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본 500만 원에서 내 재산 120억 원이 되기까지”
나의 성공 공식은 너무나 단순하고 투명하다.
일체의 가식이나 과장, 거품이 없다. 결혼하면서 직장을 잃고 나서 내 자본 500만 원으로 한 평짜리 화장품 가게로 시작했지만, 워낙 작은 규모여서 먹고는 살아도 돈을 모으기는 어려웠다. 과감히 변신을 모색했다. 마침, 여동생이 화장품 가게를 하고 싶다고 해서 나는 미련 없이 그 가게를 거저 넘겼다. 나만 고생하면 되었지, 여동생까지 내가 한 고생을 되풀이하게 할 수는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잘 되는데 왜 그냥 넘기느냐? 너무 아깝지 않느냐?’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나는 평소의 소신대로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래서 1992년에 수유리‘가든타워’ 11층 10평짜리 가게로 옮기면서 천만 원의 빚을 얻어야 했다. 오피스텔이라서 인테리어 비용은 들지 않았다. 그저 커튼을 치는 정도로 만족했다. 세탁기, 냉장고 같은 기본설비는 물론이고, 슬리퍼마저 구입할 형편이 못됐다. 나중에 약간의 여유가 생겨 슬리퍼를 장만하자, 다들“김원장, 그 동안 부자 됐네.”라며 함께 기뻐할 정도였다.
‘가든타워’11층에서 빚 천만 원으로 피부 관리실‘난(蘭) 코스메틱’을 시작할 때, 내가 가진 돈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니 2011년에 개인소득세 3억 원을 신고한 것과 비교해 보았을 때, 10여 년간의 변화는 고사성어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로 변했다는 상전벽해(桑田碧海)를 실감나게 할 정도이다. 수유리 ‘가든타워’에서도 수차례 이전하면서 확장과 축소(11층 10평 → 11층 50평 → 2층 240평 → 19층 40평 → 19층 50평)를 반복했지만, 그래도 폐업까지는 이르지 않고 10여 년을 잘도 버텼다. 그 과정에서 쓰디쓴 실패도 경험했고, 달콤한 성공도 맛보았다. 나에게 수유리‘가든타워’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유난히도 사연이 많았던 곳이다.
나의 비즈니스우먼 시대는 명확히 둘로 나눌 수 있다. 결혼하면서 시작한 난코스메틱 운영이 2004년까지였고, 그 후는 백 퍼센트 약손명가와 함께 걷고 뛰고 달렸던 시기였다. 그래서 2004년 이전의 이야기는 순수하면서도 억척스럽게 살아왔던 내용들뿐이다. 약손명가를 만난 2004년, 그 출발은 모험이자 투기였다. 그러나 1년 뒤, 그 모험은 약속이 되고, 투기는 신화가 되었다. 1991년부터 2011년까지 내가 낸 소득세만 해도 총 27억 원이며, 그 중에서도 2011년 한 해의 소득세 납부액만 3억 원이었다. 2012년 첫눈이 내리던 날, 문득 나 자신을 돌아보니 80평 아파트에서 행복하고 안정적인 가정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내 통장에는 저축한 돈이 2억, 적금으로 모은 돈이 10억 원이나 들어 있었다. 2009년, 48억에 매입 했던 서울 강남요지의 독립건물(지하2층, 지상 5층)은 현 시세로 무려 75억을 호가한다. 당시 평가액은 60억이었는데, 융자 24억에 내 돈 24억을 합쳐 급매로 나왔던 물건을 싸게 매입한 것이다.
나는 이제 ‘자본금 5백만 원으로 120억 원의 자산을 만들어 드디어 성공 신화를 이루었다.’고 누구에게나 당당히 말할 수 있다. 수유리 ‘가든타워’만 놓고 보면, 빚 천만 원을 가지고 12년 만에 120억 원을 번 셈이다.
성공신화를 이루기까지 행운은 있었지만 공짜는 없었다. 땀방울은 있었지만 선물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어머니로부터 배운 인생살이, 세상살이 지침들만은 항상 큰 힘이 되었다. 그리고 소녀시절부터 내가 체득하여 체질화시킨 여러 특질들이 지금의 ‘김현숙 표 마케팅 전략’이 되었으며, 내 소신이 곧 ‘난(蘭) 코스메틱’의 사훈(社訓)이 되었다.
8년 전, 약손명가를 시작할 때도 한 평짜리 가게와 수유리‘가든타워’에서 쌓은 연륜, ‘난 코스메틱’의 운영 경험이 큰 밑거름이 되었다. ‘책임이 제일 중요하다.’ ‘약속이 가장 중요하다.’는 나의 원칙이 약손명가의 ‘고객과의 약속 제도’를 가능하게 했다.
‘내가 한 희생, 내가 겪은 고통은 나 한 사람으로 충분하며, 다른 이들에게는 절대로 같은 희생, 같은 고생을 짐 지울 수 없다.’는 생각이, 약손 명가에서 열심히 일하면 적어도 10년 안에는 한 샵의 지점을 본인의 이름으로 운영하여 수익금을 가져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 ‘뭐든 배워야 한다. 배운 것은 빼앗을 수도 없고 뺏기지도 않는다. 모든 좋은 것은 백 퍼센트 배움에서 나온다.’는 확신에서 약손명가의 철저한 교육제일주의가 뿌리 내렸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투명해야 불평불만이 없다. 좋은 일은 무조건 공평하게 나누고 나쁜 일은 무조건 나를 비롯한 책임자가다 떠맡아야 한다.’는 신념에서 약손명가의 직원제일주의가 탄생했고, 약손명가의 일정한 분배원칙이 둥지를 틀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늘 어머니가 하시던‘돈을 쓰면 쓴 만큼 배우고 얻는 것이 있다.’는 말씀을 나는 항상 가슴에 품고 살아왔다. 그 말씀이 ‘난(蘭) 코스메틱’시절에 부화가 되어 약손명가의 특별한 인센티브 전략으로 탄생한 것이다. 6년여 근무한 직원들에게 실력만 있으면 샵을 차려 주고 그 후 갚아 나가게 만들었다. 직원을 자식처럼 여긴다는 뜻이다. 이미 남이 아닌데 무엇이 아깝겠는가? 감히 말하건대, 약손명가의 인센티브 전략은 백 퍼센트 직원사랑에서 나온 것이다.
2년 전, 일본의 한 출판사 제안으로『약손명가식 셀프관리』를 출간했다. 지금까지 7만 부 이상 판매되어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아왔다. 그리고 이번엔 내가 살아온 삶의 여정과 지금의 성공을 이루게 된 방법을 담아 두 번째 책을 펴낸다. 내가 책에서 길을 찾고 꿈을 이룬 것처럼, 이 책을 읽는 독자도 자신만의 길을 찾고 꿈을 이루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저자 김현숙
--- 「프롤로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