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합이나 국제통화기금에서 근무하는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BIS에서 일하는 직원(특히 고위직)들 가운데 일부는 사명감으로 직무를 수행한다. 숭고한 목적을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으로 가득 찬 그들은 책임성이나 투명성과 같은 일반적인 관념 따위는 무시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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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은행가들은 자기들이 금융의 대제사장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좋아한다. 말하자면, 그들은 내부집단에서 자기끼리 선택한 소수의 엘리트만이 이해할 수 있는 신비로운 화폐 의식과 금융 의례를 감독하는 전문가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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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S는 설립 첫날부터 중앙은행의 이익을 확대하고 새로운 초국적 금융구조를 세우는 데 전념해 왔다. 그렇게 함으로써 BIS는 글로벌 수준에서 긴밀하게 연결된 기술전문가라는 새로운 계급을 탄생시켰는데, 이 전문가들은 고액 연봉을 받으면서 BIS, 국제통화기금, 여러 나라 중앙은행과 상업은행의 고위직을 넘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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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BIS는 자기의 사명이 세 가지라고 스스로 말한다. 그 세 가지란, “첫째, 화폐와 금융의 안정을 추구하는 중앙은행들을 돕는 것, 둘째, 화폐와 금융 영역에서 국제적인 협력을 촉진하는 것, 셋째, 중앙은행들의 은행으로서 활동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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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S는 세계 최초의 국제 금융기관이자 중앙은행가들의 회담장소가 될 것이다. 중앙은행가들은, 정치인들의 성가신 요구와 귀찮게 캐물으려는 언론인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세계 금융시스템에 꼭 필요한 질서와 협력을 만들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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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먼과 샤흐트는 독일 배상금 문제를 둘러싼 혼란을 교묘히 이용하여 강대국들이 BIS 창설에 참여하도록 수완을 발휘했다. 덜레스 형제는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유럽의 무질서를 이용했으며, 독일로 자금이 다시 흘러갈 수 있도록 금융수단을 구축했다. 이러한 금융수단은 너무 복잡해서 설리번&크롬웰 법률회사 밖의 외부인이 이를 이해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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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흐트와 노먼에게 1930년 1월 20일은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그들은 국내법이든 국제법이든 법의 적용범위 밖에 있는 은행을 만들었다. 그날, 영국, 프랑스, 독일, 벨기에, 이탈리아, 일본, 스위스는 특별한 문서에 서명했다. 헤이그협약에 따라 설립된 BIS는 세계에서 특권이 가장 많고 법적으로 잘 보호받는 은행이다. 오늘날까지 유효한 그 법규들은 BIS가 본질적으로 어떠한 통제도 받지 않는 근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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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스트리트는 히틀러의 부상을 흥분과 걱정으로 지켜보았다. 흥분한 이유는 독일에서 출현한 극단적인 국가주의와 일당제 국가가 마침내 볼셰비키의 망령을 쫓아낸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독일에 있는 월 스트리트의 투자금과 보유자산은 정말 안전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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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스트리트의 이사회나 클럽에는 여전히 약간의 불안감이 있었다. 그것은 유대인들에 대한 박해나 강제수용소 때문이 아니라 나치당이 아직도 위험한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치당의 전체 이름은 독일국가사회주의노동자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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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배상금 지급 종료와 금본위제 붕괴는 오히려 BIS에 호재임이 드러났다. 이를 계기로 BIS는 설립자의 의도에 초점을 맞출 수 있었다. 