이지만…….
---「하루의 시작」중에서
자살방지 문구가 걸려 있는 마포대교를 걸었다. 울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하염없이 걸었다. 강물을 보았다. 아주 깊고 어두웠다. 노란빛이 나는 ‘SOS 생명의 전화’ 앞에서 오랫동안 망설였다. 한강의 다리에는 ‘생명의 전화’가 있었다. 전화를 하면 금방 112 경찰차가 달려왔다. 아이 얼굴이 떠오르는 순간, 나는 수화기를 들었다. 경찰차를 타고 집으로 왔다. 자는 아이를 꼭 안았다.
“미안해. 미안해, 엄마가 나쁜 병이 있어서…….”
눈물방울이 자는 아이의 발간 볼에 떨어졌다.
---「이건 사는 게 아니야」중에서
우울증에 걸리면 먼저 빛과 소리를 차단한다. 두꺼운 커튼을 치고, 그것도 모자라 겨울 이불을 꺼내 그 속으로 들어가 고통으로 몸부림친다. 그리고 입을 굳게 다문다.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이나 친구들도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우울증을 앓는 사람의 공통된 말은 ‘제발 나 좀 내버려둬!’이다. 그런 뒤엔 자신의 의지가 약한 것을 자책한다. 병원에 대한 불신과 약에 대한 두려움을 갖기도 한다.
---「제발 나 좀 내버려둬」중에서
나는 고통스러웠다. 가난이 너무 싫었고, 비참했고, 언제나 울고 싶었다. 부엌을 지날 때마다 환멸이 났다. 그 부엌에서 지은 밥도 먹기 싫었다. 아침을 거른 채 학교에 가기 일쑤였다. ‘영양실조’ 진단 후 어느 날 엄마가 부라보콘과 환타를 사들고 그 넓고 현기증 나는 운동장을 뛰어 교실로 왔다. 선생님에게 그걸 맡기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꼭 먹여야 한다고. 나는 창피했다. 시꺼먼 전대에 꾀죄죄한 옷차림……. 너무 창피했다. 그때 내 소원은 엄마와 아버지가 장사를 하지 않고 다른 집들처럼 사는 것이었다. (…) 그 꿈이 얼마나 간절했던지 나는 심한 강박증에 시달렸다. 사실 나의 첫 우울증은, 다른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이 강박이 제일 큰 원인이었다.
---「소아 우울증」중에서
13년 동안 나는 만성 우울증으로 아무 의욕도, 예술가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열정도 없었다. 13년의 공백은 그렇게 해서 생겼다. 열정이 없다는 것은 내게 있어 살아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내 우울증을 저주했다. 뿐인가. 이혼, 아들의 방황, 월세 보증금 천만 원이 전 재산인 경제 상황도 저주했다. 나아질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한 친구는 내게 환경미화원이나 도우미 일을 해서라도 먹고살라고 하지만 이놈의 우울증은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만든다.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없다. 그저 소파에 멍하니 앉아 있거나 먹거나 때로는 내면을 들여다보다 잠들 수 있을 뿐이다. 마음만 괴롭다.
---「아프고 가난하고 외로운 은둔자」중에서
모든 인간이 그렇지만 특히 여성은 자신을 미워하지 말아야 한다. 또 가능한 한 사회적 활동을 하는 것이 좋다. 봉사활동도 괜찮다. 사람들 속에서 바삐 움직이며 자존감을 높이는 일이 필요하다. 몸을 많이 움직일수록 우울증에서 멀어질 확률이 높다. 마음의 근육을 단련시켜야 한다. 물론 기분이 들떴다 가라앉기를 반복하면 약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기분장애는 며칠씩 침대에서 나오지 못하게 만든다. 간신히 나온다 하더라도 소파에 앉아 멍 때리기 일쑤다. 현관문이 코앞인데도 밖으로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이럴 경우 의사의 처방에 따라 항우울제를 꼬박꼬박 먹어야 한다.
---「우울증을 앓는 여성들」중에서
우울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생활 습관을 가져야 한다. 충분히 잔다.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햇볕을 쬔다. 하루에 최소한 30분 이상은 산책을 한다. 햇빛에는 자연적인 행복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이 있다. 세로토닌은 밤이 되면 멜라토닌으로 바뀌어서 꿀잠을 자게 만든다. 그리고 평소보다 많이 웃고, 많이 운다. 많이 용서하고, 건강한 화를 낸다. 사실 건강한 화를 내는 것은 연습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법에 저촉되지 않고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산다.
---「우울증의 종류와 여러 증상들」중에서
“살려고 왔어요. 자의 입원을 하려고요.”
“잘 왔어요.”
“말할 기운도, 아니 숨 쉴 기운도 없어요. 모든 에너지가 다 빠져나갔어요. 새벽마다 자살하고 싶었어요.”
“잘 왔어요.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어요. 살 수 있어요. 늘 그랬듯 나를 믿어요.”
“제가 이 병원에 몇 번 입원했죠?”
“아마 아홉 번? 이번까지 포함해서요.”
의사가 차트를 보더니 대답한다. 벌써 아홉 번째라니……. 다른 병원에서의 입원까지 합하면 열한 번……. 이번으로 끝내야 한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중에서
입원한 뒤에도 일기 쓰기를 계속한다. 친구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그들과 나와의 관계도 쓰고, 병의 상태도 기록한다. 하루에 지출한 돈도 적어둔다. 잊고자 하는 머리와 잊지 않고자 하는 의지의 싸움이 치열하다. 정 쓰는 게 힘들면 연도와 날짜만 적고 넘어간다. 지금 내게 중요한 것은 ‘매일’ 쓰는 것이다. (…) 병원에서 나는 ‘매일’ 일기를 쓰기 위해 사라지는 기억과 탈진한 몸뚱이와 무기력한 정신에 맞서 피 터지게 싸운다. 어떡하든 열정을 끌어올려보려고……. ‘매일’ 뭔가를 ‘쓰다’ 보면 어쩌면 집 나간 열정이 돌아올지도 모르니까.
---「일기 쓰기」중에서
“밤낮으로 수면제를 먹으니까 머릿속이 회색 안개로 꽉 차 있는 것 같아요.”
“걱정 말아요. 곧 수면제 양을 줄일 거고, 회색 안개가 걷히면 뇌가 정상적으로 작동해서 글을 쓸 수 있을 거예요.”
“13년 동안 딱 두 사람 만났어요. 가족 빼고 딱 두 사람요.”
“입원해 있는 동안 친구를 사귀어보세요. 조증환자와 친구가 되면 지겹도록 많은 말을 들을 수 있을 거예요. 우울증은 아닌데 두 달 넘게 중환자실에 있던 젊은 여자분은 어때요?
성격이 좋아요. 그 환자분하고 친구가 돼보세요.”
“무슨 병이죠?”
“그건 말씀드릴 수가 없어요. 환자의 비밀을 지키는 게 정신과 의사의 첫 번째 철칙이에요.”
---「열정이 필요해요」중에서
“저는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않도록 들었지만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몰랐어요. 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자신을 미워하지 않는 것, 자신을 괴롭히지 않는 것이라고. 두 눈이 번쩍 뜨였어요.”
---「에필로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