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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번의 계절을 지나

열한 번의 계절을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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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11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248쪽 | 282g | 128*188*20mm
ISBN13 9791192579276
ISBN10 1192579275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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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작용에 관해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렇다. 능력을 사용하면 되감은 시간의 다섯 배에 해당하는 수명이 줄어든다. 예를 들어 1분의 시간을 되감으면 5분이, 1년이란 시간을 되감으면 5년의 수명이 줄어든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되감은 시간만큼 나이가 원래대로 되돌아가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스무 살인 상황에서 남은 수명이 60년이라고 할 경우, 시간을 10년 되감으면 50년의 수명이 줄어들고 그 결과 되돌아간 시점부터 10년밖에 못 산다는 뜻이다.
“그렇구나.”
내용을 이해한 나는 수긍했다. 그건 부작용이라기보다는 위험이나 대가라고 부르는 게 더 정확했다. 시간을 되감는다고 하는, 인생마저 바꿀 만한 능력에 비하는 균형감이라고 생각한다.
--- pp.36~37

미노리의 생명은 고작 25년에서 끝이 났다. 그러나 그녀는 오래오래 살아서 더욱 다양한 것을 보고 들으며 체험해야 했다. 내가 그녀를 더욱 행복하게 해줘야 했다. 이토록
불합리한 운명을 나는 강하게 저주했다.
미노리의 장례식이 시작되기 전부터 줄곧 생각하던 것이 있다. 나는 특별한 능력을 지녔다. 그것을 사용하면 미노리를 살릴 수 있다. 그 특별한 능력은 분명 이때를 위해 주어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능력에는 상당히 위험한 부작용이 따른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아니, 이미 마음속으로는 갈 길을 결정했다. 나머지는 각오의 문제였다. 미노리의 행복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나는…….
--- p.49

마지막으로 유야와 손을 잡은 게 언제였더라? 분명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을 텐데, 구체적인 날짜는 기억이 안 난다. 그때는 아직 손을 잡는 행위가 친한 사이임을 보여주는 차원에 지나지 않았다. 중학생이란 잡은 손에 다른 의미를 찾아내기 시작하는 나이다.
수업이 시작되기 직전. 보건실을 향해 인기척이 없는 복도를 걸어간다. 어느새 남자답게 커진 유야의 오른손이 미노리의 왼쪽 손목을 감싸고 있다. 손에 힘이 들어가 있는지 손목이 조금 아팠다. 미노리가 아프다고 하면 유야는 아마도 손을 놓아줄 것이다. 하지만 미노리는 말하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대로 계속 잡아주길 바랐다.
까치집이 지어진 뒤통수와 예전보다 커진 등을 시야에 담으며 미노리는 유야가 손을 놓지 않았으면 하는 이유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답이 나오지 않는다. 빨라지는 심장 소리를 들키지 않으려 미노리는 잠자코 유야의 등 뒤를 따라갔다.
--- p.65

사무적인 대화를 제외하면 유야와 말을 섞은 일 자체가 오랜만이었다. 유야와는 매일 같이 놀던 초등학생 때보다 사이가 소원해져 있었다. 심지어 유야가 자신을 피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우연히 등교 시간이 겹쳐도 짧은 인사 정도만 나눌 뿐 유야는 미노리를 아랑곳하지 않고 먼저 걸어가버린다. 그랬던 애가 강경하게 미노리를 보건실로 끌고 간 것도 의문이었다. 유야에게 붙잡혔던 손목으로 시선을 떨어뜨린다. 유야의 손의 감촉이 느껴져 얼굴이 달아올랐다. 정말로 몸이 아프긴 했어도 분명 겉으로 티 내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명백히 힘들어 보였다면 무리하지 말라거나 쉬라는 말 정도는 했겠지. 중학교에 올라간 뒤로 멀어진 두 사람의 관계와 오늘 보인 유야의 태도가 좀처럼 연결이 되지 않아 의아한 느낌만 든다.
--- p.69

“새해를 맞이한다는 거, 단순히 시간의 흐름이 그 순간을 지나갈 뿐인데 너무 야단법석이야. 대체 왜 다들 축하하지 못해서 안달인 분위기지?”
옆에서 걸어가는 유야가 말했다. 자신이 가자고 해놓고 새해맞이 신사 참배를 부정하는 듯한 의견. 그래도 단지 의문이 든 것을 표현했을 뿐 딱히 악의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건 그렇지만, 1년이라는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시간을 발견하고서 방대한 시간의 흐름을 단락 지은 거잖아. 자연적인 현상에서 의미를 찾아낸다는 거, 굉장하지 않아? 그런 생물은 이 세상에서 인간이 유일할 거야.”
미노리도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말한다.
“뭐, 그렇게 말한다면야.”
수긍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분 나빠 보이는 것도 아닌 얼굴로 비스듬히 위를 쳐다보며 유야가 대답했다.
“유야는 신의 존재를 믿어?”
--- pp.79~80

두 사람은 잠시 말없이 불꽃을 바라보았다. 형형색색의 큰 꽃송이가 밤하늘에 만발했다가 사라져간다. 평생 맛볼 여름을 다 맛본 듯한 느낌이다. 대략 20분 정도 진행된 불꽃놀이가 끝났다. 미노리의 가슴에 애처로움이 차오른다. 불꽃을 제작하는 과정이 엄청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많은 시간을 들여 준비해둔 것이 고작 몇 시간 만에 역할을 끝내버린다. 그런 허무함도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데 한몫하고 있는 게 아닐까.
“자, 이제 갈까.”
유야가 입을 열었다.
“응.”
그 말에 안도하며 미노리는 고개를 끄덕인다.
둘뿐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부터 어렴풋이 두려움을 느꼈다. ‘옆집에 사는 소꿉친구’라는, 지금껏 이어온 그저 그런 둘의 관계를 바꿔버릴 만한 일이 오늘 일어나지 않을까. 그런 예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 pp.142~143

“미노리…….”
심장이 터질 것 같다. 살면서 느껴본 적 없는 무언가가 몸 안을 돌아다닌다. 눈물이 나올 것 같다. 유야가 이름을 불러주었다. 초등학생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하지만 어릴 때와는 다른 감정이 이름을 부르는 그 목소리에서 선명히 느껴졌다. 연인의 얼굴이 다가온다. 분명 어릴 때부터 봐온 익숙한 얼굴인데도 심장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뛰었다.
입술과 입술이 닿기 직전, 미노리는 눈을 감았다.
“코코아와 커피 맛이 나.”
무뚝뚝한 표정으로 유야가 말한다. 그게 유야가 쑥스러움을 감추기 위해 짓는 표정임을 알고 있었다.
--- p.162

“이상하긴, 아냐.”
그렇게 대답하는 목소리도 꼭 뭔가를 숨기려는 사람 같아서 미노리는 더욱 불안해졌다. 다른 여자를 좋아하게 된 걸까. 그런 최악의 억측도 했지만 유야에게서 느껴지는 위화감은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유야는 절대로 자신을 배신하지 않을 사람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유야가 뭔가를 숨기고 있는 건 틀림없어 보였다. 미노리의 불안은 깊어져만 갔다. 지금보다 훨씬 앞을 보고 있는 듯했고, 어쩌지 못하는 무언가를 받아들이려고 하는 느낌이었다. 그래. 그 모습은 마치 자신이 곧 사라질 것을 미리 알고
있는 사람 같았다.
---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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