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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 비와 고기 사랑 없음 입장하세요 러브 미 텐더 뼈와 종이 피렌체 독주회 시네 키드 첫 야간비행 우리는 폐역의 밖에서 디졸브 크로키 독 아지트 덫 2부 냉동육 자연사 박물관 쥐 놀이 도빌 포스터 상점 녹 일요일 향수를 버리려고 박쥐를 주웠다 출구는 이쪽입니다 나이트 사커 드라이 플라워 낫 마이 폴트 2월생 코인 세탁소 3부 내 얼굴에 네가 빠지고 기립 잠과 맥박 미디엄 레어 왈츠 녹은 사탕 체온과 미래 라고스 구터 달은 달걀들의 서식지이다 위증 클라이맥스 실낙원 훼손 주의 부록 비주류 천사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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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책상 앞에 앉아
네가 쓰던 시나리오를 이어 쓰고 있었다 여기 오기 전까지 뭘 했더라 나는 흰 방에 갇혀 있기로 한 모양이야 미간을 찌푸린 채 연필을 쥐고 눈을 가늘게 뜨면, 흰 방의 완벽을 위해 창밖에도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다 ---「사랑 없음 입장하세요」중에서 로비에는 세 종류의 팸플릿 할 줄 아는 외국어가 두어 개 있으면 타지에서도 고요가 잘 없다 고대의 뼈들을 지나친다 나로서는 그것들이 아직도 이렇게 희다는 사실이 잘 믿기지 않는다 ---「자연사 박물관」중에서 다음 그림의 앞으로 걸어가면서 너를 나의 왼쪽에 남겨둘 수 있었지만 너는 너의 뒤통수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그곳은 아주 아름답다고 텅 빈 벽 앞에서 눈을 감았다 나의 바깥이 나를 넘나들었다 ---「출구는 이쪽입니다」중에서 공을 높게 찼다 공 맞은 가로등에 불이 꺼졌다 고개를 꺾고 하늘을 보고 공이 떨어지기를 기다렸지만 발등 위로 새가 떨어졌다 톡톡 새를 찼다 얼룩무늬 새는 나의 발동작대로 힘없이 날아올랐다가 다시 발등에 머무르기를 반복했다 공은 어딨니 공을 데려와 새는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아프니 눈 좀 떠봐 ---「나이트 사커」중에서 손들은 조금 전까지 내 몸에 박힌 수십 개의 이빨을 빼내려고 애쓰던 중이었다 이 많은 이빨이 다 어디에서 날아왔을까 ---「미디엄 레어」중에서 |
폭력이 은폐된 세상을 잿더미로 만들기
담담한 목소리로 그려내는 감각적인 이미지는 김선오의 특장이다. “흰 방의 완벽을 위해 창밖에도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는 풍경 속에서 김선오는 집요하게 관찰하고 반복한다. 그의 집요한 시선은 캄캄한 와중에 이곳저곳으로 움직이는 대상과 함께 운동한다. 이 반복 운동을 통해 드러나는 것은 이 세계가 가진 부정성이다. 특히나 육식으로 만들어진 세계에 대한 부정은 시집 곳곳에서 발견된다. 부록으로 실린 산문에서 김선오 시인은 “고기라니, 너무 이상한 말이다. (…) 양파는 팔리기 전에도 양파라 불리고 땅 속에서도 감자는 감자이며 바닷속에서도 미역은 미역이다. 그러나 돼지나 소나 닭은 식재료가 되고 나면 이름 뒤에 고기라는 말이 붙는다.”라며 육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만든 언어와 세상에 의문을 표한다. 동물과 인간이 다르지 않은 생명이라는 인식은 고기를 인간의 자리에 두는 여러 시편들을 통해 드러난다. 주어 ‘나’의 위치에 ‘고기’를 넣어 지극히 일상적인 풍경을 담아내는 「비와 고기」, 하나의 거대한 살점과 이를 잘라내는 칼에 관한 꿈을 그린 「냉동육」, 몸에 박힌 수십 개의 이빨에 관해 집요하게 말하는 「미디엄 레어」 등등 다수 시편들은 동물이 겪는 폭력을 인간의 위치에 놓아 이 일의 부조리함을 보여주고 있다. 사랑의 형태는 하나뿐이며, 이와 다르면 정상성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는 믿음을 통해 만들어진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다. 김선오의 시에서 이러한 세상은 부정되고 사랑은 종료된다. 김선오는 하나의 사랑에 관해 말하는 대신에 ‘사랑 없음’이 왔다고 말하는 시인이다. 그는 아직 오지 않았거나 이미 사라진 ‘너’를 집요하게 호명한다. 이러한 부름을 통해 “너는 빠르게 늙고 느리게 다시 태어난다.” 다시 태어난 너를 통해 ‘우리’라는 세계가 재시작된다. 이 새로운 사랑의 세계는, 사랑 없음 또한 사랑의 다른 가능성인 세계일 것이다. 김선오는 이런 보이지 않는 사랑의 다른 형태가 있다고, 혹은 이미 여기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 |
아직 시작되지 않았으나 이미 불타버린 사랑
밤에 축구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생각하게 된다. 이 캄캄한 밤에 저토록 환한 빛을 켜두고, 사람도 공도 빛에 가려 보이지 않는 저곳에서 저토록 열심이구나. 이쪽에서 저쪽으로 날아가고, 다시 저쪽에서 이쪽으로 달려오며, 이 운동은 영원히 끝이 없겠구나. 이 시집의 제목이 『나이트 사커』일 수밖에 없는 것은 이 시집 역시 이처럼 하염없이 어둠 속을 오가는 운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이 집요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시집을 읽으며 계속한 생각이다. 김선오의 시는 사랑이 끝났다고 집요하게 말함으로써 오히려 사랑의 불가능을 파괴하려 하는 것 같다. 아직 시작되지 않았으나 이미 불타버린 사랑, 그리하여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사랑. 그러나 그러한 사랑을 ‘나’만이 기억하고 있다면, 그것은 또한 ‘나’가 살아 있는 한, 영원히 사라지거나 훼손되지 않는 진실이 되리라. 시집 속에 등장하는 여러 ‘너’들이 이미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읽히는 것도 그런 까닭 아닐까. ‘너’는 존재한 적 없으나 ‘너’는 영원히 존재한다. “나는 너를 부른다. 너는 이미 사라지고 없다. 나는 너를 부른다. 너는 오랫동안 발생한다.”(「실낙원」) 이 시집은 존재하지 않는 ‘너’를 영원히 존재하도록 하기 위한 일종의 집요한 고투라고 할 수 있다. 이 도저한 사랑의 (불가능의) 기록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 가운데 하나는 ‘우리’라고 말하는 순간에 있다. 이 시에서 ‘우리’라는 말이 등장하는 순간을 잘 살펴보라. 그렇다면 당신은 ‘우리’가 마치 허공에 발을 딛고 곧 사라질 것처럼 위태롭게 위치하고 있음을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이 ‘우리’가 “아직 없는 우리”(「사랑 없음 입장하세요」)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라고 말하면서도 좀처럼 ‘우리’가 보이지 않는 이 세계가 내게는 처절하고도 가슴 아프게 읽힌다. 하지만 우리는 그 어둠 속에서, 빛에 가려 보이지 않는 ‘너’를 찾을 수 있고, 또 ‘우리’의 향방을 헤아릴 수도 있다. 그것이 지금의 우리가 살아가는 방법이고, 또 이 시집이 그려내고 싶어 하는 것이다. - 황인찬 (시인) |