그 의도란 대규모 자본이동을 보장하고 정치인과 정부의 통제에서 자유로운 새로운 초국적인 금융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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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샤흐트)의 제국은행은 독일 유대인의 재산을 약탈하기 위한 나치의 가장 중요한 도구였다. 크리스탈 나흐트 이후 나치는 독일 유대인들에게 10억 라이히마르크의 벌금을 부과하여 네 번에 걸쳐 나누어 낼 것을 강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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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젤에 모인 중앙은행가들은 이상주의와 거리가 멀었지만 한 가지 바람은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국제자본의 자유로운 흐름을 촉진하기 위해 서로 협력하기를 바랐다. 중앙은행가들은 경제적 안정, 낮은 인플레이션, 글로벌 자유무역을 추구하면 세계인의 공통 목표인 정치적 안정과 실업률의 통제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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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책임한 금융가 집단에 그런 자신감을 심어준 것은 특이한 오만함이 었다. 금융가 집단은 교묘한 술책으로 누구도 손댈 수 없고 어떤 정부도 간섭할 수 없는 자기들만의 은행(BIS)을 구축하고 나서, 자기의 존재가 나머지 인류에게 뭔가 미덕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 p.102
노먼의 우선순위는 조국의 최대 이익이라기보다는 그가 사랑하는 BIS의 독립이었다. 노먼은 독일군 탱크에 포탄이 장착되는 동안에도 은행가들의 일은 여전히 평상시와 다름없이 흘러갈 것이라고 믿었다. 아무것도 은행가들의 신성한 중립성과 상대방에 대한 신사적인 신뢰를 방해할 수 없을 것이며, 이것은 심지어 이제는 악을 분명하게 드러내 보이고 있는 정권과 한판 승부가 다가오고 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 p.111
전쟁이 터지자 BIS 관리자들은 실존적 선택과 마주쳤다. 세 가지 길이 있었는데, 첫째, 은행을 청산하는 길, 둘째, 적대행위가 끝날 때까지 규모를 축소하고 활동을 최소화하는 길, 셋째, ‘중립’ 정책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가능한 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길이 그것이다. 이사들은 만장일치였다. 그들은 초국적 자본의 필요에 따라야 한다는 것과, 무엇보다 BIS가 전후 금융재건을 돕기 위해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이미 하고 있었다.
--- p.129
BIS의 중립 선언은 금세 쓸모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맥키트릭과 은행 경영진은 BIS를 제국은행의 사실상의 하위조직으로 만들었다. 이는 타성, 수동성 또는 관료적 게으름의 결과가 아니었다. 그것은 일련의 의도적인 정책 결정에서 비롯했다.
--- p.130
이들(대기업들)은 1933년에 히틀러가 권력을 잡은 이후에도, 그리고 1939년에 전쟁이 일어난 이후에는 더욱 확실하게, 독일 연계를 통해 지속적으로 거대한 이익을 얻었다. ... 나치 연계를 통해 이익을 얻은 가장 강력한 세 부문은 석유, 자동차, 그리고 은행이었다.
--- p.156
화이트는 BIS를 ‘낮게 평가’했고 전후 유럽의 재건을 위한 계획과 관련하여 BIS가 “중요성을 갖지 않는다”고 말했다. 화이트는, 독일이 BIS를 대우해 준 이유는 BIS를 이용해서 “금융 권력을 되찾으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p.182
BIS는 덜레스, 맥클로이와 같은 미국 정책 수립자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 이 때문에 BIS는, 워싱턴으로 하여금 새롭게 통합된 유럽을 만드는 것이 자기 책임이라는 사실을 일찍 이해하도록 할 수 있었다.
--- p.212
1948년부터 1980년 사이에, 국가은행, 각 주의 중앙은행, 연방은행(국가은행의 승계 조직)의 집행·관리이사회 임원의 39%는 과거 나치당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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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석탄철강공동체는 석탄과 철강 시장을 규제했는데, 이는 이 공동체가 회원국에 대한 규제 권한을 가진 초국적인 기관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유럽석탄철강공동체의 설계자이자 총재인 장 모네는 새로운 이 기관을 국민국가라는 낡은 관념을 초월하는 조직으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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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는 1919년 파리평화회의에서 덜레스를 만났고, 두 사람은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그들은 비슷한 엘리트주의 세계관, 민주적 책임성에 대한 무시, 그리고 돈벌이에 대한 열정을 공유했다.
--- p.238
BIS는 세계의 여러 정부에게 엄격한 정책 처방을 내리기 시작했다. 야콥센은 여전히 물가 상승의 폐해에 대해 큰 소리로 떠들고 있었다. ... 선출된 권력도 아니고 설명책임도 없으며 비밀로 가득한 금융기관(BIS)이 민주 정부에 대한 정책 처방을 내리고 있었다.
