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어디에서도 그냥 나로는 살지 못하는 것 같아. 누구나 자기가 사는 그 나라에 속할 뿐이야. 나라에 속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고. 나라에 속하지 않은 풀이나 나무도 없어. 더구나 나라에 속하지 않은 땅이 있을까. 백이 숙제도 주나라에서 나는 고사리는 포기했어도 결국 땅만은 포기하지 못했어. 다른 데로 가지 못하고 주나라 땅에서 죽었다고. 어디 가든 땅을 밟지 않고 살 순 없잖아. 땅이 자기 스스로 이리저리 구분하나. 사람이 갈라놓았잖아. 네가 여울이듯, 내가 항아이듯. 그러니 여울아, 여기에 있든 고올리에 있든 다 마찬가지 아닐까. 똑같지 않을까.
---「당신의 태평성대」중에서
“난 한때 문학이나 예술이 세상을 바꾸는 유일한 거라 믿은 적 있어.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문학도 예술도 아니라 바로 나. 내 생각, 내 욕망, 내 의지 같은 것이라는 걸 알게 됐지. 나 아니면 세상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는 걸 말이야. 당연하잖아. 세상은 수많은 ‘나’들로 이루어져 있고, 문학이나 예술은 ‘나’의 행위나 그 결과물 아니겠어.”
---「멀구슬나무꽃」중에서
“무연리는 없어요. 이 세상 어디에도 인연이 없는 곳은 없다구요. 당신이 사람과의 인연을 끊어버리고 어딘가를 향해 간대도 여기 이 길을 따라서 가야 해요. 길은 또 수없이 많은 길로 갈라지고, 길에는 언제나 인연이란 놈이 웅크리고 있거든요.”
---「뻐꾹나리」중에서
“心은 몸속에 있는 것이지, 몸 밖에 있는 것은 애초부터 아니었습니다. 笙 소리를 듣는 순간, 학소지가 내 안에, 바로 내 안 깊숙한 곳에 있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 아니라 내 안에 깊숙이 숨겨진 마음으로 봐야 세상이 보인다는 것도, 부유하지 않는 그 깊은 마음으로 보는 세상이 진정한 세상이라는 것도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결국 몸뚱이는 내가 아니었어요. 단지 세상과 나를 연결해주는 매개체일 뿐…….”
---「중정머리 없는 인간」중에서
“좋은 세상이라…… 니것 내 것이 따로 있다고, 그리서 민주주으니 사회주으니 펜을 갈르는 고런 세상을 너는 좋은 세상이라 허는지 모르겄다만, 글씨다, 애비 생각에는 시방도 충분히 좋은 세상이니라. 가만히 두면 다 제 헐 일을 험서 살어. 고것이 진정으로 좋은 세상 아니겄냐. 세상 것들이 저 혼자 생겨나서 저 혼자 살다가 저 혼자 죽는 것 같어도, 고것들은 모다 그물로 짜여 있니라. 그물을 그물이게 허는 것은 고것들이 제자리에 합당허게 있을 적에야 가능혀…… 너그덜이 설치면 설칠수록 그물만 찢어지제 달버질 것은 아무것도 없어. 한번 찢어진 그물을 다시 엮을라먼…… 세상을 한쪽으로만 볼라고 허지 마라. 요새만치 사팔뜨기가 많은 시절도 드물 것이여. 이 세상에 존재허는 고 어뜬 것도 고것 자체로 유일헐 뿐 아니라 고유허니라. 청도 아니요 홍도 아니요, 가리마맹이로 흑과 백으로 가를 수 있는 것도 아녀. 시방까지 수도 없이 일렀듯기, 수천수만 가지 색깔로 존재허는 고것들을 한 색깔로 물디릴라고 허들 말어. 수천수만 가지 색깔로 존재허는 고것들 각자가 다 도림桃林이란 것을 명심허란 말이다…… 이 세상이 어디 사람 맘대로 조물딱거릴 만치 하찮은 것이드냐.”
---「언 땅 싸라기별들」중에서
허공처럼 살고 싶었다. 천억 개의 별이 모인 우리 은하뿐 아니라 천조 개의 은하를 품은 허공처럼. 안드로메다나 마젤란은하처럼 각각의 은하에 흩어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별을 품은 허공처럼. 태양을 품은 허공. 창백한 푸른 점을 품고, 그 안에 사는 모든 생명을 품은 허공. 그러면서도 은하는 은하로, 별은 별로, 태양은 태양으로 지구는 지구로 보여주는 허공. 산은 산으로 바다는 바다로, 꽃과 나무는 꽃과 나무로, 사람과 짐승도 사람과 짐승 그대로 보여주는 허공. 모든 것을 품어 보여주면서도 자기 자신은 언제나 텅 빈 허공처럼. 그녀는 또 바다처럼 살고 싶었다. 아무리 많은 물이 쏟아져 들어와도 다 받아들이는 바다. 동에서 온 물이든 서에서 온 물이든, 샘물이든 똥물이든 가리지 않고 다 받아들이는 바다. 받아들이면서도 오직 맛은 하나뿐인 바닷물처럼. 짠맛 하나로 엄청난 생명을 키워내는 바다의 물처럼.
---「구경심」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