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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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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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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2년 12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240쪽 | 256g | 128*188*14mm
ISBN13 9791197998553
ISBN10 1197998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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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한테 지기 싫어하고 교만한 ○씨가 이즈음 한 큰 타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외다. ○씨가 매일 ○○은행으로 다닐 때에 그의 맞은편에서 오는 어떤 사람의 얼굴이 보기 싫어서외다. 그 ‘어떤 사람’은 코를 잔뜩 하늘로 쳐들고 ‘이 세상에 나밖에 사람이 어디 있어’ 하는 듯이 뚜거덕뚜거덕 걸어옵니다. ○씨는 그 사람을 만날 때마다 늘 목이 저절로 어깨로 수그러들어 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개자식!”
그 일이 생각날 때마다 ○씨는 스스로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나 분한 마음은 삭지를 않았습니다.
하루 아침은 ○씨는 오늘은 꼭 그 자식을 흘겨 꺼꾸러뜨리리라 마음을 굳게 먹었습니다.
‘어떻게 하나?’
그는 조반을 먹은 뒤에 시간을 맞추어가지고 길을 나섰습니다. 어디 보자. 그는 마음을 결박해가지고, 늘 그 모르는 사람과 만나게 되는 곳까지 걸어갔습니다. 즉 그 사람은 저편 모퉁이에서 ○씨의 편으로 천천히 걸어왔습니다. 역시 그 사람의 코는 하늘로 향하였습니다. 입에서는 담배의 연기가 가장 자기 주인을 경배하는 듯이 너울너울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씨도 힘을 다하여 눈을 흘겼습니다. 충혈된 그의 눈은 아프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씨의 눈 같은 것은 이 세상에 그 존재의 여부조차 모른다는 듯이 태연히 걸어갔습니다.
‘또 모욕당했다.’
---「O씨」중에서

“미안합니다. 잠깐 속였습니다.”
“속여?”
“네. 그…… 영업상 거짓말을 조금 했습니다.”
”거짓말을 해?”
“네. 용서해주십시오.”
이전에 차에서 사기꾼을 잡은 일이 있었다. 내 뒷주머니에 사람의 촉감을 느끼고 빨리 그리로 손을 돌리매, 웬 사람의 손이 하나 붙잡혔다. 그때 그 손의 주인이 애원하는 듯이 나를 쳐다보는 눈을 보고 나도 말없이 눈으로 한번 꾸짖은 뒤에 슬쩍 놓아주었다.
오래 잡기를 벼르던 인물이로되 급기야 잡고 그의 애원을 들으매 경찰까지 끌고 갈 용기가 안 생겼다.
그래서 나는 몇 마디 설유를 하였다. 영업상 값을 속이는 것은 혹은 용서할 수가 있으되, 부리의 행세를 하면서 부녀자나 무식한 사람들만 있는 데를 골라 다니며 억지로 팔아먹는 것은 용서하지 못할 일이니, 이 뒤에는 아예 그런 행사는 하지 말라고…….
그날 밤, 아내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잡는 맛이 여간이 아니외다. 잡는 맛이 그만하다면 또 한 번 속아 보았으면…….”
---「사기사」중에서

이즈음 충분히 자지 못하고 맛있게 먹지 못하고 고민으로 날을 보내어 무한 몸이 약해진데다가, 어젯밤에 한잠을 못 이루고 오늘 또 그 사람과 먼지 틈을 꿰이고 온 금패는, 사실 그네 뛸 용기가 없었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힘없이 그넷줄을 바라보았다. 줄에는 쌍그네 뛰던 홍련이와 산월이는 벌써 내리고 새 계집애가 올라가서 한창 뛰고 있었다. 뒤로 거반 땅과 평행으로까지 올랐다가는 ‘쉬―’ 하는 소리와 함께 너울너울 나비와 같이 펄럭이며 앞으로 솟아오르고 그럴 때마다 소나무는 그루까지 부러질 듯이 흔들린다. 가지는 우적우적하였다. 그러고 만약 그 가지가 한번 부러만지는 지경이면 그넷줄 위에서 즐겨하던 그 계집애는 당장에 송장으로 변할 것이었다.
이것을 보는 때에 금패는 어제 청류벽 위에서 떨어져 죽은 계집애를 생각하였다. 하루살이와 같다. 이슬과 같다. 실낱같다. 또는 봄 꿈과 같다. 예부터 인생이란 것을 폄한 여러 가지의 경구가 있었지만 그 백만의 경구가 과연 어제 그 한순간의 사실을 나타낼 수가 있을까.
---「눈을 겨우 뜰 때」중에서

순애가 혜감에게 ‘돌아가서 P를 감독하라’는 말을 듣고 그의 집에서 나선 때는 서울 하늘은 저녁 내로 보얗게 되고 내를 끼고 봄 하늘이 멀겋게 보이는 때였다.
순애는 자기 집에 이르러서 제일 먼저 아우의 방을 몰래 들여다보았다. P는 자리 속에 누워서 담배를 피우며 공기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얼굴에는 아까 다툼은 꿈에도 안 생각하는 듯이 혼자 무엇에 만족하여 벙글벙글 웃고 있다. 이런 때에 말하면 효험이 있으리라, 아까같이 성은 안 내리라 생각하고 순애는 기침을 한 뒤에 문을 열었다. P는 힐끗 머리를 돌려서 이편을 본 뒤에 그가 순애인 것을 알고는 눈에 무한한 증오를 나타냈다.
“내 비녀가…….”
하면서 순애는 한번 둘러본 뒤에 빨리 문을 닫고 돌아섰다.
“무얼 하러 들어와요!”
토하는 듯한 이 소리가 순애를 따라온다.
---「폭군」중에서

한 시간 앞의 일도 알지 못하는 인생의 일원인 우리는 그날 진일을 비상한 긴장 가운데서도, 비교적 무심히 보냈다.
어머님의 용태가 어제보다 변한 것은 단 한 가지, 어제까지는 몸에 이불을 일 분간을 그냥 두지 않고 벗어버리고 하셨는데, 오늘은 이불을 씌워드리면 드린 채로 가만히 계신 점뿐이었다.
잠시 깨셨다가는 다시 잠드셨다. 잠드셨다가는 다시 깨셨다. 깨시면 오른편 팔만 연하여 붕대로 올라갈 뿐, 다른 동작은 일체로 하시지 않았다.
그날 오후에 잠에서 깨신 어머님은 또 갑자기 퇴원을 하자신다.
“야 퇴원하자.”
우리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볼 뿐이었다. 퇴원을 하나 안 하나,
이것은 과연 큰 문제였다. 만약 쾌차될 가망이 절대로 없다 하면 이 간절하신 부탁을 거역치 못할 일이다. 그러나 만에 일이라도 천행을 기다리고 있는 우리는 지금 위독하신 어머님을 병원 밖으로 모셔 내갈 수가 없었다. 미상불 어머님께서 당신이 다시 회복할 가망이 없으므로 잘 알고 하시는 말씀이겠지마는 우리의 생각은 또한 그렇지 못하였다.
“오늘 저녁이나 내일쯤 꼭 퇴원하지요.”
---「몽상록」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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