--- p.247
독일계 유대인 작가이자 철학자인 한나 아렌트는 홀로코스트를 조직한 관료들을 책상물림 살인자들이라고 묘사했다. 그들은 죽음 구덩이 위에 서 있는 벌거벗은 희생자들에게 총을 겨누거나 가스를 방출하기 위해 손잡이를 당기지는 않았다. 그들은 그저 도장을 찍고, 종이 조각을 한 정부 부처에서 다른 부처로 옮기고, 돈을 계속 돌게 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들 없이는 제3제국은 기능할 수 없었다.
--- p.256
그해 말에 이르러 소비에트 블록 전체가 무너졌다. 이러한 사태의 전개 과정에서 BIS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BIS의 연결 융자는 헝가리 개혁가들에 대한 국제적인 신뢰를 높여주었고, 이는 국내에서 그들의 정치적 입지 강화로 이어졌다.
--- p.284
유럽중앙은행은 일차적인 임무를 물가안정을 확보하는 것과 모든 정치적 압력 에서 벗어나는 것에 둘 것이다.
--- p.295
1994년 연준이사회는 마침내 자기들에게 할당된 지분을 인수하여 BIS에 가입하고 이사회에 두 명의 이사(연준 의장과 뉴욕연준 총재)를 임명했다.
--- p.312
금융정책, 통화정책에 대한 기술적인 결정이 국민국가를 넘어서는 초국가를 도입하는 데에 은밀하게, 그것도 종종 BIS를 통해서, 이용되어 왔다는 것이다. 단일통화가 안고 있는 모순에 대한 경고는 무시되었다.
--- p.318
유럽중앙은행은 국제법,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유럽연합을 설립하기 위해 체결한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따라 보호를 받는다. 이것은 부분적으로 유럽중앙은행이 통화기관임과 동시에 항상 정치적인 기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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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적완화로 알려진 자산 매입은 시중은행 대차대조표의 자산·부채 규모를 팽창시킬 것이고, 유동성을 증가시킬 것이며, 대출 확대를 부추길 것이다. 이는 결국 소비지출, 경제성장, 일자리 창출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동시에 미국, 영국, 일본, 유럽중앙은행은 초저금리의 느슨한 통화정책을 펴고 있다. 이는, 이와 같은 통화정책을 펴는 나라에서 단기 투기자금을 만들어 내는데, 이 자금은 더 나은 수익을 추구하면서 전 세계로 흘러나간다. 단기 투기자금은 그 자금이 유입된 나라에서 자산 거품을 일으키고 환율을 왜곡하여 말레이시아 링기트와 한국의 원화와 같은 통화를 더 비싸게 만들어 이들 국가의 수출에 영향을 미친다.
--- p.334
BIS는 수십 년을 거치면서 생존해왔다. BIS는 불투명성과 비밀주의에 의해, 그리고 법적 면책특권의 보호막 뒤에 숨는 방법에 의해 그 본질을 유지해 왔다. 기술관료들은, 엘리트 의식이 강한 소수가 일반인들에게 설명책임을 질 필요 없이 글로벌 금융을 관리해야 한다고 믿는다. BIS에 대한 보호는 이러한 믿음을 영구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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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S의 자산은 불가침의 영역으로 남아 있겠지만, 더 많은 활동가들이 글로벌 금융시스템에서 BIS가 수행하는 역할, BIS의 비밀주의와 엘리트주의를 이해함에 따라, 그들은 BIS의 운영, 역할, 그리고 존재의 필요성에 대해 점점 더 의문을 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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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와 자본이 매우 빠르게 흐르는 시대에, 시민들이 자기 삶을 지배하는 힘 있는 기관들에게 더 많은 투명성과 책임성을 요구하는 시대에, 월 스트리트조차 몇 주 동안 점령될 수 있는 시대에, 바젤탑은 더 이상 불가침의 영역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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