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한양도성을 답사한 분들은 누구나 느꼈겠지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한양도성을 찾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주중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한양도성 구석구석을 누비는 마니아층이 있는가 하면 친구, 연인, 가족 단위 방문객까지 한양도성의 숨결을 느끼고자 발길을 재촉하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다. 한양도성의 세계유산 등재 열풍도 한 몫을 하였을 테고, 금단의 땅이나 다름없었던 청와대와 그 뒷길이 수십 년 만에 개방된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600년 넘게 변함없이 서울을 감싸 흐르는 한양도성의 소중함을 알고 찾는 분들이 많아졌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이 한양도성을 오르며 그것이 품고 있는 역사와 문화의 정취를 만끽하길 권해 본다.
---「저자의 글 “한양도성과 함께 글쓰기의 문을 열며」중에서
6구간으로 구성된 한양도성에서 백악구간이 차지하는 의미는 남다르다. 한양도성을 쌓을 때 공사구간을 97개로 나누고 각 구간의 이름을 천자문 순서에 따라 천(天)에서 조(弔)까지 붙였는데, 백악구간의 이름이 바로 ‘천’이었다. 성벽 축조공사가 바로 여기서 시작되었다는 얘기다. 백악마루는 경복궁의 진산인 백악산에서 가장 높은 곳이기 때문에 이 지점부터 시계방향으로 한 바퀴를 돌아 18.6킬로미터라는 거대한 도성이 들어선 것이다.
---「2장 “백악마루에서 한양을 눈에 담다」중에서
오늘날 한양도성 순성을 하는 사람들은 운동이나 역사문화 탐방을 염두에 두고 길을 나서지만, 조선시대 사람들은 성 내외의 꽃과 버들을 보며 풍류를 즐겼다. 원래 순성은 조선 초기에 왕명으로 도성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시작되었지만, 실제적인 위협이 크지 않았기 때문에 산과 골짜기의 풍경을 감상하듯 걸으며 순성하게 되었다. 새 소리를 반주삼아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꽃내음을 맡으며 잠시 명상에 잠기거나 지친 몸을 맡기는 유유자적한 순성이 이루어진 것이다.
---「7장 “한양도성을 한달음에 돌아보는 순성놀이」중에서
그렇다면 한양도성은 어떠한가? 백악산·낙산·목멱산·인왕산이라는 네 개의 산을 연결하여 쌓은탓에 도성을 방형으로 건설하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사방의 산을 연결하다 보니 전체적으로는 방형에 가까운 형태를 띠고 있었지만, 중국과 달리 자연지형을 그대로 이용한 탓에 다소 불규칙한 모습을 띨 수밖에 없었다. 또한 각 변의 지형적 특징을 반영하여 백성들이 지나다니기 수월하도록 문을 세우다 보니, 자연스레 고갯길 위주로 문이 만들어졌다. 문의 개수 또한 사방에 대문 한개와 소문 한 개씩 총 여덟 개의 문을 두게 되었는데, 이 역시 중국과는 다른 한양도성만의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12장 “역사가 들려주는 한양도성의 이력서」중에서
1927년 일제는 조선박람회장 입구로 사용하기 위해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을 건춘문(建春門) 북편으로 옮겼는데, 그렇게 강제로 옮겨진 광화문은 1968년에야 이건되기 전의 위치로 되돌아오게 된다. 그런데 당시만 해도 남아 있던 조선총독부 건물 앞쪽의 광화문을 복원한 결과, 이상하게도 경복궁의 축에서 동남향으로 5.8도 틀어진 위치에 자리를 잡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의발굴조사 결과, 당시 복원된 광화문은 경복궁의 기본축에서 동남향으로 3.75도 틀어졌던 것으로 밝혀졌다. 5.8도이건 3.75도이건 간에 광화문의 위치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틀어지게 된 것은 일제의 의도적인 왜곡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광화문을 헐고 조선총독부와 남산의 조선신궁을 마주보게 하면, 우리나라의 민족정기를 확실히 끊어버리고 영원히 식민지로 삼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만약 발굴조사를 실시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일제가 왜곡한 축에 따라 광화문을 복원하고는 뿌듯해 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상상만 해도 치가 떨리는 대목이다.
---「14장 “남주작 남산의 뒤바뀐 운명」중에서
일제가 한양도성을 무자비하게 훼손한 뒤 그 자리에 세운 조선신궁의 핵심건물도 발견되어 일제의 천인공노할 만행의 증거를 확인시켜 주었다. 결과적으로 남산 회현자락 발굴현장은 한양도성의 잃어버린 고리를 연결하는 중요한 학술자료가 될 것이며, 우리의 어두운 역사를 되돌아보게 하는 뼈아픈 교훈의 현장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아울러 이러한 모든 자료들은 향후 남산 일대를 포함한 한양도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데 필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16장 “유적의 두 얼굴, 보존과 활용」중에서
한양도성의 상당 부분이 원래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라 할 만하나, 복원 및 정비 방법에 있어서는 여전히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알다시피 문화재 복원과 정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원형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다. 불필요한 복원과 과도한 정비가 화근이 되어 한양도 성의 진정성을 훼손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월암근린공원 부지 외에도 청계천 복원사업 과정에서 광통교·오간수문터 등이 있는 그대로 복원되지 못했고, DDP 공사현장에서 발굴된 이간수문과 성벽 및 치성의 복원정비 방식도 원형보존의 관점에서 볼 때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23장 “우백호 인왕산이 품은 도성과 명승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