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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 사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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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 사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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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10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108쪽 | 154g | 125*190*20mm
ISBN13 9791189467203
ISBN10 1189467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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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책상 앞에 앉아
네가 쓰던 시나리오를 이어 쓰고 있었다

여기 오기 전까지 뭘 했더라

나는 흰 방에 갇혀 있기로 한 모양이야
미간을 찌푸린 채 연필을 쥐고

눈을 가늘게 뜨면, 흰 방의 완벽을 위해
창밖에도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다
---「사랑 없음 입장하세요」중에서

로비에는 세 종류의 팸플릿
할 줄 아는 외국어가 두어 개 있으면
타지에서도 고요가 잘 없다

고대의 뼈들을 지나친다 나로서는
그것들이 아직도 이렇게 희다는 사실이 잘 믿기지 않는다
---「자연사 박물관」중에서

다음 그림의 앞으로 걸어가면서
너를 나의 왼쪽에 남겨둘 수 있었지만

너는 너의 뒤통수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그곳은 아주 아름답다고

텅 빈 벽 앞에서 눈을 감았다
나의 바깥이 나를 넘나들었다
---「출구는 이쪽입니다」중에서

공을 높게 찼다 공 맞은 가로등에 불이 꺼졌다 고개를 꺾고 하늘을 보고
공이 떨어지기를 기다렸지만 발등 위로 새가 떨어졌다

톡톡 새를 찼다 얼룩무늬 새는 나의 발동작대로 힘없이 날아올랐다가 다시 발등에 머무르기를
반복했다 공은 어딨니 공을 데려와 새는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아프니 눈 좀 떠봐
---「나이트 사커」중에서

손들은 조금 전까지
내 몸에 박힌 수십 개의 이빨을
빼내려고 애쓰던 중이었다

이 많은 이빨이 다 어디에서 날아왔을까
---「미디엄 레어」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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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시작되지 않았으나 이미 불타버린 사랑

밤에 축구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생각하게 된다. 이 캄캄한 밤에 저토록 환한 빛을 켜두고, 사람도 공도 빛에 가려 보이지 않는 저곳에서 저토록 열심이구나. 이쪽에서 저쪽으로 날아가고, 다시 저쪽에서 이쪽으로 달려오며, 이 운동은 영원히 끝이 없겠구나. 이 시집의 제목이 『나이트 사커』일 수밖에 없는 것은 이 시집 역시 이처럼 하염없이 어둠 속을 오가는 운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이 집요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시집을 읽으며 계속한 생각이다. 김선오의 시는 사랑이 끝났다고 집요하게 말함으로써 오히려 사랑의 불가능을 파괴하려 하는 것 같다. 아직 시작되지 않았으나 이미 불타버린 사랑, 그리하여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사랑. 그러나 그러한 사랑을 ‘나’만이 기억하고 있다면, 그것은 또한 ‘나’가 살아 있는 한, 영원히 사라지거나 훼손되지 않는 진실이 되리라. 시집 속에 등장하는 여러 ‘너’들이 이미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읽히는 것도 그런 까닭 아닐까. ‘너’는 존재한 적 없으나 ‘너’는 영원히 존재한다. “나는 너를 부른다. 너는 이미 사라지고 없다. 나는 너를 부른다. 너는 오랫동안 발생한다.”(「실낙원」) 이 시집은 존재하지 않는 ‘너’를 영원히 존재하도록 하기 위한 일종의 집요한 고투라고 할 수 있다.

이 도저한 사랑의 (불가능의) 기록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 가운데 하나는 ‘우리’라고 말하는 순간에 있다. 이 시에서 ‘우리’라는 말이 등장하는 순간을 잘 살펴보라. 그렇다면 당신은 ‘우리’가 마치 허공에 발을 딛고 곧 사라질 것처럼 위태롭게 위치하고 있음을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이 ‘우리’가 “아직 없는 우리”(「사랑 없음 입장하세요」)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라고 말하면서도 좀처럼 ‘우리’가 보이지 않는 이 세계가 내게는 처절하고도 가슴 아프게 읽힌다. 하지만 우리는 그 어둠 속에서, 빛에 가려 보이지 않는 ‘너’를 찾을 수 있고, 또 ‘우리’의 향방을 헤아릴 수도 있다. 그것이 지금의 우리가 살아가는 방법이고, 또 이 시집이 그려내고 싶어 하는 것이다.
- 황인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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