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4(선조 27)년에 태어나 1665(현종 6)년에 세상을 떠났다.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승경(昇卿), 호는 태호(太湖)이다. 경전과 자사(子史)를 비롯해 각 분야에 두루 능통한 당대의 석학이었다. 실학자인 반계 유형원(柳馨遠)의 외삼촌이자 스승이고, 성호 이익(李瀷)의 당숙이기도 하다. 때문에 성호학(星湖學)의 학문적 연원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이다. 문과 급제 후 1632년 사간원 정언을 시작으로 홍문관 수찬과 교리 등의 청직을 역임하고, 외직으로는 평안도 도사, 순천 부사 등을 지냈다. 1639년 성절동지사(聖節冬至使)의 서장관 자격으로 심양에 갔고, 동궁 필선의 직책으로 심양에 머물며 소현세자를 시종하였다. 이후 1644년 동래 부사로 부임하였고, 1647년부터 승지를 지냈는데, 1648년에는 전라도 함열로 잠시 유배 가기도 하였다. 1649년 강원 감사에 제수되고, 1651년 제주 목사에 임명되었다. 제주 목사 재임 시절인 1653년 하멜 일행이 제주도에 표착(漂着)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이를 잘 처리하였다. 또한 제주도 최초의 읍지인 『탐라지』를 편찬하였다. 1654년 형조 참의에 임명되었으나 당국자의 배척과 병환 때문에 치사(致仕)하고 미호에 은거하였다. 이후 여러 차례 조
정의 부름을 받았지만 모두 응하지 않고, 1656년 잠시 삼척 부사를 맡았을 뿐 더 이상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 1665년 72세의 나이로 운명하기까지 미호에서 은둔하며 여생을 마친 듯하다. 『태호시고』에 실린 시편들 가운데 자연 경물을 노래한 것들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들 작품의 수준 또한 상당히 높다. 이는 문학적 감성을 지닌 태호의 시인적 면모를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태호는 박학다식한 학자일 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우성 / 대한민국학술원 회원, 성균관대 명예교수
김세호 / 성균관대 한문학과 박사과정수료
김영진 /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김용태 /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김종민 / 성균관대 한문학과 박사과정수료
서경희 / 성균관대 학부대학 강사
손혜리 /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학술연구교수
신익철 /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문학부 교수
윤세순 / 한국학중앙연구원 전통한국학연구센터 전임연구원
이라나 / 성균관대 동아시아학과 박사과정수료
이성민 /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수석연구원
이현우 / 성균관대 인문학연구원 수석연구원
전수경 /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연구원
하정원 / 성균관대 한문학과 박사과정수료
한영규 /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이헌창 /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임부연 / 서울대 종교학과 강사
전성건 /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
함영대 /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책임연구원
실학사상의 계승 발전을 위해 설립된 공익 재단법인이다. 다양한 학술 연구와 지원 사업, 출판 및 교육 사업 등을 수행하며, 실학사상의 전파와 교류를 위해 힘쓰고 있다. 1990년부터 벽사 이우성 선생이 운영하던 ‘실시학사’가 그 모태로, 2010년 모하 이헌조 선생의 사재 출연으로 공익 법인으로 전환되었다.
경학 관계 저술을 강독 번역하는 ‘경학연구회’와 한국 한문학 고전을 강독 번역하는 ‘고전문학연구회’라는 두 연구회를 두고 있으며, 꾸준하게 실학 관련 공동연구 과제를 지정하여 그에 맞는 연구자들을 선정?지원함으로써 우수한 실학 연구자를 육성하고 연구 결과물을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이번에 상재하는 ‘실시학사 실학번역총서’도 그의 소산이다. 앞으로 아직 세상에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실학자들의 문헌을 선별해 오늘날의 언어로 옮기며, 실학의 현재적 의미를 확인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